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토피아

직장인의 눈에 비친 '역전의 여왕'?

재능세공사 2010. 10. 27. 03:24

현실과 드라마 중 무엇이 더 비루할까?

 

이전 시즌격인 '내조의 여왕'도 그렇고 최근 방영되고 있는 '역전의여왕'의 주요코드는 평범하다 못해 불쌍하기까지 한 직장인 남편을 둔 아내들의 버라이어티 분투기다. 10년간 직장생활을 찐하게 경험하고 지금은 1인기업으로 활동하고 있는 필자의 입장에서 이 드라마는 맘편하게 흥미위주로 코믹코드를 즐기며 보기엔 그 이상의 것이 있다. 아마도 지금 다양한 곳에서 서로 다른 위치에서 직장생활을 영위하는 샐러리맨들에게는 곱씹어 볼 구석이 적지 않을게다.

 

 

직장생활을 충분히 경험해 보지 못하거나 간접적으로만 전해 들어온 사람들 입장에서는 드라마를 보다가 '에이 설마~ 저 정도겠어. 드라마니까 너무 과장된거 같은데..'라는 생각도 들법하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다소 과장된 면도 있지만 드라마조차 표현하지 못할 더욱 비루하고 비상식적인 일이 현실속 직장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고 보면 된다. 다만 드라마처럼 노골적이고 직접적으로 순식간에 벌어지기 보다는 훨씬 더 은밀하고 간접적으로 긴 시간동안 일어난다는 차이점이 존재할 뿐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비교가 될만한 사안들을 중심으로 드라마와 현실의 차이를 비교해 보자.

 

 

직장생활하면서 진급하기가 그렇게 어렵고 사연이 많을까?

 

아마도 직장생활을 3년 이상 해본 분들이라면 직장에서 영원히 불만족스러울 수 밖에 없는 문제가 '공평한 인사'라는 점을 실감하고 있을게다. 아무리 훌륭한 인사평가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해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상사와의 관계를 어렵게 만드는 대부분의 이유도 여기서 나온다. 항상 저평가되고 있다는 느끼는 피평가자와 결국은 누군가에게는 낮은 인사고과를 줄 수 밖에 없는 상대평가라는 테두리속에서 평가자 역시 괴롭긴 마찬가지다.

 

 

본질적으로 객관성이 보장될 수 없는, 아니 감정이 개입될 수 밖에 없는게 인사평가라는 얘기다. 드라마속에서 벌어지는 빈번한 진급누락, 동료나 상사에게 자기 공 뺏기기, 특정상사의 편애나 도끼로 찍기 등은 현실에서도 비일비재한 일이다. 또한 진급에서 누락한다는 것은 아쉬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장래에 최우선 정리대상에 가까워진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로 다가올 수 밖에.

 

 

회사에서 직원을 해고하려 할 경우 드라마에서처럼 잔인하게 굴까?

 

연출을 그렇게 해서 그렇지 사실 구조조정 면담과정은 에프엠에 가깝다. 영화 인디에어에서 해고전문가를 고용해서 처리하는 장면이 연상될 정도로. 이 정도면 신사적이라는거다. 필자는 예전에 몸담고 있던 회사에서 스스로 사직서를 내도록 유도하기 위해서 사전예보도 없이 사내 인트라넷을 권한을 막고 부장급 이상의 분들을 한 섹션에 노골적으로 몰아넣고 수치심을 느끼게 만드는 일을 직접 겪었다. 그 분들의 항의와 설명요구에 난감해서 어쩔줄 몰라 하던 IT담당자가 바로 나였으니까.

 

 

회사사정이 정말 어려워져서 구조조정을 하는걸까?

 

어쩔 수 없는 구조조정은 대개 공식적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은밀하고 교활하게 진행되는 감축은 대개 떳떳치 못한 이유가 있다. 윗선에서의 실책을 무마하기 위한 희생양을 만들기 위해, 새로운 경영진 또는 오너일가의 회사접수에 필요한 친정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어떤 이유에서건 회사에 안좋게 낙인찍힌(실제로는 팀장급 이상이 마음에 안들어 하는) 직원들을 해고할 명분을 만들기 위해 갑자기 등장하는 이상한 프로젝트나 태스크포스팀으로의 발령 등이 대표적으로 악용되는 수단이다.

 

 

실제 실력자들이나 오너가 정면에 나설까?

 

이들이 가장 기피하는 행동이다. 오너 일가나 실력자가 직접 칼을 휘두르거나 책임을 맡는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오너일가들이 전문경영인을 내세우는 이유는 전문성도 무시할 수 없지만 문제가 생겼을 때 안전판이 필요하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물론 실질적인 의사결정이나 명령은 이들의 몫이다. 드라마속에서 일개사원의 아내에게 오너일가의 낙하산 인사가 면전에서 그런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드라마속에서나 벌어지는 환타지일 수 밖에.

 

 

 

드라마처럼 임원들은 정치만 하고 일은 안하는걸까?

 

임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역시 의사결정과 모니터링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기업 임원들의 판단기준은 대부분 오너들의 이해관계를 우선시한다는게 문제다. 정치적 힘겨룸은 임원들끼리는 피할 수 없는 생존게임이다. 어떤 종류의 능력이건 끊임없이 보여주고 증명해야 하니까. 드라마속에서야 한없이 권력만 누리며 하는 일 없어 보이는 임원들이지만 그들 역시 상대적으로 지위가 높을뿐 회사 입장에서는 직원들보다 해고하기가 더 수월한 계약직일 뿐이다. 그것도 충성도가 대단히 높은.

 

 

내가 겪어본 대다수 임원들은 늘 긴장하며 회사를 지키는 물리적 시간만큼은 직원들을 압도한다. 덕분에 부하직원들까지 매이는 부작용이 크지만. 이것저것 고민할 사안이 많아서 스트레스 지수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래서 항상 눈이 충혈되어 있고 피곤에 절어 있다. 드라마속 한상무처럼 럭셔리한 모습은 공식석상용일 뿐이다. 한때 매우 싫어했던 임원 한분이 과로로 젊은 나이에 사망한 일이 있었다. 그의 죽음은 다른 임원들을 잠시 긴장시켰지만 조금의 시간이 흐른 후 그들은 다시 생존경쟁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오직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단 하나뿐인 것처럼.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지만 영원한 직장인은 없다

 

글을 써놓고 보니 괜히 직장인들의 우울지수만 더 키운것 같아 미안한 생각이 든다. 드라마를 즐기되 한번쯤은 직장인 이후의 삶에 대해, 타의에 의하거나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몰려서 하게 되는 상황 이전에 자신의 주도적인 선택으로 삶의 전환을 꾀할 수 있도록 자기다운 삶에 대해 꾸준히 생각하고 준비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4년전 마흔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새로운 인생으로 무턱대고 뛰어 들었던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