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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강 진출 - 행운인가? 실력인가?

재능세공사 2007. 9. 14. 20:40

 
어찌할 수 없는 축구팬으로서의 미련

 

바레인전의 졸전에도 불구하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미련없이 예선탈락하고 이를 계기로 후일을 도모해야 한다는 일부 팬들의 나름 일리있는 생각과는 달리 국대가 이대로 오명과 비웃음을 받으며 주저앉는걸 볼 수는 없었다.

 

 

나름 축구에 대한 애정으로는 서럽지 않을 지인 두명과 예정에도 없던 축구 번개모임에 환영을 표하게 된 것도 이런 속내 때문이었으리라. 내심 또 한번 평온한 삶에 스트레스를 짊어지게 될지도 모를 상황이 연출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하기도 했지만 어렴풋이 희망을 걸었던 것도 사실이다.

 

 

실력보다 행운이 더 필요했던 하루

 

사실 모두가 인식하고 있던 것처럼 인도네시아를 꺽는 것 보다는 사우디와 바레인이 어떤 결과를 내줄 것인지가 더 문제였다. 2002년의 광적인 응원열기를 재현하고 있는 홈팀 인도네시아를 일단 꺽어야 한다는 것이 최소한의 필요조건이었다면 나머지 경기에서 어느 쪽으로든 승부가 나야 하는 행운은 절체절명의 충분조건이었던 셈이다.

 

 

이럴때 필요한 말은 당근 '진인사 대천명'인데, 어쨌든 경기는 여전히 국대의 아시안컵 행보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축구팬들의 불안과 희망을 한껏 곧추세우며 시작됐다.

 

 

베어백의 선택

 

이전 두경기에서 확연히 다른 라인업을 선보였던 베어백은 일반적인 축구팬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생각으로 예선 최종전의 엔트리를 내세웠다. 물론 여전히 일부 선수에 대한 그만의 소신(고집)이 담겨있긴 했지만..

 

 

포백에서는 매우 부진했던 송종국 대신에 오범석을, 큰 실수도 없었지만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했던 김동진 자리에 김치우를 내세우는 것으로 1차전 모드로 돌아섰다.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강민수가 붙박이로 계속 나설 정도로 검증된 포백일원인지는 의문이다)

 

김상식은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를 지켰고 이호 대신에 손대호가 또 한자리를 차지했다. 솔직히 손대호에 대해서는 전혀 정보가 없는 상태라 코멘트하긴 어렵고 이전 경기에서 이호가 보여준 경기력을 감안하면 다른 대안을 찾은건 당연할 귀결이 아닐까 싶다.

 

 

킬러로는 상대적으로 컨디션이 나아 보이는 조재진이 선택되었고, 이천수와 최성국 라인을 좌우에 펼쳐 놓았는데 아무래도 피지컬이 상대적으로 약한 인도네시아 수비진을 감안한 선택이 아닌가 싶다. 그래도 염기훈 선발이 웬지 더 듬직해 보이는건 어쩔 수 없다..^^

 

김정우는 결정적인 실책에도 불구하고 김두현을 제치고 공격형 미드필더로 재신임을 받았고, 심리적 부담감과 이대로 물러날 수 없다는 강한 의지가 혼재되어 있는 상태에서 경기에 임했을 것으로 본다.

 

 

확연히 달라진 정신력

 

다른건 몰라도 경기를 보는 내내 누구나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죽기살기로 뛰는 정신력의 부활이다. 선취골을 넣건 체력이 딸리건 상대편에서 거칠게 나오건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가 생생히 느껴지는 한판이었다.

 

대통령 내외와 10만 홈관중이 내뿜는 아우라를 장착한 인도네시아 선수들의 결연한 의지와 실력 이상의 포스도 벼랑끝에서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키고 국민들을 더이상 실망시키기 않기 위한 대한민국 선수들의 강력한 투지앞에서는 힘을 잃을 수 밖에 없는 한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과 최종전을 갖게된 운명을 탓할 수 밖에..

 

 

오죽하면 저러다 다 쓰러지는게 아닐까 하는 노파심이 생길 정도로 열심히 뛰고 또 뛰었다. 한편으로는 왜 이전 두 경기에서 저런 열혈모드의 반의 반도 보이지 않았는지 또 한번 의아스럽기도 했고 말이다. 남은 경기에서도 제발 오늘만큼은 아니더라도 정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계속 보여주기를 간절히 당부하고 싶다.

 

 

절반의 희망과 우울한 그림자

 

찌라시 신문들은 또 한번 고질적인 골 결정력 부족을 단골메뉴처럼 끌어다가 휘갈겨 대겠지만 힘겨운 1점차 신승에도 불구하고 오늘 보여준 공격진의 모습은 절반의 희망을 느끼게 한다. 왼쪽라인의 김치우와 염기훈(최성국과 교체)이 보여준 호흡과 시원스런 오버래핑은 현재의 국대에서 가장 가능성 높은 어시스트 발원지로서의 포스를 보여주었다.

 

 

또한 조금씩 컨디션이 상승되고 있는 이천수의 모습에서 조금 더 빠르고 정확도 높은 크로스와 함께 세트피스 상황에서의 결정력을 기대해 봐도 좋을 것 같다. 그의 플레이를 언급할 때마다 빼놓지 않은 잔소리(근성을 넘어 지나치게 다혈질적으로 반응하는 것)는 여전히 유효하지만.

 

 

최종전까지 우리가 얻은 3골의 면면에서 공격의 핵이라고 할 수 있는 조재진, 이동국, 이천수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앞으로 상대할 8강 이후 팀들의 경기력을 감안해 보면 우울한 그림자가 아닐 수 없다.

 

조재진은 최종 평가전에서 보여주었던 킬러 본능을 찾지 못하고 있고, 이동국은 부상 후유증으로 정상 컨디션의 70% 수준을 밑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천수는 골보다는 찬스메이커로서의 역할에 치중하는 느낌이지만 월드컵 무대에서 보여준 킥력의 포스를 잃어버린듯 하다.

 

 

이들이 부활하지 못한다면 여전히 불안한 포백 수비진으로 토너먼트에서 살아남기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재치있는 개인기 센스에도 불구하고 파워가 부족한 최성국보다는 어려운 상황에서 한골씩을 만들어 낸 김두현과 김정우 쌍포의 화력지원에 조금 더 기대를 걸 수 밖에 없을듯 하다.

 

 

 

또 다른 시작

 

행운과 정신력으로 어려운 고비를 넘겼다. 월드컵 4강의 성적이 한껏 올려 놓은 국민들의 기대치에 대한 부담이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역시 사력을 다해 강하게 부딪혀온 홈팀의 힘겨운 도전을 물리친 국대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결과만을 가지고 선수들을 비난만 하는 팬이 되고 싶지는 않지만, 대표팀 선수로 발탁되어 팬들에게 확인된 실력이 잠시간의 방심이나 의지부족으로 절반도 발현되지 않는 모습까지 그저 묵묵히 인내하며 바라보는 팬이 되기는 어렵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부디 팬들이 쏟아내는 지극히 감정적인 원망과 질타보다는 언제나 국대 선수들의 플레이에 에너지를 얻고 아낌없이 성원을 보내는 진정한 팬들의 마음을 헤아려 천적 이란을 통쾌하게 작업하고 숙적 일본을 결승에서 깨끗히 이기고 우승컵을 들어올리길 간절히 바란다. 국대 앞날에 광영 있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