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토피아

노짱은 외롭지 않았다, 아니 행복했다.

재능세공사 2008. 2. 26. 15:31

지난 5년간 대통령은 당연히 우리의 노짱이 지키고 계시지하는 생각에 빠져있다 보니 지난주까지만 해도 그의 퇴임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것을.. 그리고 가장 부끄러운 인물이 결국은 대통령에 취임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그제서야 깨닫게 되었다.

 

노짱이 드라마틱한 여정을 거쳐서 대통령에 당선되고 그가 취임식에서 당당하고 진지한 모습으로 대통령 선서를 하는 모습을 직접 목격했던 5년전 취임식때의 기쁨과 성취감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런 그에게도 어김없이 퇴임할 날이 다가왔으니 연임을 허용하지 않는 대한민국 헌법이 원망스러울 뿐이다. 그리고 그가 혹시나 외롭거나 공허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또 한번 노구(?)를 이끌고 그를 맞이하러 가기로 결심했다.

 

이미 시민광장 분들은 대부분 전날 봉하마을을 접수하러 가셨으니 혼자 그 먼길을 가자니 여러가지로 부담이 있었는데 마침 더힘찬세상님의 댓글이 달려있어 메일을 보내고 MBC스페셜을 보면서 접선을 기다렸다. 2시 도착을 목표로 했기때문에 9시 30분 정도까지 기다리다가 어쩔 수 없이 먼저 출발을 했는데 경부 고속도로를 타고 죽전근처를 지날무렵 핸드폰이 울렸다.

 

그렇게 우리는 이번 여행의 동반자가 되었고 보통의 어색한 첫만남이 무색하게 금새 동지가 되어 이런저런 이야기꽃을 피우고 맛있는 식사를 함께 하면서 6시간을 그렇게 길게 느끼지 않으며 봉하마을 초입에 도착했다. 이미 시간은 오후 5시가 가까워졌고 우리들 발걸음은 바빠졌다. 더힘찬세상님의 예리한 안목덕분에 공단근처에 명당자리를 발견하고 후딱 주차를 하고는 종종걸음으로 행사장으로 출발했다.

 

이미 많은 분들이 행사장을 빠져나오고 있었는데 어느 아주머니가 지나가시며 하시는 말씀이 아직 십분의 일도 빠져나오지 않았단다. 예상보다 많은 분들이 노짱님을 맞이하고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조금씩 실눈이 내리기 시작했고 바람이 거세어졌는데 분위기는 을씨년스러워도 곳곳에 붙어있는 마음이 담긴 현수막과 행사장을 빠져나가는 사람들의 미소때문인지 가슴이 더 설레일 뿐이었다.

 

드디어 행사장 도착. 이미 노짱님의 연설이 한창이었다. 작은 키 덕분에 사람들 사이로 노짱님의 얼굴을 겨우겨우 볼 수 있는 정도의 뒷자리였지만 현장에서 5년만에 재회한 노짱의 씩씩한 음성과 건강한 모습에 마냥 기뻤다. 그의 말 한자락 한자락 보다는 그 말 사이에 공존하는 한결같이 잊지 않고 그에게 성원을 보내주었던 지지자들에 대한 고마움, 숱한 어려움에도 무사히 임기를 마치고 돌아왔다는 안도감과 자부심, 무거운 책임감에서 잠시나마 해방된 이의 여유로운 미소와 유머 등이 훨씬 실감나게 전해졌다.

 

나의 노파심이 무색하게도 그는 전혀 외롭지 않았고 행복해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도 행복했고 그런 그가 고맙고 대견했다. 그리고 행사장에 모인 같은 생각과 마음을 가진 이들에 둘러쌓여 우리는 보이지 않는 우정을 그렇게 나눌 수 있었다. 또한 그는 한나라당 소속의 지자체장들에게도 진심어린 감사를 잊지 않았다. 정치적 포지션을 떠나 사람 대 사람으로 감사함을 표할 수 있는 그의 모습에서 대통령 이전부터 우리가 사랑했던 인간 노무현이 여전히 건재함을 확인할 수 있어서 더 흐뭇했다.

 

오랜 시간에 걸쳐 그를 만나러 왔지만 해후의 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러나 물리적 시간이 아무리 짧다한들 우리 만남의 무형적 깊이는 얕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의욕적이었고, 더 성숙해졌으며, 대통령이라는 무거운 굴레를 벗어던지고 자연인으로서 우리와 함께 아직 못다한 꿈을 향해 참여하자고 일관되게 외치고 있었으니까. 아마도 그에게 달콤한 휴식이란 그저 쉬는게 아니라 조금 별난 시민으로 거창하지 않지만 우직하게 시민을 위한 일에 땀방울을 흘리는 것인지 모른다.

 

한편으로 노무현은 여전히 정치지도자로서의 역할도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모두들 깜짝 퍼포먼스라고 표현했지만 그것은 분명 정치인 노무현이 작심하고 준비한 정치적 제스쳐다. 신의, 친구, 진짜 정치인, 가장 어려울 때 지켜준 사람, 노무현과 정치인, 서로에게 쓴소리도 해줄 수 있는 사이 등이 이날 노짱이 유시민에게 헌사한 표현들이다. 이쯤되면 정치인이 또 다른 정치인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찬사이자 애정이며 진득한 후원의사의 표현이 아니고 무었이겠는가.

 

어쩌면 그 자리에 참석한 다른 정치인들은 조금 섭섭했을지 모르지만 현장에 있는 대부분의 분들이 노짱의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호응할만큼 유시민이 그간 보여준 행보는 충분히 공감할 만한 것이 아니었을까. 때이르게 존경받는 정치원로에 반열에 오른 노짱의 귀엽고 유머스러운 질투는 더욱 분위기를 부드럽고 화기애애하게 만들어 주었다. 난 정말 절묘한 타이밍에 적절하게 구사되는 노짱의 유머가 좋다.

 

유시민 의원도 기분좋게(?) 당황해 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리고 수많은 눈과 귀가 있는 자리에서 그날의 영광을 독점해도 모자를 주인공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다. 차분한 어조로 정말 간결하게 노짱과 함께한 분들에게 감사와 다짐의 메시지를 전하는 모습에서 이미 또 다른 사랑에 빠진 이들은 열광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노짱의 "야 기분좋다"라는 자연산 외침과 함께 이날의 최고 하이라이트라고 능히 부를만하다.

 

지신밟기 행사로 자리를 옮겨 불을 붙이는데 그렇게 순식간에 활활 타오르는 불은 처음일 정도로 세찬 바람과 함께 우리 모두가 꿈꾸는 사람사는 세상 더불어 행복한 세상의 소망은 참석자 모두의 가슴에 따뜻하게 새겨졌다. 보안라인 사이로 노짱내외분이 지나는 순간 귀차니즘의 대가 역시 어줍짢게 핸드폰 카메라 촬영을 시도했으나 당연하게도 실패..ㅜㅜ

 

지지자들과 노짱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사저로 들어가신 후 우리는 관광객 모드로 변신했다. 노짱의 생가를 둘러보고 노짱이 준비한 맛있는 떡을 한조각 한조각 정성스레 뜯어 먹어가며 말이다. 영역표시의 욕구를 느껴서였을까. 노짱 생가 구석모퉁이의 화장실이 단박에 눈에 들어왔다. 기분좋게 여기 원잭이 다녀갔음을 원시적인 방법으로 표현하고 나니 마음까지 시원해진다..^^

 

혹시나 한번쯤 더 노짱을 볼 수 있을까 길지 않은 목을 세워가며 사저를 바라보지만 역시 그놈에 작은 키가 웬수다. 노사모를 중심으로 노래자랑이 시작되고 있었고 우리는 차한잔을 마시며 이심전심으로 떠날 때가 되었음을 직감했다. 그때만 해도 더이상의 즐거움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발걸음을 막 뗄 무렵 눈앞에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내 눈 앞에 유시민 의원이 걸어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역시 대구로 출발하고 있었던 것이다. 잽싸게 몸을 날려 유시민 의원과 악수를 청했다. 다소 피곤해 보이는 그였지만 웃으며 내 손을 잡아준다. 제대로 본전 뽑았다는 생각을 하며 지지자들의 악수공세에 파묻혀 쉽게 발걸음을 떼지 못하는 그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본다. 잘 될 것이다. 이길 것이다. 그리고 건강하게 의미있는 일을 성공적으로 마치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사진한컷 찍지 못한 아쉬움은 있었지만 내 마음속에 그와의 조우장면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을테니 그걸로 족하다. 우리는 앞으로 자주 만날테니까. 같은 정당의 소속원으로서, 같은 꿈을 꾸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더 많은 국민들이 필요로 하는 일에 함께 참여하는 사람으로서 말이다. 정말 노짱이 어렵게 이룬 토대가 모두 무너지기 전에 그가 대통령이 되고 취임식에서 그리고 더 아름다운 퇴임식에서 우리의 재회가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끝으로 이번 귀향행사를 위해 애써주신 겨란한판님, 김반장님, 그리고 시민광장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고 이번 여행내내 좋은 동반자로 함께해주신 더힘찬세상님에게 특별한 감사를 드리고 싶다. 앞으로 우리의 행복하고 기분좋은 만남은 끝없이 이어질테니 잠깐의 아쉬움은 느끼지 않으련다. 그리고 더 한가로워질 때 더 오붓하게 노짱과 진짜로 삼겹살에 소주 한잔 마시며 우리의 지난날과 앞으로 함께 해야 할 미래에 대한 이야기 꽃을 피우리라. 노짱님 내외분, 그리고 대구에서 고군분투중인 유시민 의원님 건강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