폴리토피아

대물이 '정치 겉핥기'에 그칠 수 밖에 없는 이유

재능세공사 2010. 12. 2. 02:18

드라마 '대물'을 외면하기 어려운 이유

 

MB정권하에서 드라마 '대물'을 시청하는 일은 여러가지 관점에서 복잡한 생각을 불러 일으킨다. 모든 종류의 드라마에서 재미는 물론이고 우리 삶에 대한 메시지와 지혜를 얻으려는 욕심을 가진 사람으로서 흔치 않게 '정치'를 주소재로 삼고 있는 드라마 '대물'은 놓치기 아까운 드라마다. 어느 정도 기대수준을 낮추기는 했지만 미드 '웨스트윙' 시즌 전편을 몇주만에 정주행했던 필자로서는 한국형 정치 드라마의 탄생을 미약하게나마 기대했던게 사실이다.

 

 

아직 드라마는 완결되지 않았지만 현재까지의 에피소드를 쭈욱 지켜보면서 필자 나름의 1차 품평을 할 때가 다가왔음을 느꼈다.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드라마 대물이 정치라는 소재를 다루는 내공은 제목 그대로 딱 '정치 겉핧기' 수준이다. 그런데 주목하고 싶은 것은 이 결과의 원인이 작가나 연출자의 역량으로만 몰고 가기에는 개운치 않다는 사실이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조근조근 살펴보도록 하자.

 

 

드라마 대물이 '정치 겉핧기'에 그칠 수 밖에 없는 이유

 

첫번째 이유는 이 드라마가 표현의 자유하고는 담쌓기를 넘어서서 경기를 일으키는 정권하에서 제작되고 있다는 태생적 한계다. 잠깐 추억의 드라마를 떠올려 보자. 꽤 오랫동안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MBC의 공화국 시리즈와 라디오 장수 프로그램 '격동 30년'을 기억하는가. 이 드라마들 역시 정치권의 민감한 반응을 의식할 수 밖에 없는 분위기에서 제작되고 방영됐지만 드라마 대물과는 사뭇 비교되는 내공으로 그 시대를 살았던 이들에게 역사를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었다.

 

 

정치 드라마 대물이 MB정권하에서 제작되고 방영되기 위해 껍질만 대한민국의 정치현장을 배경으로 할 뿐 가상의 정당, 인물,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방식을 채택하는 순간 이런 결과는 예정된 수순이 아니었을까. 반면에 앞서 언급한 두 드라마는 한국 근대 정치사의 팩트를 기본으로 삼아 상상력과 구체성을 가미했다는 점에서 태생적으로 다를 수 밖에 없다. 더불어 드라마적 재미라는 또 다른 토끼를 잡기 위해 원작만화 대물에서의 캐릭터나 설정을 인위적으로 변용하거나 멜로요소까지 버무려야 하는 상황까지 겹치게 되니 본격 정치 드라마를 기대했던 이들을 만족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할 수 밖에.

 

두번째 이유는 대물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 정당, 사건 들이 너나할 것 없이 정체성을 구분할 수 없는 짜깁기 짬뽕괴물이라는데 있다. 제작진 입장에서야 이런 선택이 어떤 항의나 압력도 비껴 갈 수 있는 안전판 역할을 하겠지만 시청자 입장에서는 의미나 메시지를 떠나 드라마에 몰입은 고사하고 대충 흘러가는대로 쫓아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버리는 악수다. 주인공 서혜림의 예를 들어보자. 이 캐릭터가 현실 정치인 중 누구를 모델로 삼았는지 다양한 의견들이 많은데 모두가 정답 되겠다.

 

 

 

왜냐하면 이 캐릭터안에는 수많은 정치인의 모습이 짬뽕으로 빙의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떨 때는 박근혜가 보이고 또 어떨 때는 노무현 대통령이 보인다. 김두관이 되었다가 갑작스레 나경원으로 활약하기도 한다. 극중 대통령이나 강태산도 마찬가지다. 검찰과 관련된 캐릭터는 실제로 존재하는 각 유형별 비중과는 상관없이 권력앞에 한없이 비굴한 섹검과 떡검 모습에서부터 국민이 바라마지 않는 이상형 검사의 모습까지 대놓고 합체로봇이다. 검찰이 대놓고 티내지는 못하겠지만 대물은 그들 입장에서 보면 이미지 개선에 톡톡히 효자 노릇하는 기특한 드라마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세 정당(민우당, 복지당, 혁신당)의 면모 역시 잡탕 그 자체다. 도대체 어디가 여당이고 야당인지 형식적 의미외에는 구분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런 인물과 정당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사건들이니 그 밥에 그 나물일 수 밖에. 이런 구도에 전혀 화학적 조합이 가능하지 않은 이상형의 정치요소가 마구잡이로 양념처럼 버무려지고 있으니 기괴한 모양의 정치 환타지라는 소리를 듣는게 자연스럽다.

 

마지막 이유는 인물중심의 정치투쟁 자체만 부각시키려 할 뿐 정치 컨텐츠를 내세울 의지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이 부분은 의도하지 않게 역설적으로 현실 정치의 본 모습을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정치는 그렇게 움직이고 있으니 말이다. 무엇이 옳은 정치고 그런 정치를 가능하게 하는 제도와 정책은 무엇이고 이 모든 것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담보되는지에 대한 치열한 고민은 드라마 대물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다. 어떤 정치세력에게 힘을 모아주어야 하는지 살짝이라도 암시하라는 주문은 당연 언감생심이겠고.

 

 

 

주인공 서혜림이 첫회부터 대통령으로 나왔으니 어떻게든 대통령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할 뿐이다. 강태산은 조배호에게 어떻게 복수하고 권력을 빼앗게 되는지, 일개 검사인 하도야가 주인공 서혜림의 아우라에 어울릴만한 포스를 갖기 위해 얼마나 무모해져야 하는지 지상중계에 열을 올릴 뿐이다. 조폭이 검사의 동지가 되고 그렇게 힘이 있다는 여당의 실세들을 가볍게 가지고 노는 일을 지켜 보노라면 요즘 말로 손발이 다 오그라든다. 현실적으로 서혜림같은 인물이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최근의 전개처럼 변신은 필수라고 생각하는 듯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물을 통해서 깨달았으면 하는 것들

 

'정치 겉핧기'라는 야박한 품평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시청자들이 대물을 외면하지 않기를 바란다. 왜냐 하면 그 경험에서 무엇을 생각하고 얻어낼 것인지는 드라마 제작진이 아니라 우리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위에서 줄기차게 씹었던 대물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대물이 던지는 옅은 수준의 단초로부터 현실 정치상황에 대해 다시한번 찬찬히 곱씹어 볼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 개인적인 차이는 있겠지만 다음과 같은 점에 주목해서 드라마 대물을 시청해 보는 것은 어떨까?

 

 

정치권력과 결탁한 언론, 재벌, 검찰의 삼각 카르텔 실상 깨닫기

 

정치자영업자들의 아킬레스건은 그들의 힘을 유지시켜 주는 진짜 배후들의 영향력을 떨어뜨리는 일이다. 대물에 등장하는 캐릭터 중에서 가장 현실에 가깝게 묘사되는 인물들은 주로 조연급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강태산의 장인으로 나오는 산호그룹 회장, 강태산의 실세 참모 역할을 하는 언론인 출신 국회의원, 검찰 출신의 강태산의 말한마디에 꼭두각시처럼 움직이는 검찰 지휘부 등이 그들이다. 드라마에서는 비중이 작지만 이들이야말로 한국정치의 후진성을 공고히 하는 진짜 지배집단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드라마속에서 이들끼리의 결탁이 어떤 이해관계속에서 이루어지는지 실감할 수 있는 에피소드가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국민들도 이들의 속성과 진면목을 눈여겨 봐두어야 한다. 현실정치속에서는 드라마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교묘한 포장과 명분속에 진의를 감추고 있지만 드라마속 에피소드 몇개를 참고해서 들여다 보면 생각보다 훨씬 더 쉽게 이들의 못된 짓을 구별해 낼 수 있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 어떤 정치세력이 이들의 노골적인 편애를 받고 있는지 또한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된다.

 

 

당선가능성 보다는 당선시키고 싶은 정치인을 찾아내고 키우자

 

당선가능성은 국민으로부터 검증되지 않은 힘을 가진 이들이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왜곡된 거울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왜곡된 거울의 힘에 국민이 영향을 받기 시작하면 실재하는 권력이 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처음부터 당선가능성이 높은 정치인은 없다. 극중 묘사되는 서혜림에 대한 국민의 기대처럼 당선시키고 싶은 정치인의 힘을 국민이 만들어 주어야 한다. 정치인 스스로의 노력을 통해 보여줄 수 있는 것과 국민이 그걸 알아주는 것은 다른 영역임을 알아야 한다.

 

 

국민의 뜻을 받들 수 있는 정치인을 길러내는 토양을 만들 수 있는 존재는 국민밖에 없다. 지금의 정치현실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기득권 세력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조성한 더러운 토양속에서 길러진 정치인들이 승승장구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대물속에서 희망을 주는 정치인의 면모와 가장 가까운 현실 정치인이 누구인지부터 생각해 보자. 현실적 영향력은 한시적인 것임을 잊지 말자. 그런 자질과 소신을 가진 정치인들을 우리 스스로 확인하고 알려서 힘을 모아주도록 하자. 그렇게 드라마속에서의 환타지로 끝나지 않고 우리가 다음 총선과 대선에서 국가운영을 맡겨도 후회하지 않을 정치인들을 찾아내 보자 이 말이다.

 

 

우리 삶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정치를 멀리하지 말자

 

드라마속에서 권력을 가진 이들이 그렇게도 국민들 눈치 안보고 활개칠 수 있는 이유를 잘 생각해 보자. 정치를 혐오하고 모든 정치인들을 불신하는 상황이 계속되는 한 좋은 정치인들은 점점 없어지고 정치 자영업자들의 왕국이 계속될 것임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정치는 멀리 있지 않으며 모든 정책적 결정사항들은 우리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어려워만 보였던 대북정책과 외교가, 그저 국책사업의 하나로만 여겼던 4대강 사업이, 해당분야와만 상관있어 보이던 미디어법이 어떤 부메랑으로 우리 삶에 돌아왔는지 조금만 생각해 봐도 실감할 수 있는 일이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혐오와 불신을 부추길수록 더욱 악착같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우리의 생각을 표현하고 소리높여 외쳐야 한다. 드라마속 에피소드를 보며 연상되거나 깨달은 현실정치의 문제점이 있다면 자꾸 드러내고 표현해야 한다. 정치를 우리곁으로 돌아오게 해야 한다. 정치인들을 충실한 대리인의 자리로 되돌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인인 우리가 두눈 부릅뜨고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봐야 한다. 그런 시선들이 모아져 모든 선거에서 투표행위를 통해 엄정한 심판자로서의 역할을 다할 때 우리는 가상의 인물 서혜림과 하도야가 아닌 진짜 정치인을 현실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