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토피아

롱런할 가능성이 농후한 '국가대표'

재능세공사 2009. 8. 2. 18:08

국내 스포츠영화의 신기원을 연 '국가대표'

 

천만관객의 시대가 열리고 국제영화제에서도 곧잘 인정받을만큼 성장한 한국영화지만 아직까지 스포츠영화 장르에서만큼은 자랑스레 내놓을 만한 작품이 없었던게 사실이다. '공포의 외인구단', '슈퍼스타 감사용', '우생순' 정도가 우리 기억속에 그런대로 봐줄만한 작품이지 않았나 싶다. 그런 맥락에서 최근 개봉된 '국가대표'는 별로 탐탁치 않은 제목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한국 스포츠영화의 대표작으로 군림하게 될 공산이 커 보인다.

 

 

 

비인기 종목이라는 수식어조차 민망할 정도의 무관심 종목 '스키점프'를 소재로 삼은 김용화 감독의 기획은 대단히 훌륭한 선택이었다. 이전에 나온 실화를 바탕으로 한 스포츠영화들의 영화적 한계(아무리 세부적인 부분에서 각색을 한다 해도 중요한 영화적 결론이 이미 노출되어 영화적 흥미를 떨어뜨린다는 점)에서 '국가대표'는 자유로울 뿐만 아니라 역설적인 궁금증과 묘미를 불러 일으키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화를 보는 내내 영화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어느 정도가 사실이고 각색인지 전혀 분간할 수 없는탓에 관객들의 긴장감과 몰입도는 계속 유지됐고 영화관람후에 꼭 사실확인을 해보겠다는 의지를 다지게 만들 정도였다. 네이버 검색을 해보면서 필자외에도 꽤 많은 관객들이 동일한 행동에 나서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앞으로 이 영화를 보게될 대부분의 관객들도 이런 검색행렬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리라..^^

 

 

위에서 언급한 구조적 장점과 더불어 영화 '국가대표'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나가노 동계올림픽 경기장면의 실감나고 생명력 넘치는 연출은 앞으로 국내 스포츠영화의 교본으로 칭해도 좋을만큼 훌륭하다.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는 네명의 2회에 걸친 스키점프 장면이 이렇게도 다양하게 변주되어 보여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할 따름이다. 어떤 부분에서 CG를 사용했는지 전혀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러운 경기장면은 CG티가 물씬 풍겨나는 해운대와 확실하게 비교되며 영화속에서의 성공적인 CG활용의 모범사례로 불리울만 하다.

 

 

감독 김용화의 성장과 내공을 확인하다

 

감독으로서의 김용화를 알린 첫번째 영화 '오 브라더스'에서 적절한 선에서 웃음과 감동코드를 대중적으로 소화해 낼 수 있는 역량을 보여주었고 '미녀는 괴로워'를 통해 한층 더 세련된 연출력을 선보였던 그였지만 3연타석 흥행에 대한 부담은 꽤 있었을 것이다. 이번 작품의 기획에서 제작까지 3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된 것은 그런 측면에서 자연스럽다.

 

 

영화를 보기전 접했던 '국가대표'에 대한 몇몇 리뷰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상투적이라거나 억지스럽고 과도한 감동강요라는 지적에는 개인적으로 동의하기 어렵다. 김용화가 풀어가는 스토리텔링이나 연출은 큰 줄기에서는 그런 오해를 받을 수 있을지 몰라도 조금만 들여다 보면 이야기 얼개를 촘촘하게 만들고 활용하는 능력이나 관객들의 감정몰입을 이끌어 내고 건드려 주는 탁월한 타이밍 포착능력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후반부에서 다소 위태롭게 느낄만한 아슬아슬한 연출이 존재하긴 하지만 작품 전체의 질을 크게 좌우할만한 약점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스포츠 영화에서 대다수 관객들이 기대하는 상투적인 감동에만 치중하지 않는다면 이 영화가 가진 다양한 매력을 조금 더 깊이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까지 어느 정도까지가 각색인지는 모르겠으나 영화적 재미측면에서 나가노 동계올림픽 경기의 진행과정은 각본가 김용화의 내공을 실감하게 만들어 준다.

 

 

배우들의 힘, 그리고 진정한 주연 성동일

 

'국가대표'의 캐스팅은 거의 만점에 가깝다. 흥행코드로서의 하정우 영입보다는 성동일에게 투톱급 비중을 부여한 것이 인상적이다. 오프닝 크레딧에서 성동일의 이름이 두번째로 올라올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영화를 다보고 나서야 공감할 수 있었을만큼 그에게 덧씌워진 조역전문배우의 이미지나 영화 '미녀는 괴로워'의 흥행에 일조한 보은성 캐스팅이라는 못된 예단이 작용하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성동일이 영화 포스터에서 제외된 것은 서글픈 현실이다.

 

 

하정우의 배역에 다른 배우를 대입시켜도 큰 무리가 없지만 방코치는 오직 그만이 가능하다는 말로 이 영화에서의 그의 비중을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웃음제조기이자 이야기전개의 핵으로 영화시작에서 끝까지 종횡무진하는 성동일은 이 영화의 진정한 주연으로 불리울 자격이 충분하다. 비중으로야 코믹연기가 주를 이루지만 그의 진지한 연기를 맛볼 수 있는 것 또한 이 영화의 특별한 재미가 아닐까 싶다.

 

 

가장 인지도가 높고 최근 잘나가고 있는 배우 하정우의 연기는 무난하다. 그의 연기보다 더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부분은 배역상의 특성에 기인한 영어대사 소화능력이다. 영어가 짧은 필자지만 그가 꽤 자연스럽게 영어를 구사하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고 우리나라 배우들이 적어도 영화속의 배역에서만큼은 최대한의 싱크로율을 보여주기 위해 애쓰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어서 흐뭇했다. 과거 공동경비구역 JSA의 이영애, 친절한 금자씨에서의 최민식, 블러드의 전지현 등의 영어구사와 한번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듯 싶다.

 

강칠구역의 김지석, 최흥철역의 김동욱 역시 제 몫을 다했는데 같이 영화를 본 루나님의 지적대로 김지석의 대사는 비중에 비해 매우 적은 편이다. 캐릭터의 특성을 충분히 반영한 적절한 선택이기도 했고 개인적으로 이점이 극중 강칠구의 상대적인 매력을 더 돋보이게 만들지 않았나 싶다. (영화관람후에 있었던 무대인사에서 직접 본 김지석은 예상보다 훨씬 더 매력적인 배우였다)

 

 

 

강봉구역의 이재응(그전까지 이 배우는 여러 영화에서 인상적인 연기로 기억하고 있었지만 본명은 처음 알게 되었다)의 활약은 기대 이상이다. 여러차례 성동일과 환상의 호흡을 보여줄뿐만 아니라 까메오로 등장한 김수로와의 장면은 여러 관객의 배꼽을 부여잡게 만든다. 역시 무대인사에 동석한 실제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왜소해서 실제나이와 상관없이 당분간 여러 영화에서 아역으로 계속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마재복역의 최재환은 가장 존재감이 약하다. 베바의 하이든과 미녀는 괴로워 이한위와의 관계성이 그나마 그의 존재감을 유지시켜 주지 않았나 싶을 정도다. 하이든과 이한위 역시 이 영화에서는 그들만의 연기포스에 비해 밋밋한 배역에 그쳤고 개성있는 얼굴의 이은성은 살짝 가능성을 보여준다. 하정우의 실제 아버지 김용건은 '미녀의 괴로워'의 캐릭터를 그대로 따왔다고 해도 믿을만큼 비슷한 역할로 힘을 보탠다.

 

 

사실 이 영화의 비밀병기는 캐스터역할의 아나운서 김성주와 골때리는 해설자역을 맡은 조준이다. 두 사람은 영화의 하이라이트 부분에서 실감나는 중계능력과 비인기 종목의 해설자가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방송인답지 못한 감정만빵의 해설로 현장성과 영화적 재미 모두를 충족시켜 준다. 여러가지 소리에 묻혀 살며시 흘러나오는 해설자의 감칠맛 나는 대사의 향연을 꼭 주목해서 챙겨보길 바란다..^^

 

 

완성도와 흥행성적의 함수, 국가대표 VS 해운대

 

해운대의 흥행질주가 예상보다 거세다. 가배얍게 400만 고지를 점령했다는데 개봉관수(확대개관으로 800여개)를 보면 놀랄 일도 아니다. 이미 해운대의 품질을 검증한 나로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국가대표의 개봉시점이 해운대보다 빨랐다면 양상이 좀 달라졌을거라고 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국가대표'는 최소한 500만 정도의 흥행이 가능한 완성도를 가졌다고 판단한다. 해운대의 선점이 없었다면 훨씬 더 선전했을게 틀림없다.

 

입소문에서만큼은 해운대에 뒤질 이유가 없다고 보는데 문제는 이미 해운대의 흥행이 탄력을 받아 버렸기 때문에 극장주 입장에서 국가대표의 입소문만으로 개봉관수를 조정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다만 전체 흥행성적과 상관없이 '국가대표'가 더 오랫동안 관객의 사랑을 받을 것으로 예상한다. 특히 해운대의 개봉관수가 점차 줄어들고 다른 신규영화들이 개봉하는 시점에서 '국가대표'의 상대적인 선전이 이어질 것으로 기대한다. 누군가 나에게 두 영화 중 무엇을 봐야 하냐고 묻는다면 얄짤없이 '국가대표'의 손을 들어줄란다.

 

 

비하인드 스토리 몇가지

 

CG가 동원되었다고 해도 어느 정도 실제 점프 연기가 필요했을텐데 과연 배우들이 직접 스턴트급 연기를 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있었는데 역시 실제 국가대표 선수들이 대역을 해주었다고 한다. 나중에 확인한 사실이지만 몇몇 선수들은 영화속에서 까메오로 출연하기도 했다고 하고. 사진으로 확인하시라..^^

 

 

극중 인물의 이름 중 강칠구, 최흥철 등은 실제 대표선수들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했다. 이외에도 김현기, 최용직 선수가 국가대표로 활동하고 있고 각종 국제대회에서 놀라운 성적을 거두어 실제로 군대가 면제됐다고 한다. 그런데 현역으로 등록되어 있는 선수 다섯명중에서 출전엔트리가 네명이기 때문에 몇살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연장자가 어쩔 수 없이 코치가 되어 군면제 혜택을 못받았다고 한다.

 

 

분명한건 앞으로 다가올 동계 올림픽에서 스키점프 종목에 대한 관심과 시청률이 확실하게 올라갈 것이라는 점이다. 그들이 조금 더 안정적인 후원과 지원속에서 선수로 활동할 수 있게 되고 국민들의 응원속에 좋은 성적을 거두게 된다면 영화 제작진과 관객들 모두 현실속에서의 해피엔딩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 스키점프 국가대표 선수들 화이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