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토피아

안철수 신드롬과 진보통합정당의 가치

재능세공사 2011. 9. 6. 04:14

안철수 교수와 박원순 상임이사 출마가능성이 처음 보도된 이후부터 조금이라도 관련된 기사나 글이라면 빠짐 없이 읽어 왔다. 아마도 지금과 같은 엄중한 상황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속내가 복잡하지는 않았을게다. 그만큼 상황을 판단하는게 어려웠고 여러 사람들의 반응과 언론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해지는 정보를 최대한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필자가 활동하고 있는 자기계발 분야에서도 이 두 사람은 많은 사람의 존경과 주목을 받던 이들이었고 개인적으로 정말 우리 사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사회적 멘토로 인정하고 있었던 차다. 물론 마음속에는 현재의 위치에만 머물러 있지 말고 언젠가(정치환경이 어느 정도 상식적이고 합리적으로 정상화되었을 때)는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정치에 참여했으면 하는 바람도 가지고 있었다.

현재까지 안철수 교수의 속내를 가장 잘 유추해 볼 수 있는 기사는 오마이뉴스가 진행한 2시간여의 인터뷰 내용이다. 기사를 읽고 든 생각은 안도감과 우려를 동시에 느꼈다고 하는게 정확할듯 싶다. 최소한 홍준표의 염치없고 천박한 기대처럼 상황이 돌아갈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첫번째고 안철수를 최대한 활용하여 자기뱃속을 채우려는 윤여준의 과도한 설레발과 언론플레이는 걸러서 들을 필요가 있음을 확인한게 두번째다.

안철수 교수는 자기생각이 아주 뚜렷한 사람이다. 이번 오마이뉴스 인터뷰를 봐도 얼핏 잘못 생각하면 오만하게 느껴질 정도로 직설적인 화법으로 일관하며 에둘러 가는 것 없이 자신의 생각을 뚜렷하게 밝히고 있다. 출마여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와중에도 자신은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의미와 열정을 느끼게 하고 잘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분야(정치)에서의 일(행정)에 도전할 뿐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안철수 교수의 지금까지의 삶의 이력을 감안해 보면 관전자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워도 지극히 당연한 인식일 수 있다)

그의 정체성에 대한 수많은 의혹, 검증, 평가에 몇 마디 덧붙일 생각은 없다. 조금 더 시간을 가지고 지켜 보면 그의 선택과 행동으로 모든 궁금증이 확인될테니까. 다만 조금 다른 각도에서 그에게 묻고 싶고 아쉬운 점을 이야기하고 싶다. 이것은 안교수뿐만 아니라 약간은 다르지만 거의 유사한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고 판단하는 박상임이사에게도 그대로 해당되는 이야기다.

두 사람에게 쏠리는 관심과 지지는 또 하나의 정치적 영웅을 갈구하는 시민들의 막연한 기대감인 동시에 이미 정치하는 놈들에게는 기대할 것이 전혀 없다는 만성화 된 냉소와 그런 혐오의 대상으로 도매급으로 낙인찍혀 옴짝 달싹도 할 수 없는 최악의 정치환경속에서도 결국은 주권자들이 알아줄 것이라 믿으며 뚜벅뚜벅 자신들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상대적으로 적지만 양심적이며 헌신적인 정치인들을 시간과 관심을 들여 가려낼 생각이 거의 없는 대중들의 정치적 게으름의 산물이다.

안철수 교수와 박원순 상임이사에게 묻는다. 정말 기존 정치인 중에 두 사람처럼 자질과 능력이 출중한 이들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는가? 사람사는 세상을 꿈꾸며 자신만의 행복보다는 더 많은 이들의 행복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 헌신할 자세가 되어 있는 이들이 없다고 생각하는가? 두 사람 정도의 삶의 이력을 갖춘 이들이라면 조금만 눈여겨 봐도 많지는 않지만 유의미한 숫자의 동지들을 발견할 수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 나같은 평범한 소시민도 조금의 노력과 관찰로 그들을 발견할 수 있었으니까.

현실정치에서 정치권력을 양분하고 있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똑같이 비판하는걸 보면 단지 힘을 기준으로 대안세력의 적격여부를 판단하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공인으로서 책임지는 정치를 시작하는 기본은 그래서 정당이다. 과거와 현재에 얽매이지 않고 가능성 있는 정당(그 정당에 소속되어 있는 정치인)을 우선 찾아볼 생각을 왜 안하는지 모르겠다. 이미 대중적 진보정당의 탄생을 위해 노력하는 정치세력이 있다. 그들에게 힘을 보탤 생각은 없을까? 그들만의 힘으로는 탄생시키기 어려운 대중적 진보정당이라는 대안세력을 만드는데 일조하는 것이야말로 지금 시점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치활동이라고 여길 수는 없을까?

오늘 유시민의 따뜻한 라디오에서 김민웅과 대담 중 유시민 대표는 이런 아쉬움을 토로했다. 신선한 인물에 대한 관심만큼 신선한 정당에 대한 관심이 일어나는 일은 왜 생기지 않느냐고 말이다. 양당구조가 이어져 오면서 이미 두텁게 형성된 정치혐오의 최대 피해자는 그래서 척박한 토양에서 대안정당을 일구어내려 애쓰는 작은 규모의 진보정당일 수 밖에 없다. 새로운 정당이나 현실정치에 영향력이 작은 정당은 알려질 기회뿐만 아니라 질적인 차이를 제대로 평가받을 기회는 더더욱 없는게 냉정한 현실이다.

액면 그대로 상식 대 비상식의 잣대로 안철수 교수나 박원순 상임이사가 꿈꾸는 새로운 의미의 정치를 지향하는 세력은 이미 존재한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지배하는 양당구조의 한계와 염증을 가장 중요한 동인으로 꼽고 있는 이들마저도 대안정치와 정당을 태동시키려는 작지만 의미있는 대중적 진보정당을 제대로 살펴보고 평가하려는 노력과 시도도 하지 않은채 기성정치권으로 도매급으로 몰아세우며 무소속이라는 가장 평이하고 쉬운 선택으로 정치를 시작하려 한다면 우리에게 희망은 없다.

그래서 진영논리에 빠져 시대가 요구하고 있는 대중적 진보통합정당 건설을 지지부진하게 만들고 있는 정치세력들은 반성하고 또 반성해야 한다. 그렇게 오랜시간을 기다렸건만 진보통합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있는 상태다. 내용적 진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시간을 너무 많이 소비했고 국민들과 교감하고 새로운 희망을 담아낼 타이밍을 많이도 놓쳤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결과지만, 만약 재보선 국면이 전개되기 전에 진보통합정당 건설이 순조롭게 이루어졌다고 가정해 보자.

적어도 지금처럼 개인적 명망과 인기를 바탕으로 한 국민적 관심의 싹쓸이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누구도 전혀 합쳐질 가능성이 없어 보였던 기존의 진보정당과 참여당의 통합은 정당 차원의 사건치고는 분명 주목받았으리라. 두 사람이 지금처럼 무소속 출마를 당연시하며 뜻이 맞는 기성정당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듯이 대놓고 움직이지도 못했으리라. 객관적으로 안철수 교수와 박원순 상임이사에게 가장 어울릴만한 정당을 묻는다면 진보통합정당을 꼽는 이들이 많았을게다. 이런 상황이었다면 이 두사람의 출마와 진보통합정당의 출범이 맞물리며 시너지 효과를 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안철수에 열광하는 이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양당구조로 빠져 나가지 않고 튼실한 그릇 역할을 할 수 있었을테니 말이다.

아직 기회와 희망은 남아 있다. 분명한건 두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하든지간에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 바라는 상황으로 귀결될 가능성은 적다는 점이다. 출마를 결심하게 되면 두 사람 모두 이전까지의 이도 저도 아닌 스탠스는 버릴 수 밖에 없다. 이들이 현재까지의 삶에서 보여준 모범적인 실천과 학습능력이 다시금 발휘되어 현재의 엄혹한 정치상황을 주체적 참여자의 입장에서 좀 더 세밀히 다시 진단하고 뜻을 함께 펼쳐갈 수 있는 정치적 동지들이 어느 정당에 포진되어 있는지 살펴 힘을 모으고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선택해 나가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은 빠른 시일내에 머리를 다시 맞대고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속도로 대중적 진보통합정당 건설을 향해 진도나가야 한다. 안철수와 박원순으로 상징되는 상식적인 시민들을 담아낼 그릇을 빨리 만들어 내지 못한다면 상황은 지금 우리가 혼란스러워 하고 우려하는 것처럼 통제되지 않는 정치적 쓰나미가 밀려와 그동안 지난한 어려움속에 아주 조금씩 쌓아올린 희망의 탑이 와르르 휩쓸려 갈지도 모른다. 이들의 출현을 플러스효과로 만들고 대중적 진보통합정당의 가능성과 가치를 더욱 높여주는 지렛대로 삼을 수 있느냐는 그동안의 지지부진과는 확연히 대비되는 속도감 있는 통합성사에 달려 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안철수 신드롬의 소용돌이속에서 넋을 놓고 정치공학적 셈법에 골몰하고 있을 때, 진보진영은 행동으로서 두 사람에게 가장 단순하고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 완전하지는 않아도 동일한 문제의식을 출발점으로 삼아 한국정치의 미래를 혁신하고자 하는 당신들이 몸담아 볼 만한 새로운 정당이 여기 있다고. 부족한 점을 함께 힘을 모아 채워 나가자고. 당장은 아니더라도 가까운 미래에 더 큰 대의를 위해 뭉칠만한 대안정당이 가장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새출발하면서 당신들에게 문호를 활짝 열고 있다고 외치잔 말이다. 

앞으로 남은 기간동안 우리가 할 일은 그래서 이들이 어떤 행보를 할 것이며, 우리의 앞날에 어떤 영향력을 미칠지 논평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적 진보통합정당의 성사를 위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만 일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더이상 낭비할 시간이 없다. 발목잡고 몽니 부리는 이들은 그들만의 길로 가게 놓아주고 불확실하고 두려운 미래지만 새로운 희망에 대한 믿음으로 함께 걸어가려는 이들과 당당하고 아름답게 하나가 되자.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한국정치의 미래를 바꾼 역사적인 정당혁명의 9월로 기억되기를 간절히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