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토피아

정녕 한나라당과 MB심판에 성공한걸까?

재능세공사 2011. 4. 28. 16:53

과연 야권이 환하게 웃을 수 있는 결과인가?

 

4.27 재보궐 선거가 막을 내렸다. 미리 써 놓은 냄새가 물씬 풍기는 주요 언론들의 타이틀만 놓고 보면 '야권 승리(민주당 승리), 한나라당 참패, 날개 꺽인 유시민의 추락'으로 단순 명쾌하게 선거결과가 정리된다. 재보궐 선거 관련된 거의 모든 기사들은 이 세 가지 기본명제를 기반으로 무한루프같이 반복,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한마디로 조금이라도 다른 논조의 결과평은 발 붙일 틈이 없어 보이는 형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쯤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 봤으면 하는 글을 써보고자 한다.

 

 

이 글의 제목 그대로 정말 야권은 승리하고 민심은 한나라당과 MB심판에 성공할 선거였을까? 너무나 아프게도 겉으로 드러난 성적표에도 불구하고 내용적으로 조금만 들어가 보면 한나라당과 MB는 경고 메시지를 받았을 뿐이지 제대로 심판받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어떤 근거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냐구 반문할 이들이 많을 것이다. 지금부터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차근차근 대화를 나누어 보자. 그리고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진정한 의미의 심판과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교훈을 함께 발굴해 보자.

 

 

민심이반의 정도와 선거결과의 간극

 

아주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재보궐 선거 이전과 선거운동 기간 내내 단 하나라도 한나라당과 MB에게 유리하거나 희망을 걸만한 일들이 있었는지. 아무리 찾아내 보려 해도 생각나는게 없다. 그만큼 민심이반의 정도는 IMF 초래, 차떼기당 낙인, 탄핵정국 등 한나라당의 존립 자체를 위협했던 3대 위기상황 보다 내용적으로 심각한 상태에서 맞이한 선거였다. 이런 선거(우여곡절은 있었지만 야권연대까지 성공한 상황이라면)에서 야권이 압승하지 못한다면 그게 더 이상한거다.

 

 

천당아래 분당이자 한나라당의 철옹성 같은 텃밭에서의 승리, 이광재에게 한번 내주었지만 훨씬 더 오랜 기간동안 한나라당을 지지했던 강원도에서의 역전극의 의미를 부정하자는게 아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최소한 YTN 출구조사 결과 만큼은 이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재보궐 선거치고는 이상열기라 할 만한 투표율 상승에도 불구하고 정말 간신히 어렵게 이겼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김해을에서는 폐기처분해도 모자랄 인물에게 2% 차이로 의석을 넘겨주기까지 했다.

 

 

이것 뿐일까? 빅 4 지역의 광풍에 휩쓸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나머지 지역의 결과를 지금 환호하고 있는 야권이 조금만 제대로 들여다 본다면 환호할 일이 아님은 자명해진다. 민주노동당의 부분적 성과를 제외하면 한나라당은 심판은 커녕 이전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고 또 하나의 지역정당으로 굳어지고 있는 자유선진당의 충청권 입지만이 도드라질 뿐이다. 별로 중요하지 않고 작은 지역이니 대세와는 무관하다고 말하고 싶은가. 그렇지 않다. 위에서 언급한 민심이반의 정도를 감안하면 최소한 유의미한 수준의 결과가 이러한 지역에서도 확인되었어야 한다.

 

 

진짜 언론이라면 정말 아프게 조명했어야 할 '시민들의 좌절'

 

나를 가장 가슴 아프게 하는 것은 이번 재보궐 선거에서 제대로 된 언론들이라면 진짜 주목하고 전달했어야 할 '한국정치를 바로잡고자 하는 자발적 시민들의 눈물겨운 사투와 좌절'을 조명하는 기사가 단 한 건도 없다는 참담한 현실이다. 포털 뉴스란을 도배하고 있는 기사의 제목들을 보라. 선거결과 예상 시나리오 별로 미리 작심하고 써놓은 듯한 정치공학적 기사가 춤을 추고, 악의적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유시민 추락' 기사들에서는 감히 자신들이 강고하게 쌓아 놓은 프레임과 관행에 무모하게 도전한 자의 실패를 조롱하고 이 기회에 싹을 밟아 버리겠다는 음험한 기운이 농후하다.

 

 

야권이 더 단단하게 뭉치기를 원치 않는 현 정권 지지세력과 완전한 민주당 중심의 야권연대 기상도를 그리고 있는 이들에게 김해을의 결과는 여러모로 매력적인 먹이감이 되 버린게 사실이다. 점점 궁지에 몰리고 있는 이명박도 자신과 점점 닮은 꼴(정치생명이 끝날 뻔한 위기에서 괴이하게 부활)로 변해가고 있는 김태호를 박근혜 대항마로 흐뭇하게 낙점할 수 있게 되었고. 제 정파 모두 최대한 우려 먹고 싶을게다. 그 도마위에 유시민이 무방비 상태로 발가 벗겨진 채 희생의 제물로 올려질 것은 자명하다.

 

이미 현실 정치인으로서는 부정적 이미지 덧씌우기의 대표적인 희생자였던 유시민에게 또 한 차례의 무차별 주홍글씨 새기기가 본격화 될 판이다. '후보단일화에서만 이기고 본선에서는 패배하는 표의 확장성에 한계가 있는 인물', '야권 분열의 아이콘', '친노 적자로서의 위상 상실', '대선주자로서의 영향력 급속 추락' 등 그들이 바라마지 않는 희망사항을 기정사실화 하고 앞으로도 결코 변할 수 없는 수준으로 공고히 하기 위해 공격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김해을 선거결과가 나온 후 유시민은 국민참여당 게시판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두 건의 짧은 메시지로 그를 있는 그대로 봐줄 생각이 없는 이들은 결코 공감할 수 없는 속마음을 털어 놓았다. "당원 동지 여러분, 당대표 유시민입니다. 사/랑/합/니/다. 오늘은 이 말 밖에 할 수가 없습니다. 사/랑/합/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너무나 죄송합니다. 제가 큰 죄를 지었습니다"

 

아마도 그를 대권욕에 눈 멀고 개인적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기존 정치인과 다를 바 없는 사람으로 보는 이들에게는 이 두 가지 메시지 조차 자신들의 비난과 낙인을 자인하고 받아 들이는 증거로 여기며 승리감에 도취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이 짧은 몇 마디 말 안에 있는 그대로의 유시민이 누구에게 어떤 마음으로 외치고 있는지를 절절하게 느끼고 있다. 

 

 

그는 책임(그 책임의 범위, 내용, 대상이 적정한지와 상관 없이)을 회피할 생각이 추호도 없다. 자신들의 일상을 내 던지고 온 몸으로 함께 사는 세상을 꿈꾸며 열정을 불태웠던 자발적 시민들이자 당원들에게 보낼 수 있는 최고의 고마움과 미안함의 표현으로 '사랑합니다'라는 단어를 대체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을게다. 그리고 자신 역시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 선거였지만 패배라는 결과 앞에서 어떠한 이유로라도 자위하거나 변명하고 싶지 않기에, 시민들의 염원을 승리로 보답하지 못했기에 죄인의 심정으로 고개를 떨구고 있는 것이다.

 

 

아무도 주목하고 들려주지 않은 이야기

 

김해을 선거는 김태호와 유시민의 싸움이 아니었다. 깨어있는 최후의 보루, 자발적 시민들과 구태 정치와의 싸움이 본 모습이다. 지역감정, 자질이나 능력과는 무관한 감정적 동정표, 나홀로 유세로 포장한 불법선거와 조직 동원, 당선만 될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는 철면피 근성, 선거관리위원회가 마땅히 해야 할 투표 독려를 대신하느라 지지호소는 엄두도 낼 수 없는 한심한 선거법의 족쇄 앞에서 시민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은 진심을 전달하는 것 밖에는 없었다.

 

 

평범한 시민들에게 그 어떤 자산보다 소중한 주말의 휴식과 연월차 휴가를 그들은 함께 사는 세상을 향한 염원으로 과감히 내던지고 삼삼오오 모여 김해로 내려갔다. 현장 밖에서 이리 저리 훈수를 두고 기계적인 관전평만 해대던 이들과 달리 이들은 김해 유권자들에게 달려가 온 몸으로 호소하는 길을 택했다. 자비를 들여 이동하고 식사하고 숙박하면서 이들의 머리 속을 지배한 단 한가지 목표는 '같은 시민의 입장에서 자신들의 순수한 바람을 어떻게 하면 더 잘 전달할 수 있을까' 뿐이었다.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시민과 접촉하기 위해 뻘쭘하고 어색한 소규모 단위의 투표 독려전을 전개하고 무관심한 시민들의 눈길을 조금이라도 더 끌어모으기 위해 튀는 복장과 튀는 피켓내용을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당대표, 후보, 당원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같은 목표를 향해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피곤함을 마다하지 않았다. 허기를 채우고 잠깐의 휴식을 취할 유일한 식사 시간도 지역민과 접촉해 호소할 기회로 바꾼다. 아마도 그들 인생에서 이렇게 절박하게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은 기억은 없으리라.

 

 

이전에도 간헐적으로 자발적 시민들의 참여사례가 있었지만 이번 김해을 선거에서의 규모와 눈물겨운 열정은 차원이 달랐다. 최대 1,000명 이상의 시민들이 함께 힘을 모아 유권자 설득에 나섰고 그 열기속에서 승리의 희망이 싹튼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바닥민심은 아직 이들의 호소에 충분한 공감과 호응으로 반응해 주기에는 간극이 있었다. 신생정당에 대한 낮은 인지도와 못 미더움,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기에는 기존 선거 분위기와 너무 다른 생소함과 의구심의 벽을 단 2% 정도 넘지 못했던 것이다.

 

 

결과적 패배는 쓰리도록 아프고 잠시 동안 우리를 절망으로 내 몬다. 그러나 이들의 눈물겨운 헌신과 열정이 새로운 도전을 위한 자양분으로 이어지지 않고 허공으로 사라지게 할 수는 없다. 김해을에서 채우지 못한 민심과의 남은 조우를 성사시키기 위해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는 전국 모든 지역에서 이 도전은 계속 되어야 한다. 물방울이 바위를 뚫을 때 까지 우리는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그 강고해 보이던 구태 정치관행과 지역감정의 생명도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들의 노력으로 차곡차곡 쌓아 온 성과를 과소평가하지 말자. 이제 우리가 꿈꾸는 세상을 여는 임계점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낀다.

 

 

야권 모두에게 간절하게 호소한다

 

이번 선거를 통한 민심의 의지는 분명하다. 여전히 정권심판과 대안세력으로서의 추인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는 메시지 말이다. 최소한 그 동안의 외면과 무관심에서 벗어나 기대를 걸어 보겠다는 의사표시 만큼은 확실히 한 셈이다. 정파적 이익 때문이 아니라 진짜 뜻을 모아 민심에 역행하고 있는 현 정권과 다른 정치를 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남은 기간 동안 증명하라는 명령이다. 작은 승리에 취해서 방심하거나 누가 주역이 될지를 놓고 싸우는 모습이 조금이라도 연출 된다면 민심은 순식간에 과거의 상태로 되돌아 갈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손학규 대표에게 요청한다. 유력한 대권 경쟁자로서만 유시민을 바라 보지 말고 무도한 정권 심판과 민주개혁 세력의 재집권을 위한 소중한 자산으로 여겨 달라. 재보궐 선거전까지 불리했던 상황보다 힘을 얻었을 때의 처신이 더 중요함은 스스로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야권이 힘을 모으는데 보탬이 되지 않는 의도적인 논란과 비난의 소용돌이 속에 유시민 대표를 홀로 놔 두어서는 안된다. 좌시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감싸 안아야 한다. 그것이 야권이 사는 길이고 손학규 대표가 사는 길이고 국민이 보고 싶어 하는 모습이다.

 

 

이정희 대표와 조승수 대표에게 요청한다. 진보정당의 맏형으로서 이제부터의 역할이 더 중요해 졌음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민주당과 국민참여당 사이를 현실적으로 더 잘 중재하고 균형을 맞추어 줄 적임자는 그대 들이다. 국민의 명령과 시민단체들이 정치권 외곽에서 민심을 대변하고 야권연대의 동력을 제공하는 큰 틀에서의 중재자이자 후원자라면, 그대 들은 실질적인 야권연대 협상을 합리적이고 상식적으로 이끌어 가는 주역이 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손학규 대표와 유시민 대표 모두와 끊임 없이 소통하고 협력하여 양 당의 신뢰를 얻는데 최선을 다해 달라.

 

유시민 대표에게 요청한다. 이번 선거를 통해 국민참여당과 유시민 대표가 잃은 것도 많지만 무엇을 더 채워야 하고 노력해야 하는지도 체감했을 것이다. 다시 그 자리에서 일어나 국민들 속으로 더 가까이 다가 가는데 힘을 모아야 한다. 어떤 행보를 선택하든 변하지 않을 맹목적이고 편향적인 비난에 굴하지 말고 대안정당의 가치를 증명하고 추인받는데 집중하자. 이동당사에 시민들의 자리를 충분히 마련하고 초대하라. 국민참여당을 알리는 것이 먼저가 아니라, 시민들의 목소리로 국민참여당을 가득 채우는게 먼저다.

 

 

최고위원 회의에 시민들을 참석시키고 그들이 이야기 할 수 있는 시간을 최대한 많이 할애 했으면 한다. 시민들끼리 소통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달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직접 국민참여당이 어떤 대안을 모색하고 있고 실현시키고자 하는 지를 들려 주어야 한다. 그 모든 과정을 더 많은 시민들이 있는 그대로 지켜 보게 될 때 우리가 외롭게 부르짖던 호소가 메아리로 흩어지지 않고 서서히 국민들 마음속으로 스며들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야권 모두에게 명령한다.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고 소모적 갈등의 여지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상시적인 야권연대 협상기구를 조속히 구성해야 한다. 지금부터 뜻을 모으고 이견을 합리적으로 조율하지 않으면 우리는 더 큰 전투에서 패배할 빌미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충분히 토론하고 작은 진전이 있을때 마다 국민에게 보고하라. 갑작스런 야합이 아니라 대의를 가지고 성숙하게 논의한 결과물 임을 꾸준하게 인지시켜 달라는 얘기다.

 

각 당의 강점을 살릴 수 있는 야권 단일후보 결정방식과 기준을 심도 있게 논의해 주길 바란다. 자당 후보를 따로 공천하고 어느 한 쪽은 불만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치킨게임 같은 단일화를 더 이상 되풀이 하지 않도록 연합 공천을 기본으로 삼았으면 좋겠다. 지방선거와 재보궐 선거에서의 야권연대 경험은 소중한 자산이자 교훈으로 삼을만 하다. 과정은 복잡하고 힘들어도 국민은 그것까지 알 필요가 없다. 명쾌한 결론을 가지고 국민들 앞에 나서야 한다. 그것만이 더 이상 민심과 선거결과가 괴리되는 안타까운 현실이 되풀이 되는 것을 예방할 수 있음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함께 사는 세상을 꿈꾸는 이들 모두가 마음껏 승리를 자축할 수 있는 그 날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