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토피아

대국민담화를 가장한 대국민뒷통수치기

재능세공사 2008. 6. 20. 04:21

참 이렇게 엉덩이가 무거운 대통령이 어디에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정도로 만만디 행보를 보여왔던 이명박 대통령이 황송(?)하게도 대국민담화에 나서겠다는 발표가 났을 때, 그래 이 정도까지 왔다면 무언가 확실히 느낀 점이 있겠고 완전히 만족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이제까지와는 다른 진정성어린 반성과 실질적으로 민의를 반영한 대책 한 두가지쯤은 내놓겠지 하는 기대감으로 1시간이 넘는 대국민담화와 기자회견을 지켜봤던게 사실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건 대국민담화가 아니라 사과를 가장한 협박문이었던 지난번 얘기를 안되는 머리로 쥐어짠듯 보이는 감성적 수사로 어설프게 포장만 한 대국민 뒷통수치기에 다름 아니다. 우리 국민들에겐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이번 담화에 그들딴에는 혼신의 힘을 쏟았을(일 저지르기전에 이렇게 좀 하지) 참모들과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기자회견을 덧붙인 것은 최악의 선택이 아니었나 싶다.

 

왜냐구. 담화문 자체도 세밀히 들여다 보면 함량미달이지만 기자들의 질문에 대한 대통령의 답변을 통해 알량한 담화문에 담긴 내용이 결코 그의 진짜 생각에서 나온 생각이 아님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이미 이전에도 많이 겪어서 어느정도 적응이 될 듯도 한데 당췌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반복적으로 내뱉는 그 무식한 용감성에는 여전히 백기를 들 수 밖에 없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소고기 수입을 거부하면 한미 FTA 비준이 연내에 처리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호소하던 사람이 추가협상으로 인해 한미 FTA에 악영향이 있지 않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정색을 하며 두 사안은 별개의 것이고 FTA 수정은 없고 연내 통과는 부시를 믿는단다. 좀 다른 이야기이지만 안보걱정을 그렇게 열심히 하는 정부가 취임 이후 북핵문제 해결의 장인 6자회담에서 투명인간처럼 손놓고 있을 정도로 남북관계를 급속하게 냉각시키고 있는 이유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국제표준과 충돌하지 않고 통상마찰을 일으키지 않으면서도 식품안전에 대한 국민의 염려를 해소하기 위해서 열심히 추가협상하고 있다고 그럴싸하게 말하고 있지만 오직 관심은 이 정부가 아무 생각없이 저지른 잘못때문에 미국이 신경질낼꺼만 두려워하고 있다. 중국산 마늘파동 사례를 요 논리에 써먹는 교활한 센스까지 동원하면서 말이다.

 

가장 기분이 나쁜 것은 식품안전에 대한 국민의 염려를 그렇게나 뒤늦게 깨닫고 반성했다는 사람이 추가협상을 통해서 기껏 얻어내겠다는 지상목표가 30개월령 이상 소고기 수입 절대 안하는거란다. 그것도 민간업체 자율규제와 미국 정부의 형식적일 수 밖에 없는 보증을 믿는거란다. 촛불집회에 쫄아있던 조중동을 중심으로 한 언론들이 추가협상 타결 에드벌룬을 며칠전부터 띄우며 이제 모든게 해결되고 있는 거처럼 설레발을 치는 모양새가 짜고치는 고스톱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오늘 백분토론에서 정부측 패널들은 FTA 만병통치약 논리를 들고 나왔다. 담화문에서도 이번 실책의 근본원인은 FTA 구하기에서 파생되었다고 주장했으니 지들딴에는 열심히 입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참여정부에서 타결된 FTA가 소고기 정국 물타기에 유용한 논리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나 보다. 소고기 수입과 연계되지 않은 상태에서 FTA가 타결되었던 작년 상황을 아주 더럽게 꼬이게 만든 당사자가 FTA 구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다 해야된다고 강변하는 후안무치함을 그대로 드러내는 짓인줄도 모르는 모양이다.

 

전혀 연관이 없는 사안은 아니었지만 이명박 대통령 스스로가 실토했듯이 이제는 우리가 원치 않아도 매우 불리한 입장에서 두가지 사안을 연계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몰리고 만 것이다. 이게 국민들 책임이라고 주장하고 싶은 것인가. 바로 당신네들의 그 자랑스런 2MB가 저지른 일이다. 또한 FTA는 미국과 한국 모두에서 비준과정에서 또 한번 논쟁이 불가피한 사안이다. 어느 쪽이든 어떤 이유에서건 비준이 나지 않는다면 효력을 발생할 수 없는 사안이고 객관적으로 양 쪽 모두 쉽사리 통과될 가능성은 난망한데 추가협상만 타결되면 자동빵으로 FTA가 날개를 다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처럼 무식한 주장이 또 어디 있을까.

 

백분토론에서 부산의 박선생이 지적한 것처럼 이번 담화의 타이밍도 지랄맞다. 추가협상이라도 타결되고 나서 했어야 옳지 않을까. 그래야 조금 더 명백한 팩트를 가지고 국민과 대화할 수 있고 마음에 차는 것은 아니지만 추가협상력에도 보탬이 되었을 것이니 말이다. 아마도 박선생의 예상대로 부시나 미국측 협상단 입장에서는 한편으로는 기분도 나쁘겠지만 한편으로는 우리측의 공개적인 협상방향과 상황을 대놓고 알려주는 우리 정부의 우매함을 비웃고 있을 것이다.

 

기자회견 내내 확인한 것이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여전히 자신의 생각에서 한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촛불민심에서 표출된 국민의 생각을 개무시하고 매번 아무 쓰잘데기도 없는 가정법을 고수한다. 국민이 반대한다면.. 안하겠다. 반대한다니까. 도대체 어떻게 의사표시를 해야 믿을껀데. 아주 국민들을 답답해 죽게 만들려고 하지 않고서야 이럴 수는 없다.

 

민영화는 안하고 선진화 한단다. 민영화라는 표현이 싫다면 다른 말로 할께라며 약올리는 신공은 대운하를 4대강정비계획으로 바꾼 짓으로 충분하거든. 제발 아무 짓도 하지 말란 말이다. 공기업 방만한게 민영화, 아니 선진화하면 진짜로 해결된다고 혈서 쓸 자신이 있는건지 모르겠다. 공기업에 낙하산 인사 앉히는 짓만 덜해도 진심이라고 그냥 인정해줄께.

 

인적쇄신도 개인책임을 묻는게 아니란다. 그냥 새출발하는 기분으로 하는거란다. 뒷말만 없었으면 유일하게 진실을 이야기했다고 평가해줄 수도 있었는데 청와대 수석이나 내각이 일을 제대로 못해서라거나 내 책임이 제일 크지만 대통령은 선거 아니면 바꿀 수 없는거니까 기냥 파리목숨인 내 부하들 날리는 거라고 이실직고하는게 아니라 그냥 모양새 갖추기 위해 그런다고 뻔뻔스럽게 얘기하니 할 말이 없다.

 

갈팡질팡 환율정책으로 물가상승과 고유가부담폭을 동시에 높인(물론 기자는 민생경제가 어려운데라는 모호한 표현을 썼지만) 경제부처 책임자들을 교체할 의사가 없는지 묻자 한다는 소리가 이런 비판이 있을때마다 사람을 바꾸면 책임지고 일을 못한단다. 최소한 지금의 어려운 상황이 경제부처 책임자들의 직접적인 실책이 아니라는 논거 몇가지라도 대고나서 해야할 말 아닌가 말이다. 과장된 표현일 수도 있지만 제 2 의 IMF 상황이 와도 이런 태평한 소리를 반복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마지막으로 이명박 대통령이 얼마나 부적절한 비교를 자랑스럽게 많이 하는지 짚고 끝내도록 하자. 경제여건이 너무 너무 어렵다고 하소연하며 정부가 이런 상황에서 얼마나 잘 대응할 예정인지 70년대의 오일쇼크 사례를 천연덕스럽게 들이대며 터무니 없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말이 필요없다. 대통령이 말한 그대로를 들어보라.

 

"참고로 70년대에도 이와같은 큰 충격은 아니지만 한 해 물가가 27% 올랐고 그 다음해에 1.5% 마이너스 성장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정부가 철저히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위기 속에서 또 새로운 분야를 검토해 나가도록 하는 발표를 조만간 국민에게 할 계획을 갖고 있다."

 

오늘 행한 대국민뒷통수치기의 근저에는 이명박 정부의 현 정국에 대한 형세판단과 대응방향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촛불도 이제 사그러 들고 있고(게다가 장마철이지 않은가) 언발에 오줌누기 수준의 내용이긴 하지만 우리 정부가 주저앉길 바라지 않는 미국이 추가협상은 오케이해줄 것이니 최소한의 민심달래기 명분은 생긴거고 FTA는 소고기 문제만큼 명백하게 반대만 할 수도 없는 문제니까 얘를 구하기 위해서는 협조해야 한다고 계속 구라치겠다는 얄팍한 속셈말이다.

 

한나라당을 비롯한 수구보수가 절대반지를 끼고 앉은 국회를 통해서 올가미 법안들을 하나둘 소리소문없이 통과시켜서 더이상 어떤 명분으로든 촛불을 드는 행위는 구조적으로 불법으로 만들고 인터넷에서 오만방자하게 찧고 까부는 자들과 아직도 권력의 쓴맛을 모르고 방송과 언론이라는 이름으로 대드는 자들을 확실하게 손봐주겠다는 장기적 포석이 깔린채 말이다. 2010년 지방선거까지가 아마도 그들이 이런 음모를 관철시켜야 하는 1차 데드라인이 될 것이다.

 

과연 얼마만큼의 촛불이 다시 모여야 저들을 저지할 수 있을까. 꽤 긴 싸움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지쳐서 포기하기에는 저들의 패악질과 망언이 점점 도를 더해갈 것이고 우리는 새로운 촛불들을 계속 만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서로 보급대가 되고 본대가 되고 논객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촛불에서 태동한 제대로 된 대안정당을 만나는 그 날까지 말이다. 국민 뒷통수치기를 밥 먹듯이 하는 이명박 정부를 무릎꿇고 빌게 하는 그날까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