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토피아

베토벤 바이러스, 사랑에서는 두루미가 마에스트로

재능세공사 2008. 10. 17. 03:36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

 

수요일 결방으로 수많은 베바 매니아들이 금단현상으로 괴로웠을 것 같은데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각설하고 11회의 주인공은 사랑을 호르몬 장난으로 치부하는 강마에조차 거부할 수 없게 만든 진정한 사랑의 타짜 두루미였다. 사랑에서만큼은 그녀가 마에스트로임을 확실히 각인시키는 에피소드라고나 할까.

 

 

잠시 그녀가 강마에의 철의 심장을 어떻게 녹여왔는지 복기해 보자. 강마에의 독설을 처음 접했을때 굴욕모드로 일관하는 것처럼 보였던 그녀는 이판사판 공사판의 자세로 강마에의 클래식에 대한 생각을 그가 깨갱할 정도로 거침없이 까댐으로써 쌈닭이라는 특별한(?) 호칭을 획득하는데 성공한다. 인상적인 데뷔 후 바로 꼬리를 내리고 한없이 연약해 보이는 굴복모드로 다시 변신.

 

강마에의 놀라운 지휘실력에 뻑갔으면서도 리틀 강건우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호락호락하지 않은 면모도 보여주고 프로젝트 오케스트라 공연에서 자신의 마음까지 사정없이 지휘해 버린 남자에게 단독찬스를 잡아 '선생님을 알고 싶어요' 같은 은은하지만 설레이는 대사를 던져 버린다. 사실 이 대목에서 강마에의 철의 심장에 처음으로 균열이 생겼으리라 확신한다. 왜냐하면 이때부터 강마에는 두루미를 만날때 마다 긴장감을 감추기 위해 억지스런 태연을 가장하느라 힘이 들기 시작했으니까.

 

리틀 강건우와 로맨틱 모드 연출하다가 강마에가 나타나자 보는 이들이 민망할 정도로 노골적인 부인을 서슴치 않는 담백함과 은근슬쩍 강마에가 감추고 있는 감정의 일면을 어린아이 다루듯 들춰내는 솜씨 또한 탁월하다. 강마에의 자기방어용 독설과 진실감추기용 모욕에도 매번 순간적으로 타격을 받지만 순식간에 전열을 재정비하고 물러서지 않는 씩씩함을 보여준다.

 

두루미가 끊임없이 시도하는 강마에 기분 달래기 노력이 겉으로는 실패한듯 보이지만 그 시도 자체만으로 강마에의 가슴은 서서히 뜨거워진다. 호기심, 잔재미, 설레임, 자만심을 적절히 건드려주는 잔잔한 사랑의 잽에 기분좋게 멍들어 가는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일때마다 터지는 사랑의 적시타는 또 어떤가. 일명 두루미체로 강마에 악보에 새겨진 'The Best' 마에스트로 강건우, 과자 일곱줄 한입에 넣기, 파스신공 한방, 깜짝 생일파티, 시간적 물리적 공간을 뛰어넘어 필요한 순간에 들려주는 음성메시지 7방 등등.

 

사랑의 마에스트로 두루미의 진짜 비전절기는 '사라져서 애태우기'다. 강마에가 어렵게 감정을 담아 한발짝 다가오거나 아끼는 감정을 애써 숨기며 더 모질게 도발할 때마다 처연한 표정을 충분히 보여준 다음, 모든 마음을 비운 쿨한 사람처럼(사실은 자신의 일거수 일투족이 확인될 것을 알면서) 홀연히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한다. 

 

 

연애의 기본덕목 '밀고 땡기기'를 고급스럽게 구사한 두루미는 결국 강마에를 자신의 스트라이크 존으로 끌어 들이는데 성공하고 뻘쭘함을 어줍잖은 퉁명스러움으로 포장하려는 강마에를 와락 품에 안아 버리며 항복을 받아내고야 만다. 그전에 두루미의 음성메시지를 듣고 주문에 홀린듯 같은 음악을 틀어놓고 거의 모든 마음의 빗장이 벗겨진 강마에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이미 그가 달려갈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리틀 강건우는 친구로 남길 거부하지만 여전히 두루미가 아픈게 싫다. 존경하는 강마에가 힘들어 하는 것도 볼 수 없는 이 여린 남자는 끝내 두 사람 모두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해주고는 닭똥같은 눈물을 흘린다. 그 역시 두루미의 사랑의 지휘에 빠져 들었지만 그녀의 의사가 명확히 들어 있는 또 다른 지휘에 따를 수 밖에 없는 사랑교향곡의 연주자였던 셈이다.

 

 

시장과 시의원을 독한 방법으로 휘어잡은 강마에지만 오늘만큼은 두루미, 리틀 강건우, 김갑용 선생에게 두루두루 얻어 맞으며 긍정적 의미의 백기를 든 하루가 아니었을까. 배용기의 포복절도할 대사가 묘한 여운으로 남는 11회였다. "이랬다 저랬다 장난꾸러기도 아니고, 자기가 네로야 뭐야.. 흠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