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토피아

베토벤 바이러스, 강마에의 성장통은 이제부터가 시작?

재능세공사 2008. 10. 23. 14:13

상처입은 남자의 자존심인가, 자기다움을 찾기 위한 몸부림인가?

 

리틀 강건우가 드디어 칼을 뽑아 들었다. 강마에의 표현을 빌리자면 착한 제자가 삐딱선을 타기 시작한 것이다. 강마에는 자신의 음악적 자존감과 유일한 제자에 대한 특별한 배려를 훼손한듯한 리틀 강건우의 곡 해석 수정행위에 극도로 분노한다. 자신이 인정한 천재적 재능을 가졌지만 강마에의 시선에는 아직 걸음마를 시작한 것에 불과한 제자가 스승의 가르침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다는 사실을 믿기 힘든 것이다.

 

 

자신이 지휘할 곡의 선택과 스승의 경제적 지원을 거부한데서부터 감지된 불온한 기운이었지만, 거기까지는 자신의 음악인생에서도 경험해 보았던 지휘자 특유의 자존심으로 이해하고 넘어갔던 강마에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건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강마에의 눈에 제자의 어줍잖은 반항은 리틀 강건우의 성장을 더디게 하고 제자에게 잠시 맡긴 자신의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음악인생까지 위험에 빠뜨리는 어리석은 행동으로 보일 뿐이다.

 

이성간의 감정에 대해 서툰 강마에는 두루미의 의도하지 않은 고백을 듣고서는 잘못된 확신을 갖게 되고 제자의 모든 행동에 대해 최악의 해석을 내린다. 자신의 판단을 절대적으로 맹신하는 강마에는 더 싹이 번지기전에 제자의 철없는 행동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의지로 평소보다 더 과격하고 신랄한 방법으로 리틀 강건우를 몰아세운다.

 

스승의 불같은 성정과 독재자 기질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리틀 강건우는 두루미로 촉발된 혼란스런 감정의 앙금이 스승과의 관계에서 파열음을 내지 않도록 노력하지만 본질적인 음악적 견해의 차이와 홀로서고 싶다는 욕구의 분출을 쉽게 억누를 수 없다. 그래서 스승의 눈을 피해 에둘러가는 방법으로 자기다운 길을 향한 연착륙을 시도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감행된 스승의 억울한 질타에 결국 폭발하고 만다.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믿어주지 않는 스승에게 인내심의 한계를 느낀 제자는 결국 도발적인 독립선언을 하고야 만다. "제 오케스트라고 제가 지휘자라구요" 과연 강마에는 생전 처음 겪게 되는 제자의 항명사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응할지 궁금할 따름이다. 아마도 속으로 이런 생각에 빠져 있을지도 모르겠다. '좌충우돌하는 두루미 하나 상대하기도 어려운데 이제 제자놈까지 속을 썩이는군. 요즘처럼 혼란스런 감정으로 점철된 시간이 과연 나에게 얼마나 있었을까. 에궁 골치 아파'

 

 

누가 누구를 길들이는가? 강마에와 두루미의 주도권 쟁탈전

 

강마에는 두루미의 두드림에 창문 하나를 살짝 열었지만 아직도 그가 열어야 할 마음의 빗장은 무더기로 남아 있다. 게다가 두루미와의 연애에서 자신의 카리스마가 훼손되거나 그녀에게 길들여지는 것도 싫다. 문제는 두루미가 진짜 고수라는데 있다. 아무리 무심모드와 결벽증에 가까운 오만모드를 티내지 않고 유지하고 싶어도 밀고 땡기기의 귀재 두루미의 필살기에 자기도 모르게 끌려가는 스스로의 모습에 야릇한 신경질이 날 법도 하다.

 

 

거기다 아직 리틀 강건우의 그림자가 두 사람의 관계에 드리워져 있으니 이를 쉽게 떨쳐내고 진도를 나가기도 쉽지 않다. 역시 용감한건 두루미다.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고서야 리틀 강건우 입장에서 자신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주변단원들의 수근거림에 그렇게 무지막지한 방법으로 싸가지 없는 악역을 자처할 수 있겠는가. 그에 반해 강마에는 두루미로 인한 상처를 애써 감추고 고약한 방법으로 자신에게 서걱거리고 반기를 든다고 제자의 행동을 속단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 셈이다.

 

아아젠님이 최근 포스트에서 지적한 것처럼 겉으로는 여전히 강마에가 주도권을 확보한 듯이 보인다. 두루미가 괜히 고수겠는가. 티나지 않게 그가 원하는 주도권을 인정하고 순종하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지만 속내는 삼장법사 손바닥안에서 놀고 있는 손오공을 적절한 수준으로 길들이고 있을 뿐이다. 이런 면에서 그녀는 강마에에게 남녀간의 사랑이라는 감정을 현장실습 위주로 친절하게 가르치는 노련한 연애코치인 셈이다.

 

 

위기상황에서 빛나는 강마에의 리더쉽과 배려

 

강마에를 이제 웬만큼은 이해할만도 한데 아직도 그는 우리를 놀라게 한다. 여전히 무자비할 정도의 독설을 입에 달고 있는데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난도질하는 대목에서는 순간적으로 정나미가 홀라당 떨어지게 만드는 강마에지만 결정적인 위기상황에서는 이보다 더 훌륭한 리더쉽이 없다고 느낄만큼 유연함과 기지 그리고 결단력을 보여준다. 이런 면모야말로 우리와 드라마속 단원들 모두가 강마에를 결코 미워할 수 없게 만드는 매력이다.

 

 

김갑용의 치매증세가 심각한 수준에 와있다는 걸 알았을 때 강마에는 찰나적인 순간에 판단을 내린다. 정상이었을때의 김갑용에게 쏟아부었던 그의 독설과 모진 행동을 기억하는 우리들의 눈에 따뜻하고 배려넘치는 강마에로의 변신은 눈이 부실 정도다. 그가 감정에 솔직해질 수 있도록 토벤이를 활용해 애정어린 조언을 해준 고마움의 기억이 위기에 빠진 김갑용의 불행한 모습을 통해 되살아났던 것은 아닐까.

 

김갑용의 치매상태를 너무나 절절하게 와닿게 만들어 주는 홍자매 작가의 연출솜씨는 정말 훌륭하다. 작가의 의도를 120% 표현해 낸 이순재 옹의 자연스러운 연기력 역시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하이든은 자신의 삶을 다시 일으킬 수 있도록 손을 내밀었던 김갑용을 누구보다도 지켜내고 싶어 한다. 마치 강마에에게 치매를 용납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외쳤던 김갑용의 모습을 현장에서 지켜본 사람처럼 말이다.

 

 

베토벤 바이러스를 현실로 느껴지게 하는 요소들

 

교향악 페스티벌에 외인구단이라 할 수 있는 리틀 강건우의 오케스트라 출전이 아무 문제없이 이루어졌다면 베바는 말 그대로 마법의 나라일 수 밖에 없다. 당연히 태클이 들어오는게 현실적이다. 물론 여전히 팩션모드일 뿐이지만 말이다. 피아니스트 서혜경의 등장은 또 어떤가. 이 정도 지원사격없이 리틀 강건우의 천재성만으로 이 오케스트라가 성공을 거둔다면 과연 설득력이 있을까.

 

 

두루미의 애정행각에 대한 주변단원들의 수근거림은 또 어떤가. 무슨 성인군자들도 아니고 저렇게 뒷다마 까고 건우의 이모 정희연은 화나는게 자연스럽다. 박혁권이 사정 뻔히 알면서도 리틀 강건우을 몰아붙이고 강마에를 필요이상으로 원망하고 까대는 것도 그럴싸하다. 이런 면에서 베바는 현실과 파격의 조화가 이미 잘 이루어진 작품이라는 개인적인 평가를 내리고 싶다.  

 

마지막으로 다른 얘기 하나 하고 끝내자. 베바 매니아가 아닌 음악 문외한으로서 지켜본 어제의 피아노 오디션 장면은 정말 압권이었다. 오랫만에 눈감고 감상하기 모드로 자연스럽게 전환할 정도로 말이다. 학생들의 피아노 연주를 들을때만 해도 속으로 '저 정도면 훌륭하구만 이든이 말대로 더럽게 눈도 높네 건우녀석'이라고 생각했었다.

 

 

마치 주성치 주연의 영화 '쿵후허슬'에서 도저히 고수로 보이지 않는 허름하고 남루한 외모를 가진 이들이 마법처럼 엄청난 무공으로 우리를 놀라게 했던 것처럼 목발을 짚고 등장한 아줌마스러운 피아노 학원선생 서혜경의 등장은 신선함 그 자체였다. "손가락 좀 풀어도 될까요"라고 말하면서 도레미파솔라시도를 천연덕스럽게 쳐대는 그녀의 모습에 급실망하는 단원들의 모습이 재밌다. 예정된 반전이었지만 본격적인 연주가 시작되면서 경악한 것은 나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또 이든이 말대로 영혼을 움직이는 연주라는게 진짜 있었던 것이다. 무슨 곡인지도 모르고 얼마나 높은 수준인지는 판단할 수 없었지만 난 피아노 연주라는 것에 '샤인'이라는 영화이후에 처음으로 전율을 느꼈다. 내 놈의 세포가 요동치는게 느껴졌다고 하면 과장일까. 한마디로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그녀의 신들린 연주모습과 TV를 통해 전달되는 선율에 넋이 나가고 말았다. 언제고 그녀의 연주회를 꼭 찾아가 보리라 하는 다짐까지 했다니까 글쎄. 베바 덕분에 여러가지로 호강하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