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토피아

놈놈놈 - 천만관객은 꿈도 꾸지 마라

재능세공사 2008. 7. 19. 02:45

김지운 영화를 보면서 하품이 나올줄이야..ㅜㅜ

 

너무 기대가 컸던 탓일까? 정신없이 울려퍼지는 귀를 멍하게 만드는 사운드와 질리도록 이어지는 노골적인 볼꺼리가 연신 터지고 있는데도 흥분되거나 집중되기는커녕 마음이 산만해지고 살짝 졸음을 참아야 하는 지경에까지 몰리고 나니 허무할 수 밖에. 김지운 감독의 영화를 보면서 이런 내 모습을 보게될 줄은 정말 몰랐다.

 

이 영화 이전의 김지운 감독은 한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이 없다. 상대적으로 실망스러웠던 '조용한가족'조차 그 나름대로 볼만한 영화였지 않은가. 이런 재능있는 감독의 아우라에 잘 나가는 배우들에다가 흔치 않은 넉넉한 제작비(물론 상대적인 개념이다) 그리고 엄청나게 우호적인 흥행환경 등을 감안해 보면 '놈놈놈'은 또 하나의 아주 매끈하게 잘 빠진 영화로서 한동안 국내영화계를 뒤흔들 것이라 예상한 사람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서두에서 잠시 언급했던 것처럼 결과는 매우 실망스럽다. 당췌 몰입이 안된다. 꽤 괜찮은 배우들이 열연을 하건만 어떤 '놈'에게도 감정이입이 잘 안된다. 그저 멀뚱하니 지켜보게 될 뿐이다. 좋은 액션씬들은 예고편에서 이미 신물이 날만큼 압축버전으로 맛본 탓인지 감흥이 절대적으로 떨어진다. 본편을 보는 내내 스펙타클한 느낌은커녕 그 넓은 만주벌판중에 한정된 공간 몇 군데만을 정해 이리뛰고 저리뛴다는 느낌만을 받을 뿐이다.

 

예전에 쓴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에 대한 영화평의 한 대목을 '놈놈놈'을 보고나서 다시 읖조리게 될 줄이야.   

 

솔직히 액션영화 좋아하는 관객치고 스토리에 무지하게 욕심내는 사람들은 드물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제작자와 액션영화 감독들이 이러한 액션영화 선호관객들의 하해와 같은 아량을 아전인수하여 액션씬에 몰입할 수 없을 정도의 허접한 스토리 구조를 자신있게 디미는 실수를 반복하는 경향이 매우 높다. (이 기회에 반성들 하시라..)

 

 

불량한 대사 품질이 영화를 망쳐 놓다

 

근래 들어 한국영화 중 이렇게 대사의 품질에 신경 안쓴 영화가 또 있을까. 대사도 많지 않다만 매씬마다 쏟아내는 수준 이하의 성의없는 대사를 듣다 보면 캐릭터들에 오만 정이 다 떨어진다. 게다가 이병헌이 연기한 나쁜놈 캐릭터의 이상한 억양은 감독의 의도된 연출인지 배우 스스로의 설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역시 캐릭터 매력 잡아먹는 또 하나의 악수다. 좋은놈의 정우성 역시 매우 정형화된 톤으로 날리는 무미건조한 대사의 악영향으로 그나마 유일하게 간지나는 액션을 많이 선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허전하다.

 

어려운 환경에서 액션하기도 바쁜데 하기 싫은 대사를 어쨌든 한두마디씩 날려줘야 하는 귀차니즘이 느껴진다고까지 표현하면 조금 과할려나. 이상한놈이 상대적으로 많은 양의 대사를 날리지만 이조차도 송강호 특유의 말투때문에 그나마 웃으며 들어줄만한 것이지 그럴싸함이나 명료한 전달력은 기대하기 어렵다. 이러한 현상은 라스트씬까지 줄기차게 이어지고 관객은 그들의 움직임에만 오감을 곤두세울 수 밖에 없다.  

 

 

존재감 제로의 조연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조연들은 주연들 못지 않게 면면히 화려하다. 그러나 그뿐이다. 유명한 조연들조차 이 영화에서는 철저한 들러리로 전락하고 관객들은 어디서 본듯한 사람들이 많이 나온다는 팩트만을 느끼게 될 뿐이다. 다소 비중이 있는 윤제문(중간보스 전문 캐릭터)이나 류승수는 말할 것도 없고 개성강한 캐릭터 전문 오달수나 손병호보다 차라리 반칙왕 출신의 송영창이 아주 쬐금 도드라질 뿐이다. 게다가 특별출연 타이틀을 단 엄지원은 그저 단역만 해왔던 배우처럼 존재감 제로니 더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하기사 애초에 짜임새 있는 이야기 틀을 준비하지 않은 이 영화에서 조연급 캐릭터들이 부대낄 구석이 없었으니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주인공 캐릭터들조차 온몸을 던진 액션으로만 승부하는 마당에 갑빠나 간지나 물리적 할애시간에서 압도적으로 차이날 수 밖에 없는 이들 캐릭터가 관객들에게 어필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아무리 맛있는 메인디쉬가 잘 차려있어도 또 다른 아기자기한 별미를 찾는 관객들의 속성을 정말 몰랐던 것일까.

 

 

천만관객은 꿈도 꾸지 마라

 

개봉첫날 40만 관객을 동원해서 올 최고기록을 세웠다는데 영화의 실질적인 완성도나 품질보다는 개봉이전의 기대치가 반영된 결과로 봐야 한다. 이렇게 오랫만에 작정하고 이 영화를 씹고 있는 나도 개봉 이틀째만에 설레임을 억누르지 못하고 누구보다 앞장서서 초반관객수를 보탠 사람이니까 말이다. 예상컨대 일주일 정도면 '놈놈놈'은 냉정한 평가를 받게될 가능성이 크다. 시사회를 전후한 분위기가 왜 그렇게 멜랑꼴리했는지 이제야 실감했으니 말이다.

 

더 구체적으로 흥행성적을 예상해 보면 놈놈놈보다 먼저 흥행에 성공했던 강철중보다 못할 가능성도 있다. 분위기상으로야 품질이 어떻든 그 이상의 흥행을 올릴 것은 분명하겠지만 천만관객 재림에는 확실히 실패할 것이다. 김지운 감독에게 '놈놈놈'은 최고의 흥행성적과 한국형 웨스턴을 마음껏 실험해 봤다는 전리품을 안겨줄지는 몰라도 그동안 여러 장르에 인상적인 흔적을 남겼던 이전 작품들을 통해 얻은 관객들의 신뢰에는 다소 의문을 안겨주는 작품으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