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토피아

정치유배자 유시민의 선택은?

재능세공사 2009. 6. 22. 20:51

인생의 갈림길에 선 유시민

 

노 전대통령 서거 이후 가장 주목받고 있는 정치인이 '유시민'이라는 사실에 대해 이견을 달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분향소를 지키며 그가 쏟아낸 눈물과 친필 메시지가 언론의 주목을 받고 그가 출간한 책들이 노 전대통령 관련서적과 함께 베스트셀러가 되고 각종 주요 여론조사에서 그의 지지도는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과연 당사자인 유시민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보통의 정치인들이라면 누구나 두팔 벌려 환영할 만한 이러한 현상이 천상 자유주의자인 유시민으로서는 매우 무겁고 부담스러운 딜레마를 안겨주고 있지 않을까. 엄혹한 현재의 정치상황에서 새로운 대안을 갈구하는 국민들의 기대를 느끼면서도 그가 거의 모든 면에서 존경하고 따랐던 삶의 구루 노 전대통령의 서거가 의미하는 사회적, 역사적 무게감이 그를 짓누르고 있을 것이다. 최근에 있었던 한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의 향후 정치행로에 대해 궁금해 하는 이들에게 '무겁게 고민중'인 속내를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김혜리)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의지와는 관계없이 어깨에 짐이 얹히는 기분이 있을 것 같습니다. 안희정 최고위원, 문재인 비서실장, 이광재 의원 등 노 대통령과 가까웠던 측근이 여러 분 있지만 대중적 인지도도 높고 노 대통령의 정치철학을 잇는 면에서 많은 사람이 (유시민) 선생님을 급격히 주목하고 있으니까요.

 

(유시민) 제가 선택할 문제죠. (사이) 더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상중에 거리에서 마주친 시민들, 서울역에서 버스를 타고 지나갈 때 창밖에 보이는 시민들이 건넨 말들은 있죠. 정치인들이 그런 데 혹하기 쉬워요. 하지만 그렇게 의사결정을 할 수는 없어요. 제 인생도 있고 제가 속해 있는 공동체의 여러 상황도 함께 고려하는 거죠. 또한 노무현 대통령이 우리에게 어떤 존재였나 그분의 시대가 끝난 것인가, 노무현의 시대가 있었다면 시대정신은 뭐였나, 그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는 어떤 뜻이 있나, 그 모든 것을 국민은 어떻게 생각하나를 더 고민해봐야 합니다.  - 씨네 21 인터뷰 중에서 -  

 

 

정치유배자 유시민의 선택은?

 

유시민 전 장관은 그의 최근 저서 '후불제 민주주의'에서 스스로를 정치유배 상태에 있다고 정의했다.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참여정부와 더불어 정치적 유배를 명 받아 잠시 리버럴리스트 유시민으로 돌아가 지식소매상으로서의 역할에 전념하고 있는 것이다. 유시민 지지자로서 나는 현재 상태에 대한 그의 인식에 어느 정도 공감을 표하면서도 엄밀한 의미에서는 국민들의 생각과는 별도로 향후 자신의 삶에서 정치인으로서의 소명과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의구심을 내포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벌써부터 주요 언론들은 정치유배자 유시민을 중앙무대로 자기들 맘대로 끌어올려 이리저리 근거없는 전망을 쏟아내고 있으며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신당창당에서부터 민주당과의 전략적 제휴, 지방선거 출마 등의 구체적인 정치복귀 및 대응 시나리오가 거론된다. 내가 그의 선택에 주목하는 지점은 조금 더 근본적인데 있다. 그가 정치를 계속해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있을까? 또는 정치인 유시민에게 역설적으로 가장 부족했던 권력의지를 그가 가지게 될까? 하는 질문 말이다.

 

동시에 지지자의 관점에서 내가 선택한 정치리더 유시민에게 요구하고 싶은 공적인 기대감과 자유로운 삶을 꿈꾸는 지식소매상 유시민 개인의 소박한 행복을 위해서 조언하고 싶은 개인적인 바람사이에서 느끼는 커다란 간격을 어찌할지 고민스럽다. 어느 쪽에 비중을 두고 그에게 내 기대를 표출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얘기다. 잠정적 결론은 있는 그대로 나의 심정을 솔직하게 피력하겠지만 그가 향후 어떤 선택을 하든지 상관없이 그의 선택을 존중하고 응원하겠다는 것이다.

 

 

'자기다움'과 '정치적 소명' 사이에서

 

역시 위에서 인용했던 같은 인터뷰 내용 중 지식소매상 유시민의 행복과 정치인으로서의 소명에 대한 고민을 읽어볼 수 있는 대목을 우선 잠깐 살펴보자. 

 

김혜리) 언젠가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쓰고 싶은 글을 쓰는 것은 누구에게도 크게 뒤지지 않는다고 쓰신 적이 있는데요. 독서와 글쓰기는 스트레스 없는 즐거운 활동인가요?

 

(유시민) 재주가 이것밖에는 없는 데 딴 일을 하려니 고달프죠. 그러나 책 쓰기는 제가 좋아하는 일이고 정치는 본질적으로 더욱 뜻 깊고 위대한 일이에요. 좋은 정치를 편다면 몇 천만 국민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으니 인간이 할 수 있는 일 중에 그만큼 고귀한 게 어딨겠어요? 그래서 다른 직업보다 고양된 심성과 통찰력, 책임, 용기, 희생을 요구해요. 성인의 고귀함이 있는 영역이죠.

 

근데, 정치인의 일상을 들여다보면 짐승의 비천함이 있어요. 야수적 탐욕도 함께 있고요. 그래서 하루하루가 너무나 괴로워요. 정치를 하려면 국회의원직을 유지해야 하니까 효도잔치 가서 노래하고 초등학교 총동문체육대회 가서 텐트마다 돌며 소주 먹고 하는 거죠. 그런 일을 즐기는 정치인도 있으나 그런 사람은 성인의 고귀함에 도달하기 어려워요. 반면 정치에서 고귀함을 추구하는 사람은 그런 일상이 괴로워요. 성인의 고귀함을 이루기 위해 야수적 탐욕을 상대하며 짐승 같은 비천함을 감수하는 일, 절대 아무나 못하는 거예요. - 씨네 21 인터뷰 중에서 -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 이상으로 정치인으로서의 삶이 얼마나 많은 자기희생을 필요로 하고 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정치가 더 많은 이들의 행복에 얼마만큼의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는듯 하다. 그가 꿈꾸는 사회는 명쾌하다. 위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고귀하고 뜻깊은 일에 대한 걱정없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소박한 행복을 저마다 누릴 수 있는 세상이다. 문제는 지금의 현실이 그 바람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는 것이고 유시민 혼자만 행복한 것으로는 부족하다는데 있다.

 

 

더불어 더 많은 이들이 함께 행복하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랬던 것처럼 상상할 수도 없는 고난과 자기희생이 예정된 가시밭길을 자처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의 뜻과 상관없이 그 자리를 자처하겠다고 외치는 정치인들은 셀 수도 없지만 진정성과 이타심, 용기와 의지, 경험과 능력, 한없이 낮은 자세로 임할 수 있는 자세 등에서 기대를 걸 수 있는 몇 안되는 정치인으로 그가 꼽히고 있다는 사실을 유시민은 쉽게 외면할 수 없다.

 

그는 이미 참여정부 출범부터 최근까지 개인적으로 꿈꾸는 삶을 한시적으로 포기하고 주권자의 명에 따라 국민의 공복으로 더 많은 이들의 행복을 위해 투신한 경험이 있다. 그러나 이런 활동속에서도 그는 이 소명을 더 잘 해낼 다른 사람이 나타나거나 그런 사회가 된다면 언제든지 소박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늘 품고 있었다. 그에게 권력이란 언제든지 국민의 뜻에 따라 놔주어야 할 한시적인 봉사기회였을테니까.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강춘배 시장이 강마에에게 비장한 어조로 말했던 대사가 기억난다. "선생님에게는 음악이 전부지요. 저에게는 정치가 그렇습니다. 저도 좀 살아야겠습니다" 아마도 많은 정치인들이 강춘배 시장의 말에 깊이 공감했을 것이다. 다만 여기서의 의미는 '좋은 정치에 대한 소명의식'과는 전혀 동떨어진 '정치권력이 주는 달콤함'에 가까운 것일 테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못다한 꿈을 이뤄낼 수 있을까?

 

현 시점에서 유시민이 정치를 포기하고 지식소매상 유시민 개인의 삶으로 돌아갈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본다. 유시민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는 뻔히 예상되는 가시밭길을 그가 선택하지 말고 좋아하는 책 원없이 읽고 자신이 느낀바를 글이나 강연을 통해 대중과 호흡하는 지식인의 삶을 살아갔으면 좋겠다. 그는 마음만 먹으면 그렇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능력과 자격을 이미 충분히 가진 사람이다. 누구도 그가 그런 길을 선택한다고 해서 이기적이라고 비난해서는 안되리라.

 

이런 개인적 바람과 상관없이 내가 아는 유시민은 자신에게 주어진 정치적 소명을 거부하지 못할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는 정치인 유시민이 희망하고 의식적으로 낙관했던 최소한의 상식마저도 통하지 않는 우리 정치의 현주소를 뼛속까지 실감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이제 그의 남은 고민은 다음의 몇 가지 질문으로 모아지지 않을까 싶다. 이 중요한 질문에 대한 충분한 숙고 후에야 유시민은 우리 곁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의 정치적 스승마저도 좌절시켰던 이 암울한 정치상황속에서 자신의 지혜와 능력으로 정말 희망을 만들어 낼 수 있는가? 자신은 그 어떤 자기희생에도 굴하지 않고 이 소명을 해낼 의지가 있는가? 그만큼 가치있는 일인가? 어떻게 하면 노 전 대통령이 목숨을 내던져 되살린 희망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고 함께 사는 세상으로 가는 길을 열 것인가? (이것이 유시민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이라면..)

 

노 전 대통령 서거를 추모했던 500만 이상의 국민들은 언제까지 지금의 정치적 각성을 유지한 채 주권자로서의 권리를 합리적으로 행사할 것인가? 시민들의 보이지 않는 각성을 실질적인 변화의 동력으로 삼기 위해서 제일 먼저 선행되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열악하다 못해 참담한 언론환경을 극복하고 진정성을 가진 정치세력과 국민들의 소통을 비약적으로 개선시킬 방법은 무엇인가? 큰 틀에서 쉽게 무시할 수 없는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 현실적 정치세력과의 관계는 어떻게 풀어 나갈 것인가? (이것은 현재의 정치상황에 대한 정확한 진단 및 집중해야 할 정치과제에 대한 질문이겠죠)

 

 

이기적인 지지자가 정치인 유시민에게..

 

당신이 정치유배를 끝내고 정치현장으로 공개적으로 돌아와 줄 날을 기대하며 지난해 대선출마 선언시 지지자들에게 약속받았던 내용을 다시 새겨봅니다. 당신을 지지하는 이유는 내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발전과 국민들의 행복을 위해서입니다. 정책과 비전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논쟁하겠지만 상대 정치세력에 대한 인신공격, 비난, 부정을 통해 국민의 지지를 얻으려 하지 않겠습니다. 더 긴 안목에서 당신이 선택하게 될 정치적 판단과 전략에 대해 생산적인 의견을 개진하고 아낌없는 신뢰를 보내겠습니다.

 

당신을 또 다른 구세주로 여겨 맹목적으로 지지하거나 모든 책임을 떠넘기지 않겠습니다. 우리들이 꿈꾸는 함께 사는 세상을 열기 위한 작지만 의미있는 행동에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시민주권자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다할 것입니다. 당신을 비롯한 기존 정치인들들에게 무조건 기대지 않고 같은 생각을 가진 이들을 모으는 노력을 통해 우리의 꿈을 실현할 새로운 정당의 토대를 착실히 만들어 가겠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질 정당에 진심으로 동의하는 당신을 포함한 정치인들이 당원으로 성실히 참여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 정당이 국민들의 각성된 정치의식을 표출하는 수단으로 자리매김할때까지 당신이 쌓아온 정치적 역량과 의사소통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나는 행복해지기를 원합니다. 누구나 자신의 의지대로 자기답게 살아가는 날을 꿈꿉니다. 또한 당신도 원래 꿈꾸던 자리로 가능한 빨리 돌아가 지식소매상으로서의 행복한 삶을 맘껏 누리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언제쯤 우리 모두가 바라는 세상이 올지는 지금 이 시점에서 확신할 순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같은 마음으로 같은 곳을 바라보며 함께 노력해갈 때 우리의 꿈은 조금 더 빨리 우리 곁으로 다가올 것이라 믿습니다.저와 같은 평범한 지지자가 상상할 수도 없는 시련과 고통이 당신의 선택에 따라 예정될 것을 알면서도 이런 기대감을 표출할 수 밖에 없음이 안타깝습니다. 부디 강건하고 지혜롭게 한발 한발 내딛으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