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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특별한 인터뷰 - '죽은 시인의 사회' 존 키팅편

재능세공사 2008. 8. 22. 11:35

< 프롤로그 >

존 키팅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의 제자 닐의 슬픈 죽음 이후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교단을 떠나야 했던 아픔 때문이었을까. 한동안 그의 행적을 추적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고 오랜 수소문 끝에야 그의 이메일 주소를 확보할 수 있었으니..

수십 번의 인터뷰 요청 메일을 보냈지만 그의 수락메일은 쉽게 오지 않았다. 결국 그를 움직이게 한 것은 현실 속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이상적인 교사로 그를 흠모해왔던 대다수의 평범한 학생들이었다.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리고 있는 아이들을 그는 끝내 외면하지 못했고 아직 치유되지 않은 마음의 상처를 안은 채 인터뷰에 응해 주었다. (존 키팅과도 '생각으로 나누는 대화' 방식이 적용되었음을 밝힌다)

[ 존 키팅에 대하여 ]

미국의 전통 명문 예비학교인 웰튼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성적 우수자에게 주어지는 로즈 장학금을 받아가며 옥스퍼드 대학을 다닌 수재로서 영국 런던에 있는 명문 체스터 고교에서 교편을 잡은 후 모교 교사로 돌아온다.

'전통' '명예' '규율' '최고'를 모토로 명문대학으로 가는 최고의 예비학교를 지향하는 웰튼 아카데미에 영어교사로 돌아온 그는 파격적인 수업방식으로 획일적인 교육 속에서 자기다움을 잃어가고 있던 학생들에게 '카르페디엠'을 외치며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 넣는다.

그러나 그와 제자들의 행복한 시간은 오래가지 못한다. 연극 활동에 대한 아버지의 완강한 반대와 일방통보식의 진로결정에 충격을 받은 닐의 자살은 그를 순진한 학생을 선동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 무책임한 교사로 내몰고 그는 사랑하는 제자들의 변하지 않은 신뢰를 확인하며 쓸쓸히 교단을 떠난다.


< 인터뷰 전문 - 존 키팅(전편) >

▼ 이기찬(이하 원잭) : 열정재능연구소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오 캡틴 마이 캡틴!!

▲ 존 키팅(이하 키팅) : 고맙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그렇게 불려 보는군요. (그의 눈에 남다른 감회가 스쳐 지나갔다)

▼ 원잭 : 다시 한 번 어려운 발걸음 해주신 점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당신을 보고 싶어 하고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분들이 많았기 때문에 쉽게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 키팅 : 개인적인 고민들이 많았습니다. 이런 공개적인 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아직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막상 이곳에 도착하니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캡틴이라고 다시 불러주는 사람도 있고 말입니다..^^

▼ 원잭 : 영국 런던의 명문 체스터 고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모교로 돌아간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가족들도 영국에 남겨둔 채 말입니다.

▲ 키팅 : 옥스퍼드에 입학하면서 영국생활을 시작했는데 체스터에서 교편을 잡을 무렵에는 그곳 생활에 많이 익숙해져 있었죠. 사실 그곳에서의 저는 다른 교사와 별 차이가 없는 사람이었죠. 영국은 미국 이상으로 전통과 규율을 중시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신참교사의 입장에서 그런 분위기에서 자기만의 수업방식을 실천에 옮긴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 원잭 : 당신을 알고 있는 사람들로서는 뜻밖의 얘기일 수도 있는데.. 그러니까 당신은 다른 교사와는 처음부터 무언가 달랐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분들이 적지 않거든요.

▲ 키팅 : 기억하셔야 할 점은 저 역시 철저하게 전통적인 교육방식을 고수하는 웰튼 아카데미와 옥스퍼드를 졸업한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알게 모르게 제 행동양식에도 제가 거쳐 온 교육환경의 DNA가 스며들어 있었던 거죠. 무언가 다른 교사가 되고 싶다는 가슴속의 외침과는 달리 기존의 교육관행의 굴레에서 저 역시 헤어 나오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겉으로 보기에는 평온하지만 내적으로는 불만이 쌓여가고 있을 즈음에, 모교에서 급하게 영어 교사를 구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무언가 울컥하는 느낌이 있었죠. 내가 학창생활을 보냈던 바로 그곳에서 나를 부르고 있다는 영감을 받았죠.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후배들에게 친구 같은 선생님이 되어 진실을 알려주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을 느꼈죠.

▼ 원잭 : 웰튼 아카데미에서 당신처럼 상대적으로 젊은 교사를 적극적으로 영입하려 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게다가 당신의 학창시절을 짐작해 볼 때 놀란 교장이 그리 높은 점수를 주지도 않았을 텐데..

▲ 키팅 : 맞습니다. 약간의 치장과 노력이 필요했죠. 옥스퍼드 졸업장과 체스터에서의 경력이 그분들의 1차 기준을 만족시켜 주었고 모교의 졸업생으로서 교육모토를 성실히 따르겠다는 개인적인 다짐을 면접과정에서 강조하는 게 필요 했습니다. 만약 학기시작이 급박하지 않았거나 그분들이 원하는 경력의 영어교사 후보가 단 한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절 받아들이지 않았을지도 모르죠.

▼ 원잭 : 얘기를 듣고 보니 그 즈음에는 당신에게도 이상을 달성하기 위한 현실적인 지혜가 생겼던 셈이군요. 웰튼에서의 첫 번째 수업시간이 매우 인상적이었는데 그때 얘기를 좀 해볼까요.. 후배들을 처음 봤을 때 어떤 느낌이 들었습니까?

▲ 키팅 : 말할 것도 없이 전통적인 너무나 획일적인 교복이 제 눈에 먼저 들어오더군요..^^ 그러나 후배들 하나하나의 모습은 저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이 넘치는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는 젊은이들에게 내 첫 인상은 어떨까? 과연 이들을 의미 있게 설레게 하는 선생님이 될 수 있을까? 그런 생각들로 가득 차 있었던 거 같아요.


휘파람을 분 것도, 두 번 등장한 것도 그런 고민 끝에 나온 연출된 행동이었죠. 그리고 앞으로 그들에게 일관되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강렬하게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인생이라는 격랑을 자기다움으로 헤쳐 나갈 수 있도록 돕는 친구 같고 존경스러운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다짐이 그 첫 번째였죠.

▼ 원잭 : 당신의 그 다짐을 압축한 듯한 '오 캡틴 마이 캡틴'은 윌트 휘트먼의 링컨 대통령 추도시의 제목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왠지 이후 당신의 안타까운 떠남을 예견한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데요..

▲ 키팅 : 링컨 대통령의 죽음을 진심어린 존경을 담아 추모한 윌트 휘트먼의 시는 제 삶속에서 저 역시 누군가에게 특히 내가 가르치는 제자들에게 그런 존경을 받을 수 있었으면 한다는 강렬한 바람을 갖게 했습니다. 윌트 휘트먼의 캡틴이었던 링컨처럼 말입니다.

▼ 원잭 : '오 캡틴 마이 캡틴'보다 더욱 유명한 당신의 메시지는 '카르페디엠(Carpe Diem), 현재를 즐겨라, 인생을 독특하게 살아라'인거 같습니다. ‘시간을 버는 소녀에게(To the Virgins to Make Much of Time)'라는 시를 인용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 키팅 : 맞습니다. 말이 나온 김에 짧지만 강렬한 그 시를 잠시 음미해 보죠.

『시간이 있을 때 장미 봉우리를 거두라.

  시간은 흘러

  오늘 핀 꽃은

  내일이면 질 것이니』


이 시의 의미를 전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과거에 얽매이지도 말고 아직 결정되지도 않은 미래를 위해 현재의 열정과 가능성을 희생하지 말자는 메시지로 말입니다. 그것이 후회 없는 삶을 살아가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명쾌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지인은 이 시에 대해 다음과 같이 표현하기도 하더군요.

모든 변화는 현재적입니다. 어제의 변화는 더 이상 변화가 아닙니다. 변화는 늘 오늘 꽃피어야 합니다. 오늘의 무대에서 춤출 수 없는 변화는 무대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하루를 바꾸지 못하는 변화는 변화가 아닙니다. 하루를 놓치는 변화는 성공도 놓치는 것입니다. 하루를 보면 변화의 결과를 알 수 있습니다.

근본적인 변화는 추상적일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근본적일수록 구체적입니다. 그만큼 독특합니다. 하루를 바꿔야 삶이 바뀝니다. 하루가 달라져야 다른 삶이 됩니다. (이 대목은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1기 연구원 홍승완님의 표현을 인용했음을 밝힙니다)

▼ 원잭 : '인생을 독특하게 살아라'에는 제가 대표적인 테마로 연구하고 있는 '자기다움'의 의미와 중요성이 녹아들어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 키팅 : 말씀하신대로 '자기다움'이라는 키워드로 대체해도 무리가 없겠죠. 좀 더 부연해서 그 메시지를 설명하자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 누구도 아닌 자기 걸음을 걸어라. 나는 독특하다는 것을 믿어라. 누구나 몰려가는 줄에 설 필요는 없다. 자신만의 걸음으로 자기 길을 가거라'


▼ 원잭 : 말씀을 듣고 보니 학생들에게 어리둥절함과 통쾌함을 선사했던 당신만의 독특한 수업방식이 더 잘 이해되는군요. 프리차드의 서문 찢기, 교단에 올라가서 다른 각도로 바라보기, 시를 낭독하고 음악을 들으며 공차기, 자기만의 방식으로 걷기, 자작시 지어보기 등에 당신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일관되게 담겨져 있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 키팅 : 이런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하면 좋을지 나름대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결론은 이론적인 설명만으로는 어렵겠다는 생각이었고 가능하면 어떤 형태로든지 체험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판단이 들었죠. 더불어 그들이 쉽게 이해하고 실행에 옮길 수 있도록 단순하게 구성하되 자기다움을 저해할 수 있는 '지켜야 하는 규칙' 같은 건 아예 배제했습니다.

▼ 원잭 :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지나치게 진지모드로 일관한 거 같습니다. 잠시 가벼운 화제로 전환해서 머리를 식혀볼까요? 당신의 칠판글씨밖에 보지는 못했습니다만 대단한 악필이라는 점은 인정하시겠죠? ^^

▲ 키팅 : 천재는 대부분 악필이더군요..^^ 제가 알기로는 원잭이야말로 최악의 악필임에도 불구하고 컴퓨터의 도움을 받아 오랫동안 그 사실을 은폐해 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ㅋㅋ

▼ 원잭 : 에궁 본전도 못 건졌군요..ㅜㅜ 저 역시 시인합니다. 어느 정도냐 하면 제 글씨로 메모한 내용을 참고하고는 싶은데 저조차 알아보기가 힘들 정도군요..^^

그리고 셰익스피어를 지루한 희곡가로 잘못 알고 있는 제자들에게 그의 유머와 위트가 번뜩이는 대사의 맛을 흥미롭게 알려주기 위해 말론 브란도와 존 웨인의 성대모사를 로빈 윌리암스 뺨치게 시연하는 모습이 기억나는데 여기서 잠시 보여주실 수 있나요?


▲ 키팅 : 동영상으로 인터뷰를 기록하지 않는 한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에게 그걸 보여주기는 어려울 것 같군요. 게다가 우리는 '생각으로 나누는 대화'방식을 쓰고 있음을 잊으신 건 아닌지..


▼ 원잭 : 이래서 제가 함량미달이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요즘 뜨고 있는 '죄민수'가 이 글을 읽었다면 분명 이렇게 말했겠죠. "인터뷰어계의 쓰레기!! 피스~~" ^^; 캡틴의 성대모사를 보고 싶으신 분들은 그의 삶을 담은 영상기록을 시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 인터뷰 전문 - 존 키팅(후편) >

▼ 원잭 : 이제 그 유명한 '죽은 시인의 사회'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어 볼까요? 당신의 제자들이 이와 유사한 서클을 만들 것을 예상하셨는지, 그리고 실제로 그들이 '죽은 시인의 사회'를 재결성한 사실을 알고 계셨는지 궁금하군요.


▲ 키팅 : 아이들이 제게 졸업연감을 내밀며 그 모임에 대해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묻던 바로 그 순간, 그들도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빠져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옛 추억에 잠시 빠져들기도 했지만 방어적인 대답이 먼저 튀어 나오더군요.

" 현재 학교 당국은 절대로 용납하지 않을 걸세."

모르겠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들이 잠시만이라도 자유와 낭만을 만끽하길 저 역시 원했는지도.. 또 한편으로는 그들의 삶에 혹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죠.

그들이 제게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진 않았지만 분위기만으로도 그들이 이미 '죽은 시인의 사회'에 서서히 빠져들고 있음을 알 수 있었죠. 내심 좀 더 적극적으로 지지해줄까 하는 생각도 했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괜한 불장난으로 그들을 위험에 빠뜨린 것은 아닌지 고민도 많았습니다.

결론은 조용히 지켜보기로 했죠.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마음속으로 그들을 격려하고 응원하기로 한 셈이죠. 수업시간에는 간접적으로 그들 마음속에 숨겨진 열정들을 더욱 불사를 수 있도록 자극하기도 하면서요..


▼ 원잭 : 당신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왠지 무거운 분위기가 느껴지는데요..

▲ 키팅 :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혹시나 제가 그들에게 무책임한 행동을 한 것은 아닌지 아직도 판단이 서질 않습니다. 그들의 억눌린 열정을 적절하게 컨트롤 하지도 못하면서 무작정 점화버튼만 눌러 버렸다는 후회도 있구요.

▼ 원잭 : 캡틴답지 않게 현실적인 고민이 많이 늘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어쨌든 당신의 우려가 교지에 허가되지 않는 기사가 실린 사건으로 현실화되기도 했으니 더욱 걱정을 하셨을 것 같은데..

▲ 키팅 : 억눌렸던 자유와 낭만을 만끽하다 보면 대부분 무모한 용기가 생겨납니다. 그리고 점차 자신들만의 세계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현실에서도 그렇게 살고 싶어지죠. 그 사건은 새로운 세계에서 얻은 에너지에 취해 그들을 억눌러 왔던 권위에 대한 어설픈 도전이었던 셈이죠.

물론 꽤 멋진 유머를 곁들인 찰리의 커밍아웃(놀란 교장 선생님, 전화 왔습니다. 하느님의 전화예요. 웰튼에 여학생을 입학시키랍니다!)이었지만 학교 당국으로서는 이런 식의 도전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죠. 엄청난 공포분위기를 조성해서 싹을 아예 없애는 거죠.

▼ 원잭 : 그 당시 당신이 그들에게 했던 조언이 인상적이었는데요. "오늘의 행동은 어리석은 것이다. 삶의 정수를 빨아들이라는 것은 장난치라는 말이 아냐. 대담할 시간과 조심할 시간은 따로 있다. 현명한 사람은 이해하지."

▲ 키팅 : 그때 처음으로 아이들에게 직접적인 메시지를 전달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전 그들이 잠깐 동안의 무모한 도전으로 그들이 당연히 누려야 할 기회를 잃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누군가에게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나를 충실하게 만끽하는 것이니까요.

원잭 : 그때 놀란 교장이 당신에게 1차 경고를 했었죠. 아마..

▲ 키팅 : 이미 다른 선생님들 사이에서 제 교육방식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었고 아주 정확하게 저에게 경고할 타이밍을 찾았던 셈이죠. 그때 확연히 알 수 있었습니다. 웰튼의 교사들이 아이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굳건하게 포장된 웰튼식 교육방식에 대한 잘못된 맹신을 말입니다.

▼ 원잭 : 어쩌면 그런 기존의 환경들 때문에 아이들에게 당신은 더욱 외계인 같은 존재로 느껴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누구도 지지해 주지 않았던 일탈을 시도할 수 있는 용기를 당신으로부터 얻었던 것은 아닐까요?

▲ 키팅 : 닐이 그토록 하고 싶어 했던 연극 오디션에 참가하고, 녹스와 찰리의 생기 넘치는 모습을 바라보며 기분이 좋았습니다. 적어도 세상이 정해놓은 방식에서 벗어나 생각하고 행동하기 시작했다는 점이 무엇보다 중요한 변화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대목에서 제가 놓친 것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세상과 지혜롭게 소통하는 방법을 충분히 알려주지 못했어요. 아직 충분히 오픈되고 정리되지 않은 아이들의 생각과는 달리 부모와 선생님들의 가치관은 굳어져 있다는 사실을 좀 더 알려주어야 했습니다.

닐의 자살은 제가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였다면 막을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가 얼마나 큰 압박감을 느끼며 그 일을 실행에 옮기고 있었는지를 충분히 살피지 못했어요. 그저 제 입장에서 모범답안 같은 조언만을 들려주고는 제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했죠. (이 대목에서 그의 회한이 절절히 느껴졌다)


그에게 더욱 필요한 말을 해주지 못했어요. 지금 당장의 부모님의 완강한 반대가 그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는 것을.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이라면 잠깐의 좌절 때문에 영원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진정한 소통을 위해서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했어요.

▼ 원잭 : 닐의 연극에 대한 확신과 열정이 부모님을 설득할 수 있다고 판단하신 부분도 있겠지요. 정말 안타깝고 불행한 기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일로 인해 당신도 웰튼을 떠나야 했구요.

▲ 키팅 : 제가 그곳을 떠나게 된 것도 가슴 아픈 일이었지만, 닐의 죽음과 저로 인해 남은 아이들이 받았을 정신적 고통이 저를 더 힘들게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어떻게든 남아서 그들에게 못 다한 이야기를 해주고도 싶었습니다.

그러나 저 역시 닐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자책감을 지울 수가 없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 그런 일이 되풀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컸습니다. 우선은 그 어두운 기억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비겁한 결정이었죠.

▼ 원잭 : 누구라도 그랬을 겁니다. 그런 당신에게 제자들이 보여준 마지막 인사는 또 다른 의미를 주었을 것 같은데요. 당신이 그들에게 무엇을 남겼는지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 아니었을까요?

▲ 키팅 : 지금도 그들이 제게 마지막으로 선사한 감동을 잊지 못합니다. 그건 제가 그들을 가르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통해 배우기도 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습니다. 우리가 그동안 나누었던 교감들이 그 한 순간에 온전히 공명하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죠.


그러나 그들의 용기 있는 행동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캡틴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했던 그들의 행동은 학교 당국에게는 권위에 대한 집단적인 도전으로 여겨져 무더기 징계로 이어졌습니다. 다행히 사태가 더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그들의 미래를 위협할 정도의 중징계는 피할 수 있었지요.

▼ 원잭 : 그건 새로운 사실이로군요. 당신에게 더 큰 부담을 안겨주었을 것 같은데.. 웰튼을 떠난 후의 삶에 대해서 얘기를 좀 해주시겠습니까?

▲ 키팅 : 일단 가족들이 있는 영국으로 돌아갔습니다. 한 동안은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죠. 아내가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계속 교사생활을 할 수 있을지 근본적인 회의감이 들 정도였습니다.

웰튼에서의 일은 대다수 영국의 학교에도 알려져서 현실적으로도 저를 받아줄만한 곳을 찾기는 어려운 상황이었죠.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려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르치는 일을 포기하는 건 제게 불가능한 일이었죠.

그러다가 써머힐의 교장을 맡고 있던 조이 레드헤드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지금도 그녀가 제게 전화로 했던 첫 번째 말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존, 당신이 있어야 할 곳은 써머힐입니다." 그 한마디로 모든 것이 결정되었습니다.

제가 꿈꾸었던 학교가 바로 거기 있었습니다. 저와 같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선생님들로 가득한, 아니 저보다 더 혁신적인 교육방식이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지는 그런 학교가 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학생과 선생이 함께 생각을 나누고 스쿨미팅을 통해 자유롭고 자발적으로 공동체의 규칙을 정하는 곳, 개인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자기다움을 꽃 피울 수 있도록 최대한의 자유가 보장되고 책임을 받아들이는 곳. 써머힐은 제가 추구하고자 했던 교육철학을 이미 실행으로 검증하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 원잭 : 대안학교의 원조로 인식되어 있는 써머힐과 당신의 인연이 닿았었군요. 당신에게도 써머힐에게도 행운이 되지 않았을까 싶네요. 제가 알기로는 써머힐이 갖는 긍정적인 성과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교육방식을 고수하는 세력으로부터 끊임없이 도전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 키팅 : 맞습니다. 사실 정부는 써머힐에 대해 지속적으로 꼬투리를 잡아 왔습니다. 장학관들의 장학검열이라는 방식을 통해서요. 우리는 전혀 다르기 때문에, 일반적인 학교의 기준을 그대로 써머힐에 적용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음에도 그들은 고집불통입니다.


그들은 어떤 학교를 가더라도 나쁜 점만 지적하려는 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완벽한 학교나 교육방식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꼬투리를 잡고 우리를 귀찮게 합니다. 때로는 써머힐의 핵심적인 교육철학을 바꾸라고 종용하기도 하지요.

제 생각에 그들은 조금 두려워하고 있는 듯합니다. 자신들과 전혀 다른 시스템이 잘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두려워 하는 거죠. 우리는 검증된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교육이 실제로 효과가 있기 때문이죠. (이 대목은 하태욱님의 헨리 레드헤드 인터뷰 내용을 인용했음을 밝힙니다)

▼ 원잭 : 말 그대로 대안학교가 기존의 교육체계를 대체할 수 있는 대안이 되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래도 당신에게는 모든 에너지를 학생들에게 당신만의 방식으로 쏟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것 같은데요.

▲ 키팅 :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웰튼에서의 불행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한다는 생각으로 부담이 컸었는데, 이제는 조금은 더 편안하게 가르치고 배우는 것을 즐기려 합니다. 그래서 행복합니다. 이제야 카르페디엠을 제 스스로 실천에 옮기고 있다는 생각에 약간은 부끄럽기도 합니다.

▼ 원잭 : 웰튼의 제자들과는 그 이후 교류가 없었는지요? 소식이라도..

▲ 키팅 : 몇 개월 전에 토드, 녹스, 찰리가 영국으로 절 찾아 왔었답니다. 그들의 갑작스런 방문에 정말 많이 놀랬죠. 찰리의 제안으로 깜짝 방문을 계획했다고 하더군요. 찰리는 여전히 엉뚱한 구석이 많은 유쾌한 친구였습니다.


토드가 시인이 되었을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믿겨 지십니까? 찰리는 아버지의 바람대로 은행가가 되었지만 주말마다 유명한 재즈빠에서 색소폰을 연주한다고 하더군요. 녹스는 크리스와의 첫사랑에는 실패했지만 법대에서 만난 멋진 여성과 결혼에 골인해서 부부 인권변호사로 활약하고 있답니다.

우린 오랫동안 서로의 지난 이야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추억을 더듬다가 닐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주인공으로 열연했던 연극이야기를 할 때는 그리움의 눈물을 함께 흘렸죠.

미국으로 다시 돌아가던 날 공항에서 세 친구가 저에게 다시 한 번 캡틴 세레모니를 보여주었을 때 저는 또 한 번 울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제 손에는 그들이 남긴 작은 메모 한 장이 있었지요. 거기에는 이런 이야기가 적혀 있었습니다.

오 캡틴 나의 캡틴!!
당신은 언제나 우리 곁에서 카르페디엠을 외치고 있었답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이 우리가 진정 원하는 모습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장미 봉우리 거두는 일을 한 순간도 잊지 않았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구요. 사랑하고 감사합니다. 영원히..


▼ 원잭 : 감동적인 해후로군요. 대한민국의 아이들에게도 당신과 같은 선생님들과 이런 교감을 이룰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기원하면서 오늘 장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신 점 감사드리고 끝으로 독자들에게 한 말씀 해주시죠.

▲ 키팅 : 학부모 여러분들에게 꼭 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자식을 사랑하신다면 그들에게 정해진 틀의 교육을 일방적으로 강요하지 말아 주십시오. 그들을 입시지옥으로 스스로 내모는 일을 중지해 주십시오.

여러분이 어떤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행하는 교육과 관련된 획일적인 접근방식이 당신들의 아이들에게 어떤 고통을 안겨주고 있는지 깊이 생각해 보신다면 그 두려움조차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 최고의 명문학교 대신 그들의 재능과 기질을 가장 잘 살려줄 수 있는 학교와 선생님을 찾아 주십시오. 그들을 자유롭고 균형 있게 사고할 수 있는 독립된 인격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아이들과 끊임없이 대화 하십시오. 그들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궁금해 하는지, 어떤 도움을 필요로 하는지 귀 기울여 주시기를 진심으로 부탁드리며 작별을 드릴까 합니다.

< 에필로그 >

자신의 수업 방식을 비꼬는 한 선생과 존 키팅이 나누었던 대화를 다시 한 번 음미하며 인터뷰를 마치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 맥칼리스터 : 학생들을 예술가가 되도록 부추기는 건 위험한 일이요. 그들 자신이 렘브란트나 셰익스피어나 모짜르트 같은 위대한 예술가가 아니란 걸 깨닫는다면 그들은 당신을 미워할 거요.

▲ 키팅 : 예술가가 되라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사색가가 되라는 거죠.

▶ 맥칼리스터 : 17살의 자유로운 사색가라?

▲ 키팅 : 비꼬고 계시는 군요?

▶ 맥칼리스터 : 비꼬는 게 아니라 현실적으로 말하는 겁니다. '몽상으로 자유로운 영혼을 보여준다면 나는 만족할 거요.'

▲ 키팅 : '하지만 진정한 자유란 그들의 꿈속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항상 그러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 맥칼리스터 : 테니슨 시인가요?

▲ 키팅 : 아니요. 키팅 자작시입니다..^^

다음 인터뷰 주인공은 '굿윌헌팅'의 윌 헌팅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질문하고 싶은 내용이 있다면 댓글 남겨주시면 최대한 반영토록 하겠습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를 기대하며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