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피아

박지성 위기론, 고마해라 지겹다카이

재능세공사 2009. 8. 27. 21:59

지겹게 반복되는 박지성 위기론

 

벌써 몇년째 되풀이 되고 있는지 이젠 지겹다 못해 짜증이 날 정도다. 경기평점이 살짝 안 좋거나(심지어는 평균 수준을 유지해도), 한 경기만 결장을 해도(특히, 전문성이란 눈씻고 찾아봐도 씨알만큼도 없는 찌라시 언론들이 전후사정 고려없이 박지성 선발출장 기대감을 묻지마 수준으로 지들 맘대로 올려놓았다가 개망신을 당한 후에는 거의 광분수준으로) 여지없이 박지성 위기론을 조장하며 지극히 상업적인 논리로 '부정적 박지성 팔아먹기'에 여념이 없다.

 

박지성은 그래서 대단한 선수다. 광적인 언론이 이 정도로 물불 안가리고 분탕질을 치는 와중에도 놀라운 평상심을 유지하며 자기만의 플레이를 통해 항상 그들을 머쓱하게 만드는 성과를 거둬왔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지성의 축구인생에 있어 또 한번의 전기가 될 올시즌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시즌초입부터 합창수준으로 전개되고 있는 또 한번의 박지성 위기론은 그대로 두고보기 어려운 수준에 와 있다.

 

 

단순히 유명 스포츠 선수에 대한 파파라치식 보도로만 치부하기에는 '박지성 위기론' 이면에 깔려 있는 '약점보완 중심 사고'의 위험성이 너무 크다는 생각이다. 그의 놀라운 성공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은 박지성의 자기다움과는 거리가 먼  또 다른 재능을 더 보여줄 것을 당연한 것처럼 요구한다. 히딩크의 깜짝 발탁, 잊을 수 없는 포르투갈전 결승골, 아인트호벤에서의 역경 극복, 세계적인 클럽 맨유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최초의 한국선수, 여러 시즌동안 꾸준한 경기력을 선보이며 감독과 동료선수들의 신뢰를 확보한 성실성 등은 더이상 그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찌라시 언론은 박지성에게 열광하고 있는 대중들에게 새로운 먹이꺼리를 던져주기 위해 '골결정력 부족'이라는 박지성의 약점을 끊임없이 부각시키며 이 약점보완 없이는 더이상 빅클럽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식의 자극적인 논리를 설파하며 대중들의 머리속에 박지성이 이미 충분히 보여준 강점보다는 이 약점보완이 시급하다는 생각을 강하게 심어주고 있는 것이다.

 

과연 박지성에 대한 그들의 주문은 옳은 것이고 진정한 애정이 담긴 조언일까? 난 해법도 틀렸고 애정어린 조언도 아니라고 확신한다. 그들에겐 어떤 결과가 나와도 쓸 기사거리가 충분할테니까. 박지성이 더 많은 골을 넣게 되면 그들의 주문이 맞아 떨어졌다며 환호할 것이고 경기출장 횟수가 감소하고 입지가 좁아지면 자신들의 진단이 맞았다며 더욱 강한 논조로 박지성을 훈계하기에 바쁠 것이기 때문이다.

 

 

약점보완 중심 논리의 허상과 폐해

 

우리들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약점보완 중심의 사고속에 장시간 노출되어 왔다. 대다수의 부모들은 자식들이 강점을 보이는 부분을 격려하고 집중하게 도와주기 보다는 끊임없이 부족한 부분을 메꿀 것을 요구한다. 학교교육 역시 누구나 국영수를 중심으로 어느 과목 하나 부족함이 없이 골고루 점수를 올릴 수 있어야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며 열을 올린다. 직장에 들어가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상사들은 끊임없이 부하직원들의 상대적 약점을 지적하며 조직이 요구하는 어떤 직무에도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멀티 플레이어가 되기를 종용한다.

 

이 모든 과정에서 동원되는 논리는 단 하나다. "너는 이 약점만 보완하면 더 좋아질 것이다" 과연 그럴까? 이 대답을 하기전에 이런 약점보완 중심의 접근법에 동의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10명 중 6명은 이 논리에 동의하고 있으며 간접적인 영향력까지 감안하면 더 많은 이들이 이 잘못된 신화를 믿고 있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약점은 인위적인 노력으로 보완하기 어렵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왜 그럴까? 일단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애쓰는 일은 흥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얼마만큼의 물리적 시간을 투자하느냐와 상관없이 효과가 지극히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또한 약점을 직접적으로 의식하면 할 수록 의도와는 다르게 보완되기 보다는 부정적으로 강화되는 경우가 많다. 결정적으로 약점을 어느 정도 상쇄하는 것만으로는 부정적 영향력을 줄일 수는 있어도 근본적으로 차별화 된 경쟁력을 결코 담보해 주지 않을뿐더러 이미 가지고 있는 강점마저 약화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박지성다운 강점을 더욱 강화시켜야 한다

 

다시 박지성 문제로 돌아와 보자. 올시즌 맨유의 팀사정상 더 많은 공격자원들이 골을 만들어 내야 함은 누가 봐도 명백한 사실이다. 박지성에게 쏟아지는 기대는 그래서 이상할게 없다. 다만 박지성이 이 기대를 부담으로 여기게 만들고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처럼 분위기를 몰아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다행히 박지성은 MBC 스페셜에서 더 많은 골에 대한 필요성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 답하면서 이 문제에 대한 슬기로운 속내를 밝혀 나를 안심시킨다.

 

"한 10골 정도는 넣고 싶어요. 넣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게 아니라 저도 그 정도는 넣고 싶죠"

 

상대적으로 박지성 선수가 타고나지 않은 골결정력을 지나치게 의식하면서 플레이를 펼치는 순간, 아무리 노력해서 몇 골을 더 넣는다 해도 결코 톱 클래스의 공격수가 될 수 없을뿐 아니라 그가 이미 구축해 놓은 팀의 승리에 꾸준히 공헌하는 새로운 유형의 윙어라거나 세개의 심장을 가진 선수와 같은 차별화 된 브랜드를 잃게 될 가능성이 더 크다. 이런 상황이야말로 박지성의 진짜 위기를 초래하게 만들 수 있다.

 

 

박지성은 도대체 어떻게 키워야 할지도 모를(혹은 정말 단기간내에 끌어올릴 수 있는 능력인지도 모를) 골넣는 능력함양에 힘을 쏟거나 욕심을 부릴 것이 아니라, 그동안 자신이 상대적으로 강점을 발휘해 왔던 플레이 스타일을 변화된 팀 스쿼드에 맞게 녹여내고 조금 더 세련되게 다듬는데 집중해야 한다. 박지성에게 몇 골을 더 넣는 일은 이런 자연스러운 과정에서 얻게 되는 보너스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다. (박지성의 스타일과 차별적 가치를 잘 설명해 주는 Demitrio님의 두개 포스트를 한번 읽어 보시라)

 

박지성 is a Virus by Demitrio

 

박지성, 이제 조건이 갖추어 진건가 by Demitrio

 

실제로 올시즌 세 경기를 치르는 과정에서 확인한 맨유의 공격패턴은 호나우두와 같은 압도적인 킬러들에게 전략적으로 집중됐던 지난 시즌과 달리 훨씬 비중이 높아진 패스웍을 통해 공격루트를 다변화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조금 더 골을 노려볼 수 있는 기회가 자연스럽게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박지성의 위 발언에서 느낄 수 있는 것처럼 그가 여전히 골에 대한 부담감을 느끼기 보다는 자기 스타일대로 경기를 즐겁게 풀어가면서 결과적으로 10골 정도의 보너스를 딸려 오면 금상첨화라는 마인드를 유지하고 있는 이상 올 시즌에도 박지성의 맨유 입지는 흔들림이 없을 것이다.

 

또 한가지 안심이 되는 것은 냉정하기로 치면 둘째가면 서러워 할 퍼거슨 감독이 박지성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장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감독이 기대하는 역할과 플레이에 누구보다 잘 부응해 온 박지성이다. 언론을 통해 알려진 것처럼 퍼거슨 역시 박지성의 더 많은 득점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다른 선수는 해낼 수 없는 박지성만의 특장점이 계속 발휘가 되는 한 그의 가치는 폄하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겉으로 드러난 퍼거슨의 표현을 액면 그대로만 해석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퍼거슨의 발언중 의미심장한 것은 개별 공격자원별로 골 기대치를 표명한 것이 아니라 유사한 포지션에 있는 공격자원 그룹별로 희망수치를 피력했다는 점이다. 즉, 박지성 개인이 몇 골을 넣느냐보다 로테이션으로 돌아가는 공격조합들이 누가 더 많은 골을 넣든지간에 전체적으로 일정 수준의 공격포인트를 올려주기를 기대하고 있다는 의미다. 직접적인 어시스트 역시 많은 편은 아니지만 다른 공격수들이 더 많은 골을 양산하는데 박지성이 보이지 않게 기여해온 점을 감안할 때, 박지성의 가치는 직접 골을 뽑는 비중보다 다른 공격자원들의 골에 얼마나 더 기여하느냐에 따라 결정될 공산이 크다.

 

 

나도 그가 출전한 맨유 경기를 보면서 왜 코너킥을 할 때마다 다른 공격수들처럼 골을 노릴 기회가 있는 페널티 박스에 있지 않고 자리를 잡는지, 다른 선수들이라면 골 욕심을 내면서 과감하게 슈팅을 날리려고 할 때조차 적극성을 보이지 않는지 답답해 하며 끙끙댈 때가 많다. 그러나 이런 마음은 우리 국적의 축구영웅이 더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우리에게 더 강렬한 짜릿함을 선사해주기 바라는 단순한 욕심에 의거한 평범한 팬들의 감정적인 반응일 뿐이다.

 

박지성 선수가 더 오랫동안 세계축구의 메카에서 멋지게 활약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면 우리는 그런 감정적인 반응의 연장선상에서 찌라시 언론의 호들갑스런 선동에 휩쓸려 그에게 맞지 않는 잣대를 가지고 부담을 안겨주거나 일희일비할게 아니라 박지성다운 화려하진 않지만 성실한 플레이가 팀과 조화롭게 녹아들어가 조금 더 숙성될 수 있도록 믿음으로써 지켜봐 주었으면 좋겠다. 이미 박지성은 우리에게 넘치도록 많은 기쁨과 환희를 안겨준 아름다운 영웅임을 잊지 말자. 박지성 화이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