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토피아

다크나이트 - 한치의 뻔함도 허용하지 않는 영화

재능세공사 2008. 8. 8. 14:30

엔딩크레딧을 지켜보며 올만에 심장이 뛰다

 

최근 한국영화 기대주 세편(놈놈놈,눈눈이이,님은먼곳에)을 연달아 보면서 연타석 실망을 했던터라 거의 대부분 호평을 넘어 광적인 지지수준을 보인 당 영화 다크나이트에 대해서도 일말의 불안감을 갖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미국에서의 열광적인 지지가 무색하리만치 한국시장에서 외면받아오던 배트맨 시리즈였으니 제 아무리 날고긴다 한들 그 핸디캡을 가배얍게 물리치기는 어려울 것으로 지레짐작을 했더랬다.

 

 

 

그러나 결과는 이런 노파심과 일말의 불안감을 시원스럽게 날려버릴만큼 영화 다크나이트의 카리스마는 나같은 배트맨 시리즈 문외한도 완전히 압도할만큼 위력적인 것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마지막 대사가 끝나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갈때 기립해서 박수를 치고 싶은 충동을 느낄만큼 묵직한 만족감과 여운을 선사했으니 말이다. 개봉전부터 메타블로그 사이트를 점령하다시피 했던 다크나이트에 대한 열광적인 지지의 근원을 이제서야 실감했다고나 할까.

 

 

한치의 뻔함도 허용하지 않는 전개의 연속

 

스포일러에 노출되지 않았다는 전제하에 대다수 관객들은 영화 다크나이트의 오프닝에서 클로징까지 뻔한 전개를 거의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또한 기존의 그 어떤 악당 캐릭터도 당 영화에서의 조커처럼 히든카드를 연속으로 날리거나 대척점에 선 우리편을 그토록 오랫동안 궁지에 몰아넣지 못할 것이다. 말 그대로 놀란 감독은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들을 손아귀에 쥐고 꼼짝달싹 못하게 만든다.

 

 

 

악당 조커의 캐릭터가 어떤 것인지 알려주는 방식은 대단히 창의적이고 집요하며 흥미롭다. 영화를 지켜보다 보면 이 조커라는 캐릭터의 존재감이 너무 생생하게 다가와서 비록 영화속 인물이지만 살짝 두려워지기도 하고 호불호를 떠나 이 캐릭터의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특히나 조커가 시종일관 선보이는 사람들의 심리를 건들이는 교활한 혓바닥은 묘한 분장에서 뿜어내는 특별한 광기와 어우러지며 관객들을 지속적으로 흔들어댄다.

 

배트맨, 고든, 하비덴트로 구성된 나름 최강의 삼각편대조차 조커가 휘둘러대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는 대중들에 대한 테러와 교묘한 심리전술앞에 공격은커녕 지키기에 급급할 뿐이다. 게다가 다른 악당들과 달리 조커는 돈도 명예도 적을 섬멸하겠다는 당연해 보이는 목표는 개무시한채 그저 흥미로운 게임을 계속 즐길 수 있는 그럴싸한 파트너를 원할 뿐이니 난감할 수 밖에. 이런 식으로 영화는 줄창 조커가 정해놓은 변칙적인 플레이 룰을 중심으로 끝까지 질주한다. 한아름의 묵직하면서도 멋드러진 액션씬들을 적절하게 섞어가면서 말이다.

 

 

 

 

 

'두려움'앞에 무기력해질 수 밖에 없는 인간들

 

조커가 선택한 착한 놈들 괴롭히기 전략(조커의 입장에서 보면 본색 까발리기)은 모든 인간의 근본적인 약점인 '두려움'을 건드리는 것이다. 자신때문에 무고한 사람들과 사랑하는 사람이 희생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 언제 자기자신에게 닥칠지 모르는 테러의 공포, 자신들이 살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 수 있다는 공포, 선의의 목적과 상관없이 자신이 선택한 수단이 옳지 않을 수 있다는 두려움 등이 그것이다.

 

 

 

조커는 자신의 손아귀에 들어온 먹이감들에게 자신의 스마일 흉터가 어떻게 생겨나게 됐는지를 다양한 방식으로 각색해서 들려줌으로써 공포감을 안겨주며 즐거워 한다. 그가 총보다는 칼을 주로 사용하는 이유도 인간들의 두려움을 훨씬 더 증폭시킬 수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조커는 나약한 인간의 '두려움'을 먹고사는 존재인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부시와 비교될만한 인물은 배트맨이 아니라 조커여야 하지 않을까.

 

 

진정한 영웅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중들은 영웅을 필요로 하고 만들어 내며 필요한만큼 열광하다가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샘레이미는 스파이더맨 2편에서 위험에 처한 슈퍼히어로를 구해주는 측은지심의 시민상을 보여주지만 직접적인 책임이 있던 없던 자신들의 안전을 결과적으로 위험에 빠뜨린 배트맨이 영웅이긴커녕 트러블메이커로 비난받는 장면이 더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브루스웨인은 이 씁쓸하며 자기번뇌로 가득찬 영웅의 자리를 백기사라 불리우는 정의로운 검사 하비덴트에게 넘겨주려 하지만 그 역시 조커의 말대로 한 순간에 광기어린 투페이스로 변할 수 밖에 없는 나약한 대중이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결국 그는 고담시민의 기억속에 조커의 손아귀로부터 구해낸 영웅으로 하비덴트를 각인시킨채 고담시의 Dark Knight로 남을 것을 선택한다.

 

 

 

영화 '다크나이트'에서는 배트맨의 활약을 로마시대의 케이사르와 비교하는 인상적인 대사가 나온다. "영웅일 때 죽을 것인가, 아니면 자신이 악당으로 변해 있는 걸 볼 때까지 오래 살 것인가."

젊었을 때의 케이사르는 로마 공화정의 부패와 경제난을 해소한 구원자였지만 늙어서는 '괴물', '독재자'라는 비난을 받았다. 어느 시대든 영웅이 되는 건 쉽지 않지만, 그 영웅이 평생 동안 명성을 유지하는 건 그보다 몇 배나 어려운 일임을 지적한 얘기다. (송원섭님의 포스팅중에서)

 

짧은 기억들 몇 가지

 

1. 배트맨의 묵직한 중저음이 가져다 주는 매력은 다크나이트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2. 텀블러는 기존 시리즈에서 선보였던 장비들과 한차원 다른 수준의 매력과 깜짝쇼를 보여준다.

 

 

 

 

3. 배트맨이 빌딩사이를 활강할때마다 멋드러지게 펼쳐지는 미려한 날개의 청량한 퍼득거림이 좋다.

 

 

 

 

4. 인기미드 프리즌브레이크의 FBI 요원 머호니는 오프닝 장면에서 짧지만 강렬한 포스를 선보인다.

 

 

 

 

5. 모건 프리먼은 007시리즈에서 빠지지 않고 나오는 장비전문가를 연상하게 만든다.

 

 

 

 

6. 조커의 얼굴에서 히스레저를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장면은 철창속에서 앉아 있을때이다.

 

 

 

 

7. 다크나이트의 액션씬은 영화 '히트'를 연상시킬만큼 격렬하며 싱싱하다. 특히 대형 트레일러가 뒤집히는 장면은 아찔 그 자체다.

 

 

 

8. 이 정도의 컨텐츠면 배트맨 시리즈의 한국내 흥행필패 징크스는 확실히 깨질 것이다.

 

9. 마지막 대사가 끝난 후에 흘러나오는 한스짐머의 OST는 여운을 배가시켜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