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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여운에 드리워진 우울한 그림자 - 올림픽축구

재능세공사 2008. 8. 11. 03:33

금빛여운에 드리워진 우울한 그림자

 

박태환이 물의나라에 태극기를 꽂으며 하루를 멋지게 열었다. 다들 그랬겠지만 지금까지 살면서 수영경기를 이토록 몸과 마음을 다바쳐 지켜본 적이 없다. 감동적이었다. 예선에서의 불안감은 한낱 노파심이었고 박태환은 광적인 국민적 기대에 대한 엄청난 부담감을 압도적인 기량으로 이겨내고 '마린보이'라는 그의 별명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대차게 증명했다.

 

 

오후에는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이후 한번도 금메달을 놓쳐본 적이 없는 여궁사들이 악천후와 중국관객의 비매너를 가뿐히 이겨내고 올림픽 6연패라는 무시무시한 기록을 세우며 또 한번 금빛기쁨을 안겨주었다. 한가지 불안한 점이 있다면 중국대표팀의 첸린이라는 선수의 단체전 활약을 감안해 볼 때 여자개인전의 우승만큼은 녹록치 않아 보인다는 사실이다. 그래도 개인전 2연패를 노리는 박성현의 기량이 여전히 최고수준임이 확인된만큼 좋은 결과를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이미 두개의 금메달 소식으로 배가 부른탓인지 넉넉한 마음으로 8강진출을 노리는 한국 올림픽 축구팀의 두번째 경기를 지켜봤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열세임이 분명한 상대였지만 웬지 오늘만큼은 잘 싸워줄 것만 같은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금빛여운으로 시작된 경기는 한국축구의 암울한 현주소를 확인시키며 이탈리아에게 3-0으로 완패했다.

 

 

너무나 뻔한 수비전술로 자멸한 올림픽 축구대표팀

 

애당초 견고한 수비력이나 선수 개개인의 개인능력이 하루아침에 향상될 수 없음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 이탈리아와 맞서면서 박성화 감독이 선택한 수세적인 전술은 완전한 실패작이다. 물론 1차전에서 막강화력을 뽐내며 온두라스를 완파한 이탈리아의 공격력과 현재 올림픽 축구대표팀의 허술한 수비력을 감안하면 감독의 선택을 이해 못할바는 아니다.

 

그러나 박감독의 의도와는 달리 상대방 진영에서의 압박을 아예 포기하고 중원을 손쉽게 내준 것은 결과적으로 실점을 최소화하지도 못했고 가뜩이나 허약한 공격력도 더욱 더 위축시키는 최악의 결과를 낳고 말았다. 최근의 경기를 복기해 보면 대표팀의 수비라인은 숫자가 충분한 상태에서 골을 허용한 적이 많다. 카메룬전도 그렇고 오늘 경기에서의 첫번째, 두번째 골 모두가 같은 양상이었다. 한마디로 수비숫자를 많이 둔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는 얘기다.

 

 

장기적으로야 피지컬만 우수한 수비수를 넘어서 어느 정도 위력적인 역습을 가능케 하는 패싱능력과 다급한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볼을 처리할 수 있는 개인기를 갖춘 수비라인을 양성하는 것이 필요하겠지만 현재 상태에서 우리가 객관적인 열세를 뒤집고 승리를 노리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한 맞붙작전이 필요했다는 생각이다.

 

물론 현재의 대표팀은 역대 대표팀이 보유하고 있던 상대적 강점인 '스피드'와 '체력'에서의 우위도 상실한 상태고 탁월한 골게터도 없는 최악의 상황이다. 카메룬전을 포함해서 우리 공격력의 유일한 무기는 천재 골잡이에서 천재 프리키커로 전업한 듯한 박주영의 날카로운 세트플레이뿐이다. 결과론이지만 와일드카드로 선택한 김정우와 김동진보다는 꼭 박지성이 아니더라도 좀 더 공격적인 선수를 보강하지 못했던 것이 아쉬울 뿐이다.

 

평가전때부터 올림픽 축구대표팀의 패싱게임은 실종된지 오래였다. 가뜩이나 헤딩장악력이나 키핑력이 뛰어난 대형 공격수를 보유하지 못한 상태에서 골키퍼 정성룡이 볼을 잡을때마다 롱킥으로 일관하거나 수비진영에서 허망하게 날리는 부정확한 롱패스를 계속 고집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게다가 평균신장은 물론 장신수비수가 즐비한 빗장수비의 이탈리아를 상대로는 더 더욱 먹히지 않을게 뻔한데 말이다.

 

기량차는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전력이 열세인 팀이 강팀과의 경기에서 좋은 결과를 낳기 위해서는 감독의 전략적 선택이 그 간극을 메워야 한다. 그것이 감독의 역할이고 역량인 것이다. 최소한 정상적인 공격비중을 유지하거나 한술 더 떠 위험을 감수하고 공격쪽에 더 비중을 둬서 승부했었다면 어땠을까? 최소한 이탈리아 공격수들처럼 개인기가 좋은 선수들이 체력소모도 별로 없이 하프라인을 거저 넘어와서 활개치는 여유는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물론 여전히 빈약한 공격력으로 골을 못 넣었을 수도 있고 더 대량실점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뻔한 결과를 수세적으로 기다리는 것보다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는 능동적인 전략을 선택하는 것이 대표팀을 응원하는 국민들을 위해서도 올림픽 무대에 선 선수들에게도 더 의미있는 도전이 아니었을까?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당했다는 느낌이 든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아쉽고 또 아쉽다.

 

 

이탈리아전 인사이드

 

신영록 카드는 감독 스스로가 후반시작하자마자 교체할만큼 완전한 실패작이다. 신영록은 매번 이탈리아 수비수와 힘겨운 헤딩경합을 하며 파울을 지적당한 것 밖에 한 일이 없다. 청소년 대표팀과 K리그 수원팀에서 보여준 기량을 이번 올림픽에서는 전혀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한편으로는 위에서 지적한대로 영양가 있는 찔러주는 패스를 거의 받아보지 못한 신영록만 탓할 일은 아니지만 말이다.

 

 

박주영은 카메룬전처럼 한국팀의 유일한 공격위협을 주도했지만 역시 결정적인 패스의 정확도가 떨어지고 개인드리블을 통해 스스로가 결정짓는 골게터로서의 면모를 많이 잃었다는 점에서 여전히 아쉽다. 앞으로 피지컬을 현저히 업그레이드 시키지 않고서는 더이상 박주영은 국가대표팀 공격을 이끌 미래가 될 수 없다.

 

 

이근호는 세번의 결정적인 찬스를 만들었던 카메룬전에 비해서 몸이 많이 무거워 보였다. 대표팀 공격수 중에서 상대적으로 파괴력이 있는 선수지만 오늘 이탈리아 수비에 철저히 막혀 카메라에 비친 적이 손에 꼽힐 정도다. 후반 교체된 백지훈과 이청용도 팀을 구하기에는 역부족이었고 최종 수비수들은 자신감 부족으로 실책성 플레이를 연발했다.

 

 

그나마 신광훈과 후반교체된 조영철의 가능성을 확인한 것이 유일한 위안꺼리가 아닐까 싶다. 좀 더 일찍 오장은을 바꾸어 주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온두라스와의 예선최종전에 조영철을 중용해 보기를 기대해 본다.

 

 

호랑이 엠블럼 훼손사건 그리고 실낱같은 희망

 

중계를 지켜보던 도중에 국대 유니폼 엠블럼 부분이 이상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잘못 본 것이겠지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경기가 끝나고 기사를 보니 IOC 방침으로 엠블럼을 임시변통으로 지울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유야 어찌되었던 우리 대표팀의 상징인 호랑이가 거세된 상태에서 대표팀이 경기를 치뤘다는 것은 기분나쁜 일이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우리나라 축구협회는 대표팀에 정말 도움이 안되는 존재다.

 

 

2:0으로 뒤질때만 해도 한골만 만회하면 골득실로 카메룬과 경쟁을 해볼 수 있을텐데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경기종료 직전 쐐기골을 허용하며 8강 진출 가능성이 더욱 더 멀어졌다. 그러나 최종전 상대가 이미 탈락이 확정되었고 최약체인 온두라스인만큼 모 아니면 도라는 기분으로 90분 내리 공격적인 전술로 승부를 내고 이탈리아의 카메룬 사냥을 기대해 보자. (가장 현실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스코어는 2:0 승, 카메룬 0:2 패다. 이렇게 될 경우 승점과 골득실에서는 동률을 이루지만 다득점에서 1골을 앞서게 된다..ㅜㅜ)

 

예전에 올림픽 예선에서 2승 1패의 성적을 거두고도 탈락한 적이 있다. 혹시 이번에는 얄미운 이탈리아 덕으로 어부지리로 8강에 오르는 행운이 따를지도 모르지 않는가. 물론 8강에 오른다 해도 대표팀의 더욱 실망스런 경기를 지켜봐야 할지도 모르지만 큰 대회에서의 이런 경험도 미래의 한국축구의 성장을 위해서는 좋은 약이 될 것이다. 이런 행운까지는 아니더라도 화끈한 경기로 유종의 미를 거두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