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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의 볼넷이 승부를 갈랐다구??

재능세공사 2008. 10. 15. 12:16

전담기자 맞아?

 

어제 박찬호가 챔피언십 시리즈 세번째로 등판해서 아쉽게도 폭투로 블로운 세이브를 기록하고 후속타자를 볼넷으로 내보내면서 중요한 순간에 구원에 실패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선수생명이 위태로울만큼 살얼음판 같은 시즌을 시작했지만 재기상 후보에 오를 정도로 부활에 성공했던 박찬호였기에 시즌 후반과 포스트시즌에서의 부진이 아쉬움으로 남는 순간이었다.

 

 

당초 포스팅할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포털 대문에 떡하니 올라온 기사 하나를 읽다가 열불이 나서 이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 꽤 오랫동안 다저스 전담기자라는 자의 기사를 한번 읽어보시라.

 

'LA 타임즈, 박찬호 볼넷이 승부를 갈랐다' - OSEN 김형태 특파원 

 

김형태 특파원이 지적처럼 이 기자가 박찬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뉘앙스로 쓴 기사라기 보다 나름대로 미세한 흐름이 얼마나 경기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지 개인적인 분석을 드러낸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어제 엑스포츠를 통해 하이라이트를 여러본 복기해 본 바에 따르면 이 기자가 훨씬 더 결정적인 순간들을 흘려보내고 결과적으로 박찬호의 입지에 타격을 가한 지나치게 주관적인 감상을 드러낸 기사가 되고 말았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경기내용을 복기해 보자.

 

3-2로 앞선 6회초 토리 감독은 다저스가 애지중지하며 키우는 미완의 대기 클레이튼 커쇼를 등판시킨다. 시즌 내내 롱 릴리프로 기용했던 궈홍치와 박찬호보다 시리즈 향방을 가늠할 수도 있는 중요한 시점에 유망주라고 하지만 큰 경기 경험이 전무한 이 신출내기를 내세운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커쇼는 1사 2,3루의 위기를 자초하고 마운드를 박찬호에게 넘긴다.

 

스포츠 게시판의 어떤 분이 지적한 것처럼 슬로우 스타터이자 선발체질인 박찬호에게 가장 부담스런 상황에서 임무를 맡긴 것이다. 박찬호는 첫 타자를 얕은 우익수 플라이로 처리하며 첫번째 위기를 넘긴다. 이어진 폭투로 동점을 허용했는데 박찬호의 완전한 실투라기보다 운이 따르지 않았다. 결국 다음 타자에게 볼넷을 허용하고 교체됐는데 경기종료 후 박찬호의 인터뷰 내용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박찬호는 자신의 역할을 클레이튼 커쇼가 실패한 롱 릴리프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볼넷을 내준 타자와의 승부에서 제구력 난조로 볼넷을 내준 것이 아니라 타자의 적극성을 시험하며 섣부른 승부를 피하고 다음 타자를 상대할 선발투수 체질다운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토리는 박찬호에게 강한 대타자가 등장하자 가차없이 투수를 교체했다. 박찬호는 당혹해 하는 표정이 역력했고 토리 감독의 자신에 대한 믿음이 이 정도 수준밖에 되지 않음을 실감한다.

 

 

토리 감독의 이 투수교체는 적절했고 결과도 좋았다. 박찬호에게 더이상 기회를 주지 않은 것이 국내 팬의 입장에서는 안타까웠고 이디어의 호수비에 따른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문제는 6회말 다저스 공격이다. 케이스 블레이크의 솔로홈런으로 승기를 잡은 다저스는 이어진 무사 1,2루 찬스에서 퍼칼의 보내기 번트때 라이언 하워드의 실책으로 한점을 더 추가하고 고의사구로 무사 만루의 찬스를 이어간다.

 

 

진짜 승부를 가른 것은 필라델피아 선수들의 집중력

 

승부의 쐐기를 박을 수 있는 이 찬스에서 이날 진짜 승부를 가른 필라델피아 어틀리의 기가막힌 더블플레이가 나오면서 다저스는 추가점을 뽑지 못한다. 전담기자는 이 대목을 짚었어야 했다. 누구의 실책도 아닌 이 호수비가 4차전의 승부를 가른 진짜 결정적인 순간이었으니 말이다. 포스트 시즌에서 코리의 총애를 한몸에 받았던 코리 웨이드와 사이토대신 마무리로 나선 조너선 브록스턴이 8회 두개의 투런홈런을 맞은 것은 어떤 뛰어난 투수라도 피할 수 없는 불운한 실투(빅토리노의 홈런은 타자가 잘 친 것이었고)로 봐야 한다.

 

 

결과론이긴 하지만 웨이드가 동점홈런을 허용한 직후에 바로 마무리 조너선 브록스턴으로 교체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전담기자의 생각대로라면 웨이드가 홈런이후 허용한 볼넷이야말로 박찬호의 볼넷보다 더 아픈 결과가 아니었을까? 웨이드 역시 아직 경험이 부족한 선수고 브록스턴도 마무리 경험이 많지 않은 선수였기에 더더욱 아쉬운 교체 타이밍이었던 셈이다.

 

이 경기를 지켜본 누구라도 객관적인 이번 4차전의 승인은 꼴찌반란을 일으킨 템파베이와 더불어 저력을 보여준 필라델피아 선수들의 집중력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물론 가끔씩 메이저리그 경기를 관전하는 아마추어들보다 시즌 내내 전담기자로 활동한 그가 더 전문가임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전문가라고 항상 정확한 지적을 하는게 아니라는 것을 이번 기사를 통해서 또 한번 확인하게 된다.

 

 

결국 이 모든 환경들은 박찬호 스스로 실력으로써 극복해야만 한다. 내년 시즌 어느 팀이건 다시 선발로 돌아온 박찬호의 호투를 기대한다. 다저스와의 궁합은 맞을지 몰라도 토리감독이 올시즌 내내 박찬호에게 보여준 신뢰수준을 감안하면 그에게 좀 더 믿음을 가지고 기회를 줄 수 있는 팀과 감독을 만나는 것이 박찬호 야구인생의 멋진 마무리에 도움이 될 것을 굳게 믿는다. 언제나 그대의 팬으로 남을 것을 약속하며 찬호 앞날에 광영 있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