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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특별한 인터뷰 - '굿윌헌팅'의 윌 헌팅

재능세공사 2008. 8. 25. 11:22

< 프롤로그 >

다섯 번째 인터뷰 주인공인 윌 헌팅은 현재까지는 최연소 출연자가 될 것 같다. 이제 갓 서른 살을 넘긴 이 수학천재는 인터뷰 요청메일을 보내자마자 오케이 사인을 보낼 정도로 적극적인 모습이어서 원잭을 기쁘게 했다.


특히 지난 인터뷰 주인공인 존 키팅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에게 새로운 인생을 열 수 있도록 큰 역할을 했던 숀 맥과이어 교수가 많이 떠올랐다며 감사의 뜻을 표하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존 키팅과 숀 맥과이어는 외모뿐만 아니라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사랑과 믿음의 힘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그가 안정적인 직장을 뒤로 하고 사랑하는 여인을 찾아 노을 진 하늘을 배경으로 보스턴을 떠난 후 10년 만에 이루어지는 이번 인터뷰는 그가 어떻게 과거의 상처와 두려움을 이겨내고 자신의 삶을 되찾을 수 있었는지, 그리고 그의 인생2막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따뜻하게 음미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역시나 생각으로 나누는 대화방식이 적용되었다)

[윌 헌팅에 대하여]

천재적인 두뇌와 재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고아로 태어나 여러 번의 입양과 강제파양(가정학대로 인해 법률상으로 강제된 입양파기)을 겪으며 깊은 마음의 상처를 안은 채 보스턴 빈민가에서 노동자계층 친구들과 근근이 살아간다.


MIT 공대건물에서 청소부 일을 하던 그는 우연히 칠판에 남겨진 난해한 수학문제를 풀어내면서 제랄드 램보 교수의 눈에 띄게 되고 그의 놀라운 수학적 천재성을 확인한 램보 교수는 그의 정신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친구인 심리학 교수 숀 맥과이어에게 도움을 청한다.

숀과의 만남을 통해 굳게 닫혀있던 윌의 마음은 서서히 열리고 결국 20년 동안 그를 구속했던 마음의 상처에서 벗어나 진심으로 그를 사랑하는 친구의 바램대로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새로운 미래를 찾아 캘리포니아를 향해 떠난다.

< 인터뷰 전문 - 윌 헌팅 >

▼ 이기찬(이하 원잭) :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타이밍이 좋았다는 생각도 드는군요. 열정재능연구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윌헌팅(이하 윌리) : 이런 인터뷰라면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초대해주셔서 감사 드리구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기존에 인터뷰하셨던 분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군요. 특히 존 키팅 선생님은 꼭 만나고 싶군요.

▼ 원잭 : 그렇지 않아도 몇 가지 공통적인 주제를 가지고 인터뷰에 응해주셨던 분들 중에 몇 분을 초청해서 토론회를 진행할까 구상 중에 있습니다. 당신은 이미 토론회 참석에 응해주신 것으로 받아들여도 되겠죠?

▲ 윌리 : 물론입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 참석하기 전에 세 번째 '생각하는 여행'에서 돌아온 숀 맥과이어 교수님을 오랜만에 만나고 왔습니다. 여전히 수염을 기르시고 따뜻한 미소로 절 안아 주시더군요. 하루 종일 그 분과 얘기를 나누었답니다.


▼ 원잭 : 숀 맥과이어 교수님도 함께 모시는 것도 의미가 있었겠지만 당신에게 직접 묻고 싶은 것이 많았습니다. 어쨌든 인터뷰 예행연습은 충분히 하신 셈이니 워밍업도 필요가 없을 것 같네요..^^ 바로 첫 질문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당신의 천부적인 수학적 재능과 더불어 박학다식함을 여러 번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엄청난 독서광이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떻습니까?


▲ 윌리 : 독서광이라. 그렇게 볼 수도 있겠죠. 그런데 여러 가지 사정으로 공식적인 교육을 받아보지 못한 저에게 독서는 단지 취미일 수만은 없었습니다. 책은 제게 친구이고 조언자이자 안내자였습니다. 책은 결코 배신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제가 필요하고 궁금해 하던 것을 대부분 제공해 주었죠.

▼ 원잭 : 거의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독서를 즐기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래도 특별히 애정이 간다거나 관심있는 분야는 있을 것도 같은데요?

▲ 윌리 : 사실 취향이 잡식성이다라는 표현보다는 살아가다 보면 알아두어야 할 것이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습관이 된거 같구요. 솔직히 수학은 제일 재미없는 분야이구요. 제가 몇 번 사고를 쳤을 때 제 스스로를 변호하기 위해 법률서적을 한참 들여다 볼 때가 있었는데 의외로 재미있는 구석이 많더군요.

특히 다양한 판례가 실려 있는 책을 좋아했는데, 어찌나 영화 같은 일들이 많이 벌어졌는지 놀라게 되는 경우도 많고 판결자체도 엉뚱한 게 많아서 읽는 재미가 솔찮죠. 지금도 가끔씩 기분전환할 때면 손이 간답니다.

▼ 원잭 : 뜻밖이로군요. 저도 한번 읽어봐야겠습니다..^^ 이제 램보 교수와의 인연이 만들어졌던 시절에 대한 얘기를 잠깐 해볼까요? 절친했던 친구 처키도 당신에게 물었던 기억이 나는데, MIT 공대 청소부가 된 것은 단지 우연이었나요 아니면?

▲ 윌리 : 제가 사실 그 일을 하고 있을 때는, 그냥 우연히 일자리가 그곳에 생긴 거뿐이라고 생각했었죠. 그런데 처키의 얘기를 듣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제 마음속 어딘가에 수재들이 모여 있다는 MIT에 있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던 거 같아요.

▼ 원잭 : 일종의 무의식적인 반응과 같은 것이었나 보군요. 칠판에 남겨져 있는 수학문제를 풀게 된 것도 의도적인 행동이라기보다는 자신도 모르게 이끌린 게 아닌가 싶은데..

▲ 윌리 : 정확히 보셨습니다. 우연히 지나가다가 그 문제를 보는 순간 풀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분필을 들었는데 어느 순간 칠판에 해답이 채워져 있더군요. 그 당시 저에게는 일을 하다가 잠깐 동안의 퍼즐게임을 즐긴 셈이었지요.

▼ 원잭 : 그럼 그 문제가 유명한 수학자들도 증명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 난해한 문제라는 사실도 전혀 몰랐겠군요.


▲ 윌리 : 저에게는 약간 흥미로운 퍼즐이었을 뿐이지요. 수학은 저에게 그런 대상이니까요. 문제를 보는 순간 직관적으로 제 머릿속에서 해답이 실타래처럼 술술 흘러나오는 걸 옮겨 적는 것이니 어렵다고 느낄 이유가 없죠..^^

▼ 원잭 : 램보 교수를 포함한 수학도들이 들으면 모두들 살리에르가 된 기분일 것 같군요. 하긴 실제로 램보 교수는 인도의 천재적인 수학자 라마누잔이 다시 태어났다고 흥분한걸 보면 당신을 수학계의 모짜르트로 인정한건 분명한 거 같은데요.


▲ 윌리 : 지금도 그 당시 램보 교수님께 제가 했던 행동들을 떠올려 보면 부끄럽고 죄송스럽기 그지없습니다. 그 분은 정말 수학을 사랑하셨고, 자랑스럽게 여긴 분이었는데 저는 분에 넘치는 수학적 재능만 믿고 오만하고 무책임하게 굴었었죠. 이 자리를 빌어서 램보 교수님을 비롯한 수학도들에게 정중히 사과드리고 싶군요.

▼ 원잭 : 그런 뜻으로 던진 질문은 아니었는데.. 분위기를 전환하는 의미에서 스카일라와의 첫만남 이야기를 좀 해보죠. 사실 그녀의 적극성이 없었다면 당신 스스로 그녀에게 먼저 다가서지는 않았을 거 같은데요.

▲ 윌리 : 처키가 제법 그럴싸하게 작업을 걸고 있을 때 그 어리버리한 하버드 찌질이가 끼어들지만 않았어도 스카일라에게 어필할 기회는 없었겠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사실 친구들이나 그녀에게는 저의 속사포와 같은 잘난 체가 통쾌했을지 모르지만 그 찌질이 친구보다 한술 더 떠서 잘난 체를 했다는 측면에서는 훨씬 더 철없는 짓이었지요. 게다가 스카일라가 적어준 메모지를 그 녀석 면전에 대고 의기양양해서 소리까지 질러대는 제 모습을 떠올려 보면 정말 민망스럽군요.

물론 그녀를 처음 보는 순간 끌렸지만, 그녀가 제 곁을 지나가며 45분 동안 헛기다림에 대한 실망감을 한방 날려주었을 때, 그녀의 솔직함과 위트에 홀딱 반해버렸죠. 저에게는 믿기 힘든 행운이었죠. 지금도 그녀에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 원잭 : 동서양을 막론하고 잘난 체하는 것만큼 유치하고 비난받는 일은 없는 거 같습니다. 그래도 그때 상황을 기억하는 분들이라면 여전히 당신의 민망함에도 불구하고 당신 손을 들어줄 것 같군요..^^

어쨌든 스카일라는 그 이후에도 당신의 여러 번의 머뭇거림에도 불구하고 당신에게 다시 기회를 주곤 했는데요. 그녀에게서 당신에 대한 모성애 같은 것이 느껴졌다면 과장일까요?


▲ 윌리 : 스카일라를 만나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느껴지는 긴장감 같은 것이 순식간에 풀려버리곤 했죠. 어머니 자궁 속에 있는 태아가 된 것 같은 편안함이라고나 할까요. 그녀는 절 그대로 느끼고 있는 것 같았어요. 항상 유쾌한 수다와 농담으로 절 즐겁게 해주었죠. 그리고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느낌도 알게 해주었어요. 모성애라는 표현이 딱 맞는 거 같아요.

▼ 원잭 : 이제 숀 얘기로 넘어가 볼까요? 숀을 만나기전에 당신에게 골탕 먹은 정신과 의사나 최면가, 그리고 상담전문가들이 다섯 명 정도 되었지요. 아마?

▲ 윌리 : 그랬죠. 그 당시에는 제가 그런 상담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부정하고 싶었고, 제 나름대로의 저항을 궁리한 셈인데. 그 분야에서 꽤 내로라하는 분들이 아킬레스건이 될 만한 점을 몇 가지 찔렀더니 의외로 쉽게 말려들더군요.

한편으로는 서글픈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분들이 저를 쉽게 포기할 때(물론 심한 모욕을 느꼈겠지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은 저를 그저 치료해야 할 대상으로만 여기고 있을 뿐, 가슴으로 이야기를 들어주고 제 아픔을 보듬어 주어야 하는 인격체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을..

▼ 원잭 : 직업적인 관점으로만 접근하는 분들에게서 당신의 마음이 열리길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였겠지요. 숀과의 첫 번째 만남에서 다른 점이 있었다면 어떤 것이었습니까?

▲ 윌리 : 그 역시 다른 사람과 똑같은 부류일꺼라고 생각했었죠. 그래서 그의 방에 들어가자마자 시험하고 공격할 꺼리를 열심히 찾았고 그대로 했습니다. 그는 지적인 면에서 부족한 점이 없는 사람임을 곧 알게 됐어요. 그래서 아내 이야기를 꺼내며 성질을 긁어보기로 방향을 바꿨죠.

그런데 그가 진짜로 화를 냈어요. 아니, 분노라는 표현이 정확하겠군요. 갑자기 아무 생각이 나지를 않았습니다. 그 순간의 그는 저를 상담하는 사람도 심리학 교수도 아닌 사랑하는 아내를 모욕하는데 분노하고 상처 입은 그저 평범한 남자였죠.

역설적으로 바로 그 순간 숀은 그전에 만났던 이들과 다른 사람임을 알게 되었죠. 그리고 이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내 진짜 고민을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 섞인 기대를 처음으로 갖게 됐죠.

 

▼ 원잭 : 당신과 숀의 첫 번째 만남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기싸움'이 아니었을까 싶은데요. 램보 교수는 방안의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하고는 숀과 당신 모두 더 이상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무언가 보이지 않는 선이 그때부터 연결된 듯이 보이던데..

▲ 윌리 : 제가 그의 방에 들어서서 어쭙잖게 숀의 아킬레스건을 찾고 있을 때, 그는 제가 어떤 놈이란 걸 단숨에 알아낸 것 같았어요. 그 왜소해 보이던 사람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제 목덜미를 움켜쥐었을 때 두렵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시원한 감정이 생기면서 있는 그대로의 숀을 느낄 수 있기도 했죠.

▼ 원잭 : 두 번째 만남은 겉으로 드러나는 평화로운 분위기와는 달리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서는 결코 들어보지 못했던 신랄한 비판이 숀으로부터 거침없이 쏟아졌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 윌리 : 그랬죠.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얼굴이 달아오를 정도라니까요. 그가 아무 말 없이 호숫가로 저를 이끌고 갈 때만 해도 그런 날선 이야기가 쏟아질 줄은 예상치 못했죠. 제가 이전에 겪었던 사람들은 대부분 제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려고 갖은 애를 다 쓰는 게 보통인데 제대로 한 방 먹은 셈이죠.


숀은 아주 중요한 얘기를 제게 해주었어요. 제가 아무리 많은 지식으로 포장을 하고 무장을 해도 그리고 엄청난 기억력과 속사포 같은 입심으로 그걸 자랑해도 제 마음속의 두려움과 체험하지 못한 지식의 공허함을 숨길 수 없다는 진실을 말입니다. 그의 표현처럼 저는 세상에 대한 두려움에 한 발짝도 내딛을 수 없으면서 폼 나고 대차게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과장되게 떠벌리던 어린애였던 겁니다.

제 튼튼하지 못했던 가면을 모두 벗겨버리고서는 그는 제게 말했어요. 진짜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냐고. 누구의 선택도 아닌, 제 선택에 달려있다고 그는 말했지요. 그가 내민 손길을 그 때 외면했다면 저는 영원히 상처 입은 어린애로 평생을 두려움에 떨면서 살아갔을 겁니다.

▼ 원잭 : 세 번째 만남은 또 다른 분위기였는데요. 1시간이 다 가도록 두 사람 모두 한 마디도 안 했었죠, 아마. 도대체 그 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나요?

▲ 윌리 : 첫 번째 기싸움과는 다른 의미였지만 양상은 비슷했죠. 그런데 사실 우리는 언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그 때 의미 있는 대화를 많이 나누었던 거 같아요. 침묵이 여러 가지 의미로 쓰일 수 있다는 사실도 그 때 알았죠.

제 침묵에는 그가 이전 만남에서 쏟아 부었던 얘기들에 대한 무언의 동의, 당신을 정말 믿어도 되는 건지, 무슨 말로 어떻게 시작하면 될지 아직 잘 모르겠다는 등의 여러 가지 뜻이 담겨져 있었고 숀은 내내 같은 대답만 하고 있었죠.

"네가 선택해 윌. 그럼 진심으로 대해주마"

▼ 원잭 : 당신도 이번 인터뷰에서 적용되고 있는 생각으로 나누는 대화방식을 그때부터 사용했던 것이로군요..^^ 어쨌든 네 번째 만남부터 숀과의 소통이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겠군요.

▲ 윌리 : 정확히 보셨습니다. 우리는 그때서야 이야기를 나눌 준비가 된 셈이죠. 물론 아직은 민감한 속내를 주고받을 정도는 아니었죠. 우리는 농담을 주고받기도 하고, 제 여자 친구와 숀의 아내얘기도 하면서 서로를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숀의 얘기 중에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가 아내와의 추억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이 거창하거나 감동적인 그 무엇이 아니라 '아내의 방귀소리'와 같은 아주 사소한 것이었다는 사실이었어요. 물론 그 사소함속에 그들의 오밀조밀한 사랑의 감정이 잔잔하게 담겨져 있었죠.

누구도 완벽하지 않다는 그의 말이 스카일라에 대한 제 두려움을 완전히 없애주지는 못했지만 좀 더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해주었고, 한편으로는 숀 역시 아내와의 소중한 추억과 사랑 때문에 또 다른 사랑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다음 만남에서도 계속 사랑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그가 보스턴 레드삭스의 그 멋진 경기를 내팽개치고 아내를 만나러 갔다는 사실을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다는 얘기를 할 때는 정말 멋져 보였습니다(멍청해 보이기도 했지만). 저도 그런 사랑을 하고 싶었어요. 다른 사람을 제 자신보다 더 사랑할 때만 느낄 수 있다는 진정한 상실감을 느끼는 한이 있더라도 말입니다.

▼ 원잭 : 누군가를 사랑하기에 앞서 자신을 먼저 사랑하는 연습이 필요하지는 않았나요?

▲ 윌리 : 숀도 그걸 알았던 것 같아요. 그는 소울메이트가 있냐고 제게 물었죠. 절 북돋워주고 제 마음을 열어 영감을 주는 그런 존재가 있냐고 거듭 물었죠. 가장 친한 친구 처키나 사랑에 빠진 스카일라는 절 누구보다 사랑했지만 절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습니다. 제가 그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기도 했지만 그건 확실히 다른 거였죠.

한편으로는 사랑하는 이들이 줄 수 없는 것들을 유명한 대가들에게서 얻으려 했어요. 그러나 그들과의 교감은 한계가 분명했죠. 아주 나중에서야 숀이 제 소울메이트였다는 걸 깨닫게 되었을 때 제가 생각보다 운이 나쁜 녀석이 아니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죠.^^

▼ 원잭 : 당신이 재능이 줄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 버리는 것에 대해 숀이 지적을 했을 때 또 한 번 당신의 감정이 폭발했던 것 같은데..

▲ 윌리 : 아픈 곳을 찔린 거죠. 고통은 반항심을 이끌어 내 방패로 삼더군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을 똑바로 쳐다보아야 한다는 것이 싫기도 했고 그동안의 제 행동이 제 가능성을 낭비했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었죠. 나도 나를 둘러싼 환경을 감안하면 그런대로 잘 살아왔다. 뭐 그렇게 말하고 싶었는데..

그런 부질없는 저항은 숀이 날린 아주 단순한 질문에 힘없이 무너졌죠. "네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뭐니? 하고 싶은 게 뭐냐?" 생각해 보십시오. 그 복잡하다는 수학문제를 심심풀이 땅콩처럼 풀고, 하버드의 잘난 체하는 찌질이에게조차 밀리지 않았던 제 머리속의 지식이 이 단순해 보이는 질문에 전혀 도움이 안된다는 걸 느꼈을 때의 낭패감을요. 그저 말문이 터억 막히더군요.

▼ 원잭 : 스카일라를 떠나보내고 힘들어 하는 당신에게 처키가 맘먹고 자신의 속내를 털어 놓았을 때 어떤 기분이었나요?

▲ 윌리 : 이래저래 제 자신에게 화가 나있기도 했고 갑작스럽게 제 주변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같은 잔소리를 한다는 생각에 짜증이 배어 있었는데.. 처키에게 한방 제대로 걸린 거죠. 솔직히 녀석의 이야기를 들으며 미안하고 부끄러워졌습니다. 지금도 처키의 호통이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넌 지금 당첨된 복권을 깔고 앉아 너무 겁이 나서 돈으로 바꾸지 못하는 꼴이라구. 병진 같은 짓이지. 네게 있는 재주를 가질 수 있다면, 난 무엇이든지 할 거야. 여기 있는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야. 여기에서 20년이나 곯는 건 우리에 대한 모욕이야."

▼ 원잭 : 숀과의 마지막 상담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겠군요. 누구나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있을텐데 당신에게는 역시 그 순간이었겠지요?

▲ 윌리 : 사실 숀과 램보 교수가 다투는걸 밖에서 들었죠. 이상한 기분이었습니다. 절 알게 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사람들이, 그것도 자신들에게 별 이득이 될 수도 없어 보이는 골칫덩이 젊은 녀석의 미래에 대해서 그렇게나 심각하게 다투는 모습이 낯설었지만 한편으로는 가슴 찡한 무언가가 있더군요.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제 아픈 과거를 쏟아낼 수 있는 분위기가 충분히 조성된 셈이었죠. 저도 모르게 숀에게 남의 일처럼 담담하게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그도 저와 같은 경험을 했다는 사실도 직감으로 느낄 수 있었고 우리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소재를 가지고 농담도 주고받았어요. 묵직하고 어색한 긴장 속에서 말입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숀이 제게 말하기 시작했어요. 한번, 두 번, 세 번.. 그가 제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진심을 담아 가슴으로 제게 나직하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말했어요. 제 깊은 곳에 달라붙어 있던 그 악몽 같은 기억을 하나도 남김없이 끌어내려는 신비한 주문 같았죠.

" Will, it's not your fault. it's not your fault. it's not your fault.."

갑자기 억눌렸던 아픔과 서러움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습니다. 그건 분노이기도 했고 이제야 터뜨리는 비명소리와도 같았습니다. 그런 저를 숀이 안아 주었어요. 아버지처럼요. 그의 가슴은 넓고 따뜻했어요. 그렇게 처음으로 그 끔찍한 괴물을 제 안에서 토해내고 나니 한동안 가슴이 얼얼했어요.

그리고 돌아가는 한적한 지하철 안에서 그 괴물이 방해했던 제 과거와 현재를 찬찬히 돌아볼 수가 있었죠. 그리고 숀, 스카일라, 처키가 제게 던졌던 화두와 바람을 그제야 제대로 생각할 수 있었죠. 그리고 선택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죠.

▼ 원잭 : 당신의 이야기에 빠져 있다 보니 듣는 저 역시 가슴이 먹먹해 지는군요.

전망 좋은 일자리를 내팽개치고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 떠나기로 결심한 당신이었지만 처키와 친구들에게 작별인사나 어떤 메시지도 없이 길을 나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요?



▲ 윌리 : 그랬어요. 그런데 녀석들을 보면 다시 마음이 약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고, 처키가 제게 했던 말도 생각났습니다. 그걸 지키고 싶었고, 제 길을 찾고 나서 친구들을 다시 만나러와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발걸음은 무거웠죠. 게다가 녀석들이 마련해준 멋진 생일선물을 타고 말도 없이 떠나려니 정말 쉽지 않았어요.

▼ 원잭 : 이제 당신이 캘리포니아로 떠난 후의 삶에 대해 이야기할 때가 온 거 같군요. 당연히 스카일라와는 재회를 했겠죠?

▲ 윌리 : 그녀가 받아주지 않을까봐 두렵기도 했는데 스카일라는 그 어떤 설명도 필요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저를 안고 키스를 퍼부었죠. 스카일라는 그런 여자라니까요..^^ 한동안은 아무 생각 없이 그녀와 함께 신나게 놀았습니다. 공부광인 그녀 때문에 그렇게 오래가지는 못했지만..

그때쯤 램보 교수님에게 안부전화를 드렸는데 뜻밖의 제안을 하셨죠. 저랑 비슷한 사람을 한번 만나 보면 정말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찾는데 도움이 될거라고 말씀하셨죠. 그게 누군지 아세요? 바로 프린스턴의 존 내쉬 교수였습니다.

▼ 원잭 : 프린스턴 대학 출신의 천재 수학자(1949년 27쪽 짜리 논문 하나로 150년 동안 지속되어 온 경제학 이론을 뒤집고, 신경제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세웠으며, 당시 20살이던 존 내쉬는 기존 게임이론에 대한 새로운 분석으로 제2의 아인슈타인이라 불리게 됩니다. 이후 1994년 비협조적 게임이론에서 선구적인 균형분석으로 노벨상을 수상) 그 내쉬 말입니까?


▲ 윌리 : 네. 저도 단번에 흥미가 생겼습니다. 그의 노벨상 수상경력보다는 그가 겪었던 인간적인 시련에 동질감을 느꼈다고나 할까요? 그리고 그분과 함께라면 수학도 재미있어질 것 같더군요. 숀도 좋은 생각이라고 동의했구요.

▼ 원잭 : 두 수학천재가 만나서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굉장히 궁금해지는데요.

▲ 윌리 : 기대를 깨서 죄송하지만 우리 두 사람은 수학얘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어요. 온통 사랑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밤새도록 나누었죠. 그에게도 너무나 소중한 그녀가 있었고 저도 마찬가지였으니까요.


제가 떠날 무렵에 존이 이런 말을 해주었어요.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싶다면, 머리로만 생각하지 말고 가슴한테 물어보라구. 그러고 나서 몇 가지 후보가 가려지면 실험적인 작은 시도를 통해서 그걸 즐겁게 검증하도록 해. 친구"

▼ 원잭 : 좋은 친구를 얻었군요. 그래서 하고 싶은 일을 찾았나요?

▲ 윌리 : 아마 놀라실지도 모르겠네요. 존과의 만남을 뒤로 하고 다시 캘리포니아로 돌아와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저나 존과 같은 사람을 돕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많은 이들이 저와 같은 고통의 질곡에서 도움의 손길을 애타게 찾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점점 확신하게 되었어요. 제가 그들을 도와야겠다고 결심했죠.

숀의 도움을 받아 심리치료 공부를 시작했어요. 그리고 청소년 상담 자원봉사를 병행하기 시작했죠. 상담경험은 적어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같은 또래로서의 강점을 적극 활용했죠. 그리고 이 일을 안정적으로 계속하기 위해 제 수학적 재능을 활용해서 경제적 토대를 마련하기로 했죠.

램보교수님의 도움으로 그런 자리를 구할 수 있었고, 파트타임 형태로 암호해독을 해주면서 심리치료 공부와 상담경험을 계속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저도 이제 덜떨어진 수학천재에서 어엿한 심리치료 전문가로 변신했으니 이만하면 성공한 게 아닐까요..^^


3년 전부터 숀과 함께 '숀&윌 멘탈아카데미'를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답니다. 이제 심리치료를 넘어서 그들이 미래로 전진할 수 있도록 돕는 데까지 영역을 확장시키고 있는 거죠. 처키와 친구들도 저희가 운영하는 멘탈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만의 재능과 강점을 발견하고 이루고 싶은 10대 풍광을 그려나가고 있답니다. 친구덕에 호강한다고 너스레를 떨면서 말이죠..^^

▼ 원잭 : 저희 연구소와 전략적 제휴를 맺고 싶군요. 인터뷰 끝나고 나서 좀 더 이야기를 나누기로 하구요. 긴 시간동안 성실하게 임해주셔서 감사드리고 당신의 행복한 현재를 확인하게 되서 기쁘다는 말씀도 꼭 드리고 싶군요. 끝으로 독자들에게 한 말씀 해주시죠.

▲ 윌리 : 누군가에게 쉽게 털어놓을 수 없는 아픈 상처나 기억 때문에 힘들어 하는 모든 분들에게 이 말을 드리고 싶군요. 지금 당장은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만한 사람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걸 꺼내놓는 것 자체가 두려울 것입니다. 제가 그랬으니까요.

이번 인터뷰 내내 말씀드리려 한 것이지만 이런 괴물 같은 상처나 기억은 우리의 영혼을 갉아 먹습니다. 우리 자신을 두려워하는 겁쟁이로 만들며, 다른 사람에게도 상처를 입게 하고 그들을 떠나가게 합니다. 우리의 미래를 한없이 먼 곳으로만 보내 버립니다. 그대로 놔두어서는 안 됩니다.

아무런 사심 없이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분명히 있습니다. 당신이 용기를 내서 찾으려고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지인들의 도움을 기꺼이 받으세요. 그들이 도와줄 것입니다. 당신 혼자서 짊어졌던 무거운 짐을 이제는 내려놓으세요. 그리고 한바탕 시원하게 토해낸 눈물에 그 찌꺼기를 흘려보내십시오.

NLP연구소의 간디님이나 정신경영 아카데미의 문요한님 등이 여러분을 도와주실 수 있습니다. 아직 용기가 부족하시다면 저나 원잭님에게 메일을 보내주셔도 좋습니다. 힘닿는 데까지 친구가 되어 앞서 말씀드린 분들과 다리를 놓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의 방문 노크소리를 기대하며 이만 인사드립니다.

< 에필로그 >

그는 자신의 발목에 채워졌던 끔찍한 기억의 쇠사슬을 끊어냈다. 그가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진심어린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었지만 그를 더 기억하게 하는 것은 자신을 구원한 것에 머물지 않고 또 다른 고통 받는 이들을 돕기로 결심하고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윌 헌팅의 삶을 바라보며 내 자신에게 던졌던 질문들을 여러분께 소개하며 인터뷰를 마칠까 합니다. 모두들 건강하시길..

당신은 충만한 사랑으로 당신의 가슴속에 있는 아픔과 고뇌를 진지하게 경청하고 나눌 수 있는 그런 선생님을 가지고 있는가?

또한 당신은 당신을 항상 자신 곁에 두고 싶지만 당신의 재능을 꽃피우기 위해 말없이 떠나라고 가슴 저린 충고를 해줄 수 있는 그런 친구를 가지고 있는가?

당신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연인에 대한 원망스러움보다 당신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함으로써 고통스러워하는 연인의 모습에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그런 연인을 가지고 있는가?


재능세공사의 아지트 - 열정재능연구소

 
< 당신이 만나고 싶은 영화속 주인공은? >
 
누구나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슴에 품고 살며 교감을 나누기도 하고 어려울 때 위안을 받기도 하는 친구같고 서랍 깊숙히 숨겨둔 추억같은 영화 한편쯤은 있을 것 같습니다. 아주 특별한 인터뷰라는 글은 그런 분들(원잭도 당근 포함)에게 보내는 추억이 담긴 선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쓰여진 것이지요.

그동안 다섯번의 인터뷰가 있었고 그 주인공들은 원잭의 가장 가까운 친구들이었죠. 이제부터는 좀 더 많은 분들이 그리워 하고 만나고 싶은 영화속 주인공들을 초청해서 여러분의 궁금증을 중심으로 참여하는 인터뷰를 진행해 보고 싶습니다.

이 글을 접하게 될 올블로그를 비롯한 많은 분들에게 '당신이 만나고 싶은 영화속 주인공'과 '그들에게 묻고 싶었던 질문'을 댓글로 알려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 드립니다. (귀차니즘을 극복하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그 대표주자인 원잭이 더 잘 알고는 있지만..^^;;)

현재까지 제가 다른 분들의 의견을 통해 추가적으로 인터뷰를 계획하고 있는 인물들은 다음과 같으니 추천시 참고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인터뷰 순서는 변동 가능합니다)

'미녀는 괴로워'의 강한나/제니

(예명을 사용해야 할지 본명을 사용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트루먼쇼'의 트루먼 버뱅크

(현재 거처를 몰라 섭외에 어려움이 좀 예상됩니다..)

 

'빌리 엘리어트'의 춤추는 빌리

(이 친구의 춤이 아직도 가슴을 뛰게 하는군요)

 

'인생은 아름다워'의 귀도

(유일하게 고인이어서 소환술이 필요한 분이죠..^^)

 

'매트릭스'의 네오

(가장 긴 인터뷰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