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토피아

베토벤바이러스, 홍자매 작가의 대단한 필력

재능세공사 2008. 10. 6. 16:44

명품드라마의 필요충분조건

 

지난주 6회에서 다소 숨고르기에 들어갔던 베토벤 바이러스가 새로운 에너지를 분출하고 있다. 일명 '리틀 강건우의 반란'사건으로 촉발된 긴장은 정명환과 강마에가 벌이는 대리전쟁이라는 뻔한 예상을 가볍게 비웃더니 천재에 대한 입체적인 정의를 중심으로 강마에와 정명환을 또 다른 관점에서 조망하게 만든다.

 

 

이쯤해서 명민좌 김명민이 독식해왔던 스포트라이트를 대단한 필력을 선보이고 있는 홍자매 작가에게도 돌려보자. 이들이 꽤나 큰 규모의 프리미어를 통해 구축해 놓은 베토벤 바이러스 나라의 캐릭터들은 튼실하게 자리를 잡은지 오래다. 사실 강마에라는 캐릭터 하나만으로도 이 드라마는 명품드라마의 필요조건을 충족시키고 있고 흔하지 않은 소재인 클래식을 통해 뻔한 드라마와 구별되는 차별화 역시 확보한 상태다.

 

이제 명품드라마가 되기 위한 남은 충분요건이란 이미 윤곽이 드러난듯 보이는 스토리 라인을 다양하게 변주하면서 끝까지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느냐 뿐이다. 혹자는 어설픈 러브라인을 경계하고 혹자는 꿈을 이루어 나가는 이들의 모습이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지게 그려지면 어쩌나 하는 노파심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우려는 7회에서 선보인 홍자매의 필력으로 볼 때 단지 노파심으로 끝날 공산이 커보인다.

 

 

강마에와 정명환이 나누는 특별한 우정

 

7회의 주인공은 누가 뭐라고 해도 정명환이다.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와 정명환은 자칫하면 일관성 없는 캐릭터라는 오명을 쓰기 쉬울만큼 입체적인 면모를 자랑한다. 강마에가 쉽게 개과천선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으며 정명환 역시 그런 위험성을 내포한 캐릭터다. 강마에의 천재 콤플렉스 원인제공자이자 역설적인 동기부여자로 잠깐씩 등장했던 정명환의 이전까지의 이미지는 성실한 독종을 비웃는 얄미운 천재에 가까웠다.

 

리틀 강건우가 정명환을 찾아가 제자가 되기를 청했을 때 이 캐릭터는 기가 막힌 변신술을 보여준다. 껄렁껄렁해 보이기만 했던 정명환이 강건우의 천재성을 확인하고 던지는 반문은 뜻밖에도 진지함 그 자체였다. "모짜르트가 작곡할 때도 그랬을까(천재성만 믿고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을까)? 아닌거 같아 내 경우를 보면"

 

난처해 하는 강건우를 데리고 강마에의 허락을 받으러 가는 정명환의 모습을 보면서 이런 장면을 예상했었다. '이렇게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아이도 강마에 너같이 음악을 즐기지 못하고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스승보다는 같은 종류의 사람인 나를 선택할 수 밖에 없다'고 야유하며 자신이 역시 한 수 위임을 증명하고 싶은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정명환은 강마에를 찾아가 처음으로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는다. 강마에가 자신을 의식하고 있는 이상으로 자신도 강마에에게 뒤지지 않으려 발버둥쳐 왔다는 것을. 천재로 이미지화 된 자신의 겉모습때문에 자신을 포장해야 하는 부담과 음악외적인 이유때문에 평가절하될 수 밖에 없는 강마에에게 실력으로 뒤쳐지지 않기 위해서 악착같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는 정명환의 고백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직접적인 묘사는 없었지만 강마에는 정명환의 고백을 통해 가슴속의 컴플렉스를 어느 정도 털어내지 않았을까. 음악을 대하고 해석하는 입장은 분명 달랐지만 강마에와 정명환 모두 최고가 되기 위한 치열한 노력없이는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 위치에 오를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에 동의하게 된 셈이다. 이들의 특별한 우정이 성립하는 이유가 두 사람 모두 서로의 음악적 성취와 수준을 인정하기 때문임을 알 수 있는 장면이기도 하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리틀 강건우의 거취를 결정하면서 강마에가 털어놓는 자신에 대한 냉정한 평가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입에서 나오는 '주변부를 배회하는 A마이너 음악가'라는 평가는 세상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그런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한 계속될 수 밖에 없는 운명임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강마에도 누구보다도 자신을 꿰뚫어 보고 있는 정명환에게는 솔직한 심중을 털어놓는다.

 

 

러브라인 걱정할 것 없다

 

난 기본적으로 베토벤 바이러스안에서의 러브라인 형성이 뻔한 멜로로 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또한 러브라인이 명품드라마로 가는 길에 장애요인이 될거라고도 보지 않는다. 흔히 말하는 두루미의 양다리는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비난받을 소지는 있을지라도 남녀간의 감정선을 감안하면 이해못할 일도 아니다.

 

 

강건우는 누가 봐도 두루미의 짝으로 손색이 없다. 상황적으로도 그렇고 이 정도 매력적인 청년을 쉽게 거부할 수 없는게 당연하다. 잘 생긴데다 놀라운 재능은 물론 따뜻한 정도 있고 배려심도 철철 넘쳐 흐르는 거의 완벽해 보이는 남자 아닌가 말이다. 그런데 강마에 역시 그 괴퍅하고 꼴똥스러운 성격에도 불구하고 강건우와는 또 다른 종류의 매력과 카리스마를 가진 인물이다. 두루미가 이 둘 사이에서 혼란스런 감정을 느끼는 것은 그래서 자연스럽다.

 

개인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베토벤 바이러스 러브라인의 중심은 두루미가 아니라 강마에다. 리틀 강건우와 두루미는 강마에에게 서로 다른 형태의 애정을 불러 일으키는 존재인 동시에 강마에만의 매력에 서로 다른 이유로 빠져있는 인물들이다. 이 들 셋이 모일때마다 발생하는 긴장은 이런 서로 다른 복잡한 감정선이 충돌하기 때문은 아닐까?

 

 

 

강마에는 외로운 사람이다. 오죽하면 세상에 두려울 것 하나 없어 보이던 그가 토벤이를 잃을까봐 그렇게 애절하게 눈물을 지었을까. 그런 그에게 두루미는 흥미로운 녀석(여자가 아니라)이다. 자신과는 너무나 다르지만 쌈닭같은 기질에도 불구하고 쉽게 알아챌 수 없는 또 다른 강마에의 일면을 감지하고 끊임없이 부추기고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다가서는 두루미는 고독한 강마에에게는 신선한 자극일 수 밖에 없다.

 

 

두루미가 음악외적으로 강마에를 자극하는 존재라면 리틀 강건우는 강마에의 예술혼을 자극하는 인물이다. 정명환에게 털어놓았듯이 이 녀석은 자신과 정명환의 부족한 점을 상쇄할만큼 무협지식으로 따지면 무림천골지체와 같은 천재성에 사람들과의 교감능력까지 타고난 존재인 것이다. 그런 엄청난 잠재력을 알지 못한채 인생을 낭비하고 있는 리틀 강건우에게 강마에가 시선을 떼지 못하는 것은 그래서 자연스럽다. 위대한 천재성을 가진 빛나는 원석을 자기 손으로 제대로 조련할 기회를 갖게된 강마에는 예술가로서 가장 큰 성취감을 맛보게 될 것이다.

 

 

 

진정한 관계맺기를 배워가는 강마에

 

강마에의 이전까지의 삶은 자신의 음악적 성취를 위해 점철된 시간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다른 이들과의 관계란 자신의 지휘를 통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충성스러운 연주자밖에 용납되지 않아 왔다. 그런 그에게 음악외적인 새로운 형태의 관계를 요구하는 이들이 무더기로 나타난다. 음악적인 잣대로 그들을 아무리 내치고 외면하려 해도 저마다 사연을 가진 이들의 몸부림과 호소를 간과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실력 지상주의자 강마에를 움직이게 만든 진짜 힘은 과연 무엇일까? 측은지심이 왜 없겠냐만은 꿈꿀 기회라도 얻어보겠다는 그들의 치열하고 진실되며 절박한 노력이야말로 강마에의 마음을 흔드는 진정한 이유가 아닐까. 세속적 성공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자신의 꽃도 한번은 피워내려는 이들의 가냘프지만 정성스런 노력을 자기 손으로 차마 꺽을 수 없는 것이며 그들에게 내미는 자신의 작은 손길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서서히 실감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강마에라는 극단적인 캐릭터를 통해서 홍자매 작가는 우리에게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진정한 소통과 관계맺기의 소중함을 알려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강마에 캐릭터는 전체적인 측면에서 우리와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우리 스스로 의식하지 못해서일뿐 부분적으로 우리 자신의 부정적인 단면을 여러가지 의미에서 확인해 볼 수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강마에를 둘러싼 인물들 역시 그렇다. 그속에 우리의 좌절, 절망, 희망, 꿈 등이 다양한 모습으로 녹아들어가 있다. 우리는 단지 가공의 드라마는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현실, 현재의 선택으로 달라질 수 있는 미래를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에게는 진정한 스승, 사랑하는 연인, 함께 꿈을 향해 달려가는 동료, 우리의 작은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누군가 모두가 필요하다. 바로 지금 그 소명을 향해 힘차게 떨쳐 일어나 걸어가 보자. 언젠가 만나게 될 아름다운 미래를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