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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럼킬러 박지성도 막지못한 완패

재능세공사 2009. 3. 22. 02:53

너무나 많은 것을 잃은 맨유

 

결국 리그우승이란 과실은 쉽게 얻어지는게 아니었음이 확인됐다. 맨유가 리그 초반 부진을 털고 잘나가던 리버풀과 첼시의 부진을 틈타 압도적 우위를 점할때만 해도 이미 리그우승은 9할이상 그들의 품안에 들어온 것으로 여겨졌다. 발단은 지난주 펼쳐진 리버풀과의 홈경기에서의 대패였지만 최근 두경기에서 7골의 화력쇼를 선보이며 너무나 쉽게 제압했던 풀럼전이 다음 경기였기 때문에 살짝 안심했을 법도 했다.

 

그러나 세계 최고의 리그에 속한 풀럼 역시 안방에서는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고 리버풀전 대패의 후유증은 생각보다 맨유의 경기력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밝혀졌다. 아마도 풀럼킬러라 부를만한 성적을 올려온 박지성의 선발출전은 그런 의미에서 고국팬과 맨유팬 모두에게 기대를 걸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런 마음으로 경기를 지켜봤으니까.

 

사진출처 : 게티이미지코리아

 

결과는 풀럼의 2-0 완승. 게다가 맨유는 루니와 스콜스가 비신사적 행위로 퇴장을 당했고 호나우도 역시 경고누적으로 한경기 결장이 불가피한 한경기 패배 이상의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서형욱 해설위원의 표현대로 맨유 선수들은 후반중반 잠깐을 제외한 거의 모든시간을 제대로 된 플레이가 거의 실종된 최악의 경기력을 보여줌으로써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 완패이자 연패를 당하고야 말았으니 5관왕 전선은 물론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리그와 챔스리그 우승도 장담할 수 없는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승부를 결정지은 몇가지 변수

 

첫번째 변수는 당연히 스콜스의 갑작스런 퇴장이다. 반데사르의 선방이후 리바운드 슈팅이 날라오자 그는 거의 본능적으로 두손을 올려 막았고 이렇다할 변명조차 하지 못한채 퇴장명령을 수긍하고야 만다. 그의 뇌가 조금이라도 작동할 기회가 있었다면 차라리 선제골을 허용하고 싶지 않았을까. 원정경기에서 18분만에 한명을 잃은 맨유 선수들에게 리버풀 대패의 부담이 더욱 가중되었을 것이 뻔한 순간이다.

 

아니나 다를까. 경기 초반부터 계속되는 패스 미스와 무거운 몸놀림을 보이던 맨유 선수들은 더욱 허둥대기 시작했고 반데사르의 몇번의 선방이 없었다면 전반전에서만 승부는 이미 결정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서형욱 해설위원은 이런 상황에서 풀럼이 추가골을 얻지 못한다면 장담컨대 후반전에 응징을 당할 것이라 예언을 했는데 결과적으로 틀리긴 했지만 후반중반 십여분간 유일하게 맨유다운 공세가 펼쳐진 순간을 떠올려 보면 그냥 허언으로만 돌리긴 어려울듯 싶다.

 

두번째 변수는 주심의 지나치게 방임적인 판정성향이다. 확연하게 자기 스타일을 유지하는 프리미어리그 주심중에서도 오늘 경기를 맡은 심판은 정말 웬만한 접촉에는 전혀 미동이 없을 정도로 거친 수비를 펼치는 풀럼의 승리를 의도하지 않게 도운 결정적 역할을 하고야 만다. 문제는 호나우도의 지나치게 민감한 반응이 결과적으로 개인의 경기력뿐만 아니라 동료선수들을 부정적으로 자극하기만 했고 후반교체 출전한 루니 역시 같은 전철을 밟으면서 팀의 패배에 쐐기를 박았다는 점이다.

 

세 번째 변수는 비디치의 결장이었는데 단지 수비에서만의 영향은 아니었다. 대타역할을 맡은 에반스는 그의 아우라에 미치지 못한게 분명하지만 나름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추가골을 최대한 막아내는데 일조했다. 문제는 세트피스 상황에서 웬만한 공격수 못지 않게 위력적인 헤딩슛을 선보이며 심심찮게 골을 기록했던 비디치 공격옵션이 빠지면서 많은 코너킥과 프리킥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는 점이다. 맨유 입장에서는 두고두고 비디치의 밤송이 머리가 그립지 않았을까.

 

네번째 변수는 풀럼킬러 박지성의 결정적인 슛을 포함해 맨유의 후반공세를 신들린듯 막아낸 풀럼 골키퍼 슈워처였다. 슈워처를 비롯한 골기퍼 선방의 악연이 유난히도 박지성의 위력적인 유효슈팅에서 자주 일어나는 것이 과연 우연일까 싶을 정도다. 어쨌든 맨유가 수많은 위기에도 전반을 추가실점없이 버틴 후 후반 투입된 루니를 중심으로 강력한 반격은 오늘 경기에서 유일하게 맨유다운 모습이었고 이 기회에서 동점골을 얻어내지 못한 이상 맨유의 패배는 예정된 결과가 아니었을까.

 

전반전에서는 거의 정확한 패스를 받아본 적이 없을 정도로 원치않게 잠잠할 수 밖에 없었던 박지성은 루니와의 호흡을 맞추며 풀럼킬러로서의 몸놀림을 잠시 선보였고 호나우도의 결정적 크로스에 몸을 날리며 발을 갖다 댔지만 순간적으로 튀어나와 간격을 좁힌 슈워처의 선방에 가로막혀 팀을 패배에서 구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놓치고야 만다. 이후부터는 공격력을 강화한 테베스의 교체투입으로 거의 쓰리백의 역할을 부여하며 졸지에 수비의 중심이 되고 말았으니 더 말할 것도 없다..ㅜㅜ

 

결국 한번의 역습에 의해 후반교체 투입된 게라의 멋진 시저스 킥 쐐기골이 터지면서 일말의 희망을 걸고 공세에 여념이 없던 맨유는 루니의 불명예스러운 퇴장이라는 악재까지 겹치며  한게임 패배이상의 상흔을 얻고야 만다. 맨유가 더욱 완벽한 팀으로 거듭나기 위해서 고민해야 할 부분이 많이도 드러난 경기가 아닌가 싶다. 앞으로도 중요한 경기를 많이 남겨놓은 퍼거슨 감독의 머리속이 더욱 복잡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맨유와 박지성 끝까지 함께 웃을 수 있기를

 

다행히 맹렬하게 뒤를 쫓던 첼시 역시 토트넘에게 발목을 잡혔다. 맨유에게 여전히 행운의 여신의 미소가 머물고 있는 형세다. 과연 리버풀이 맨유전 대승의 기세를 이어가며 그들에게 반전의 기회를 선사한 풀럼을 제물로 다시 우승경쟁에 뛰어들 수 있을지 궁금한 대목이다. 이미 두개의 트로피를 들어올린 맨유지만 리그와 챔스리그 우승트로피는 그것들과 바꿀 수 없는 무게감을 가지고 있고 FA컵 우승은 말 그대로 꽃놀이패 정도로 여기고 전력을 집중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박지성이 그 길목에서 어느 정도 공헌을 하게 될지 그리고 출전기회를 얼마나 많이 확보하게 될지 궁금하지만 분명한건 맨유의 5관왕 달성에 그 역시 무시못할 영향을 미칠 핵심선수 중 하나일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미 많은 것을 이룬 박지성에게 챔스리그 결승전 진출의 한을 풀고 최소한 3년 이상 맨유의 확실한 주전스쿼드로 뛸 수 있는 계약을 이끌어 내는 남은 시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