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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가지 버전의 '아내가 결혼했다'

재능세공사 2008. 9. 5. 16:12

'우결'의 성공이 낳은 발빠른 기획

 

며칠전 기사 하나를 읽었다. 기사제목에서 '아내가 결혼했다'라는 문구를 보고 몇년전 재미있게 읽었던 소설의 영화화 관련된 기사일꺼라 생각하며 클릭을 했는데 김주혁과 손예진이 보이질 않았다. 케이블 tvN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자칭 거대한 버라이어티 '180분'의 한 코너에 관한 기사였던 것이다.

 

연예인 부부 두쌍이 파트너를 바꾸어서 가상 결혼체험을 보여준다는 컨셉이란다. 주인공은 홍서범.조갑경 커플과 이세창.김지연 커플이고 메인 MC는 또 다른 연예인 커플의 한 사람인 박미선이다. 어떻게 이런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된 것일까? 출발점이야 우결의 성공이겠고 케이블 방송국답게 가장 자극적인 컨셉으로 방향을 잡은 셈이다.

 

 

발빠른 기획이긴 하지만 실제 부부를 파트너만 바꿔서 가상 부부로 만들겠다는 발상이 시청자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는 의문이다. 출연을 결정한 두 커플의 속내도 궁금하고 과연 제작진들이 어떻게 이 프로그램을 풀어나갈지 모르겠다. 아마도 흥미를 위해서 끊임없이 실제 남편과 아내를 두고 비교(인터뷰 코너를 중심으로)하는 장면이 연출될 것이다. 웬지 이세창.김지연 커플보다는 홍서범.조갑경 커플의 색다른 모습이 부각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부디 이 프로그램이 실제 배우자에 대한 불만꺼리를 주소재로 삼기 보다는 실제 배우자만이 가지고 있는 장점과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게 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으면 좋겠다. 서로가 원하는 완벽한 배우자 만들기보다는 서로의 자기다움을 존중하고 함께 호흡하기 위해 노력하는 부부상을 보여준다면 금상첨화가 아닐런지.

 

 

'아내가 결혼했다' 타이틀명에 대한 단상

 

엄밀히 말하면 아내만 결혼한게 아니라 남편들도 결혼한 셈이니 적절한 제목은 아닌듯 싶다. 분명 박현욱의 유명한 소설 '아내가 결혼했다'의 인지도(게다가 영화개봉까지 앞두고 있으니)를 의식한 결정이었을게다. 개봉예정인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 입장에서는 홍보 측면에서 플러스가 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개봉전 김빼기가 될 수도 있어 보인다. 토씨하나 틀리지 않는 이 제목을 가져다 쓰면서 원작자나 영화 관계자에게 사전협의가 있었을지 의문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소설 '아내와 결혼했다'에 대해 예전에 필자가 썼던 감상평을 옮겨놓는다. 무료한 일상에서 잠시 탈출하고 싶은 이들이라면 일독을 권하며, 책과 친하지 않는 분들은 영화로 감상해 보기를 권한다. 어쩌면 이 영화의 성공을 '180분-아내가 결혼했다' 제작진들이 가장 바라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말고..^^

 

 

동시에 두 여자를 혹은 두 남자를 사랑하는 것이 가능한가? 혹는 그래도 되는 것인가? 이런 의문을 한번쯤 떠올려본 적이 있었을 것이다. 무협지에 열광했던 원잭을 포함한 남정네들이라면 더더욱 그 환타지속의 영웅호색에 대한 부러움을 가슴 한구석에 담고 있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위의 질문에서 사랑이라는 단어를 결혼으로 대체해 보자. 더욱 심란하고 어려운 질문이 될 것이나 본질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이성적인 판단으로 상호합의하에 이른바 '폴리아모리'(비독점적 다자연애)가 진행된다 하더라도 그 이후에 파생되는 다양한 형태의 감정변화를 감당하고 이전의 합의를 과연 유지할 수 있을지 궁금할 뿐이다. 

 

바로 이 딜레마를 '아내가 결혼했다'는 정면으로 다룬다. 그것도 도저히 눈을 뗄 수 없는 가독성으로 무장한채 말이다. 이 소설의 화자는 아내가 '결혼'하는 것을 어쩔 수 없이 허락하고 지켜보고 겪어야 하는 '첫번째' 남편이고 그의 모든 느낌은 사실적이고 충분히 안쓰럽다. 아마도 대부분의 독자는 그의 편이 되어서 이 소설을 끝까지 읽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현실에서는 웬만한 강심장으로 세상과의 철저한 유리를 감수하지 않고서는 시도하기 불가능한 이 딜레마를 간접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어 보인다. 화자인 첫번째 남편이 되어 보기도 하고, 그 보다는 더욱 의연하게 중혼을 받아들이는 가해자틱한 두번째 남편으로 살아보다가 마지막으로 이 모든 원인과 결과를 주도하는 매우 탁월한 조율능력과 매력을 지닌 아내로서 두 남편을 단도리 하는 경험을 할 수 있을터이니 말이다.

 

원잭은 궁금하다. 다른 이들은 이 경험을 통해 어떤 느낌과 단상을 갖게될런지. 사랑과 결혼에 대한 좀 더 폭넓고 새로운 사고를 해보고 싶다면 일독을 권하고 싶다. 결코 심심하거나 지나치게 고민스럽게 만들지 않는 재미있고 의미있는 축구 이야기가 보너스로 매우 오밀조밀하게 담겨져 있으니 후회는 없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