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토피아

베토벤바이러스 5부작 프리미어를 보고나서

재능세공사 2008. 9. 25. 09:44

이제까지는 전초전에 불과했다

 

미드는 매 시즌을 시작할때마다 일종의 서막격인 프리미어편을 방송하곤 한다. 프리미어편의 임무는 이렇다. 파격적인 전개와 시즌에서 활약한 주요 캐릭터 및 중심플롯에 대한 복선을 압축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앞으로 이어질 후속편에 대한 시청자들의 기대치를 높이고 확실하게 출근도장을 찍게 만드는 첨병역할을 해야 한다. 인터넷상에서 최상의 인기 드라마로 자리매김한 베토벤바이러스에서 이 정도 물량의 프리미어를 보게될 줄은 정녕 몰랐다.

 

많은 분들이 지난주 4회가 끝나고 방영된 예고편에서 좌충우돌하며 우여곡절끝에 오케스트라 흉내를 내기 시작한 프로젝트 그룹 에피소드의 하일라이트격인 공연장면이 5회의 주요내용으로 소개되자 당혹감과 의구심을 나타냈고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스피드있는 전개는 좋다만 도대체 5회 이후에는 어떻게 꾸려갈려고 하는지 걱정이 앞선 것이다. 혹시나 하얀거탑 이상으로 명품드라마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였던 이 드라마가 억지스런 설정으로 용두사미의 전형을 보여줄지도 모른다는 매니아급 노파심이 발동된 것이리라.

 

프리미어 피날레의 당당한 주연, 일명 똥덩어리 정희연

 

오늘 방영된 5회를 보고나서야 이 야심찬 연출자와 작가가 일종의 5부짜리 프리미어편을 가지고 시청자들을 기분좋게 속였음을 깨달았다. 강마에가 어떤 캐릭터인지를 치밀하고 입체적으로 각인시키는데 확실히 성공했고 앞으로 계속 활약할 주요 캐릭터 세팅은 물론 진짜 오케스트라가 되기까지 자근자근 소개될 주요 에피소드의 복선까지 착실하게 심어두었으니 더할나위 없는 서막이 된 셈이다. 투자할만한 가치가 있었다는 얘기다.

 

 

연출자와 작가에게 박수를

 

복선의 윤곽을 알고 있다가 해서 뻔한 스토리가 될 것 같지는 않다. 또한 김명민 본좌의 아우라에만 의존하는 드라마라는 색안경도 벗을 때가 됐다. 만만치 않은 연출력과 상투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던 스토리 전개가 돋보였던 프리미어의 피날레격인 5부가 그 증거다. 지금부터 한번 복기하며 음미해 보자.

 

연주씬에 대한 비판이 많았지만 강마에가 처음으로 지휘의 진수를 보여주며 극중단원과 시청자 모두를 놀라게 했던 장면에서부터 연출자의 공력이 조금씩 느껴졌던게 사실이다. 5부의 하일라이트인 강마에의 지휘, 정희연의 솔로연주, 프로젝트 오케스트라의 하모니를 제대로 보여준 라스트연주신에 이르러서는 배우들의 열연을 더 돋보이게 만들었던 연출력의 힘을 확연하게 실감할 정도였다.

 

참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대목인데 부족하나마 설명을 해보자. 실제연주소리와 드라마 배경음악이 상황에 따라 절묘하게 어우러진 점, 지휘자 강마에를 입체적으로 조망한 카메라웍, 솔로장면에서 프로연기자의 연주장면을 적절히 삽입하여 사실감을 높인 점, 라스트연주씬에서 지휘자와 연주자의 교감을 멋드러지게 잡아낸 클로즈업 등으로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공연씬을 성공적으로 연출해 냈다.

 

너무나도 멋진 지휘솜씨를 보여준 우리의 호프, 명민본좌

 

작가의 역량은 또 어떤가. 강건우가 결국 공연장으로 복귀했지만 솔로공연은 놓치게 된 것도 신선했고 정희연의 성공적인 솔로공연에 찌질이 남편이 마지못해 연주활동을 승낙하긴 했지만 남편캐릭터의 찌질함이 여전히 묻어나는 까칠한 대사도 돋보였다. 콘트라베이스 주자가 현실의 벽에 묶여 결국 공연에 참여하지 못한 대목도 억지스럽지 않아서 좋았고 딸아이의 반복적인 되물음으로 아빠의 곤혹스러운 감정상태를 부각시킨 장면도 훌륭했다.

 

강마에에게는 이성의 수줍은 고백도 통하질 않는다. 정말 왜 두루미가 자기를 잡고 싶어하는지 모르는건지 알고 빈정대는건지 분간하기 어려울만큼 묘한 장면이다. 마치 러브라인은 우리 베토벤 바이러스에서는 발 붙일데가 없다고 선언하는 것처럼 느꼈다면 나만의 오바일까. 예고편에서 환상에서 깨어나 다시 쌈닭의 모습으로 돌아온 두루미의 모습으로 봐서 적절한 선에서 계속 줄타기만 하다 끝나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시장에게 내 단원들이라고 외치는 순간부터 공연이 끝날때까지 개과천선 모드로 일관해서 혹시나 진짜 인간성을 회복한게 아닐까 시청자들이 착각할 무렵 강마에의 본심이 드러나는 대목은 또 어떤가. 무언가 해냈다는 성취감과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찬 단원들의 면전에다 관객의 입장에서 자기의 오케스트라를 즐겨달라고 태연하게 내뱉고는 사라지는 강마에의 마지막 모습은 5부작을 멋드러지게 갈음하는 마무리라 할만하다.

 

 

이제부터가 진검승부다

 

강건우의 천재성이 강마에의 혹독한 조련을 거쳐 어떻게 발현될지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할듯 싶다. 두루미는 앞으로도 러브라인과 매개자 역할사이에서 줄타기 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고 똥덩어리 정희연은 제대로 한풀이를 했으니 조용하게 지낼 것 같다. 대신 치매순재와 열혈하이든 콤비의 활약을 기대해 보자. 

 

 

식객 남상미 필을 확연히 털어버린 이지아

 

새롭게 형성될 엘리트 연주자들과의 갈등도 볼만하겠고 지금까지는 강마에 주위에서 깐족거리며 자극하기만 했던 정명환이 어떤 형태로든 강마에와 맞짱뜨는 장면이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강마에는 과연 지금의 캐릭터를 끝까지 유지하게 될까. 천재성에 대한 컴플렉스를 이겨내고 오케스트라 킬러라는 별명대신 오케스트라 디벨로퍼로 새롭게 불리게 될지는 모르지만 우리가 보아온 강마에스러움은 여전할 것이라는데 한표 던질란다. 앞으로도 쭈욱 강마에 바이러스에 자발적으로 감염되어 많은 이들과 함께 즐감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