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토피아

독배를 마시고도 만세 부르는 한나라당

재능세공사 2009. 7. 23. 15:46

끝내 독배를 마셔버린 한나라당

 

설마 설마했는데 결국 깨끗이 마셔버렸다. 그들에게는 국민 대다수의 반대도, 야당의 필사적인 저항도 전혀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후폭풍이니 여론역풍이니 하는 것들은 안중에도 없었으며 오직 자신들의 현실적인 힘을 과시했다는 사실만으로 포만감이 가득한 채 만세를 부른다. 말 그대로 이래저래 부담스러웠던 골치꺼리 숙제를 끝낸 원초적인 홀가분함만이 그들의 표정에서 읽혀진다.

 

물론 겉으로야 표정관리를 하고 있지만 자신들은 할만큼 했다는 자기합리화에 빠져 있을 것이다. 훨씬 이전에 해치웠을 수도 있었지만 두번이나 여론을 의식해 늦춰왔고 야당과의 협상도 전혀 하고 싶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꽤 오랫동안 상대를 해줬으며 법안내용도 대세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범위내에서 수정하는 척 해왔으니 말이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그들이 아무리 뻔뻔스러운 집단이라고 해도 그동안 최소한이나마 의식해 왔던 국민여론에 대해서 이제 더이상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어차피 자신들이 어떠한 행동을 하건 좋은 소리를 못들을게 뻔한 상황에서 자신들의 현실적 권력기반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일단 저지르고 보는게 낫다고 결론내린 것이 틀림없다.

 

승리감에 도취되어 있는 그들의 미래는 정말 장미빛으로 가득할까. 당장이야 야당, 시민단체, 국민들이 이들의 막가파식 행보에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용감하게 마셔버린 독배의 효과는 서서히 지속적으로 철저하게 그들을 심판할 것이다. 우선 그간 여러가지 이유로 균열을 일으켰던 민주개혁세력의 결속력을 공고히 해줄 것이고 상식과 원칙 수준에서 진행되어 오던 국민들의 저항강도를 급격히 올려놓게 될 것이다.

 

 

 

만천하에 본색을 드러낸 국회의장과 박근혜

 

이번 미디어법 날치기 처리를 주도하고 직접적으로 가담한 주역들에 대해서야 더 할 말이 없지만 상식과 양심의 이름으로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지켜봤던 김형오 국회의장과 박근혜의 본색에 대해서는 두고두고 기억해 두어야 한다. 탄핵안 가결에 앞장섰던 한나라당 출신 국회의장 박관용에 이어 김형오 국회의장의 예정된 날치기 가담은 비겁하고 무책임하기까지 했다.

 

야당의 진입저지속에 이윤성 국회부의장에게 사회권을 넘긴 그의 심경은 어땠을까. 이 부끄러운 역사에 직접 나서지 않게 된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그가 그토록 강조했던 국회의장을 핫바지로 만든 이들에게 직접 의장의 강단을 보여주지 못해 아쉬워하고 있지는 않을까. 애초부터 그는 합리적이고 불편부당한 중재자로서의 국회의장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음을 이번 사태를 통해서 스스로 확실히 증명한 셈이다.

 

압도적 다수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이 4대 개혁입법을 추진하던 시절 여당출신 김원기 국회의장은 미디어법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국민여론이 팽팽했던 사안에 대해서조차 끝내 직권상정을 거부함으로써 당시 개혁입법 관철을 염원하던 많은 지지자들에게 역사의 죄인이라는 비난과 함께 엄청난 돌팔매를 맞았었다. 4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지금 같은 상황에서 정반대의 선택을 한 두 사람을 우리는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이제 듣기에도 지겨운 차기대권 지지도 1위 박근혜는 또 어떤가. 한번도 책임지는 정치를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매번 여야간 첨예한 대립이 일어날때마다 기가막힌 타이밍에 모호한 말을 흘리며 양쪽 모두에게 존재감을 과시하며 국민들 입장에서는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가지게 했다가 정치적 이득만을 취한 채 다시 팔짱끼고 물러서기를 반복했던 이 불가사의한 여성 정치인은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혼자 젊잖고 합리적인 척은 다 해놓고 결과적으로 한나라당의 작태에 고매한 말을 늘어놓으며 슬그머니 눈을 감는다. 날치기가 있기 전 미디어토씨에서 포스팅했던 '시험대에 오른 박근혜의 진심과 좌표'는 너무나도 허망한 희망이었음이 밝혀진 것이다. 예상컨대 그는 대선 이전까지 자신의 정치적 이해와 연관되지 않는 어떤 이슈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이지 않을 것이고 조금이라도 연관된 사안에 대해서는 지금까지와 같은 정치쇼를 얼굴 한번 변하지 않고 계속 보여줄 것이다. 

 

 

 

계륵이 될 것인가? 구심점이 될 것인가?

 

민주당의 진정성은 아직 시험대 위에 올라 있다. 이번 미디어법 통과저지에 그들이 최선을 다했음을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도 아직도 MB정권에 대한 심판을 위한 구심점으로 삼기에는 미덥지 못한 구석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민주당의 투쟁방식은 그간 야당이 취해 왔던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상임위와 본회의장에 대한 물리적 점거나 대표의 단식농성만으로 폭주기관차가 되어버린지 오래인 한나라당의 질주를 막을 수 없었다는걸 그들은 정말 몰랐을까.

 

국회의장의 양심과 여당속의 야당이라는 허울좋은 명분에 쌓인채 정치쇼를 벌인 박근혜의 입에 부질없는 기대를 걸어왔던 민주당에게 실패는 예정되어 있었다. 명분쌓기용 협상임을 뻔히 알면서도 매번 질질 끌려간 것 또한 되풀이 되는 실수다. 날치기 처리 직전 나왔던 '의원직 총사퇴' 카드가 조금 더 일찍 선언되고 실행되었다면 같은 결과라 하더라도 정국주도권이나 미디어법 날치기 처리의 부당성과 위험성을 국민들에게 조금 더 강력하게 각인시키는데 분명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날치기 처리 이후의 행보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단지 법안처리의 효력을 가지고 싸우는 형태로 진행된다면 역시 한나라당의 날치기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아직도 많은 국민들은 이번 날치기 처리의 부당성과 위험성을 인지하기 보다는 일상적인 정쟁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기 때문에 이를 제대로 알리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내던져야 한다.

 

대표와 원내대표의 '의원직 사퇴' 정도로는 반향을 얻을 수 없다. 민주당 전원의 '의원직 총사퇴'를 결행함으로써 지금의 국회가 한나라당의 원맨쇼의 장임을 분명히 알려주어야 한다. 미디어법이 날치기로 통과된 이상 그들이 이후 그 이상의 어떤 악법을 처리한다 해도 정상적인 입법행위가 아님을 가장 확실하게 국민들에게 알려주고 이 정권 들어서 이루어진 반역사적이고 퇴행적인 모든 정치행위를 무효로 만드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최악의 경우, 앞으로 예정된 어떤 종류의 정치일정(9월 정기국회, 10월 재보궐 선거 등)도 전면 보이콧해야 한다. 합법적인 테두리안에서 제대로된 견제가 전혀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에서 한나라당에게 형식적 합법성을 계속 보장해 주기 보다는 그들만의 리그(자유선진당, 친박연대 포함)에서 정치적 파트너 없이 지들 맘대로 설치게 놔두는게 낫다. 국회의석수 모두가 한나라당으로 채워져도 할 수 없다. 어차피 그들이 새롭게 얻어낼 권력은 정당성이 없을테니까 말이다.

 

이 정도 각오를 하지 않고서는 지금의 참혹한 민주주의 위기를 막아낼 수 없다. 민주당이 이런 자세로 나선다면 지금까지 이 정권의 비민주적 작태에 분노하는 모든 국민과 민노당, 진보신당, 창조한국당 역시 하나로 뭉쳐 한나라당과 MB정권 심판에 나서게 될 것이다. 어중간한 정치권의 계륵으로 남을지, 민주주의 수호에 앞장서는 구심점이 될지는 민주당의 향후 선택에 달려 있다. 부디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정당으로 다시 태어나길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간절히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