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토피아

오바마-힐러리 vs 이명박-박근혜

재능세공사 2008. 8. 27. 14:04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미국 대선 

 

올해 있을 미국 대선은 여러가지 관점에서 흥미롭다. 우선 생각나는대로 몇 가지 나열해 보자. 첫째, 최초의 흑인대통령이 탄생할 수 있는가? 둘째, 흑백으로 구성된 러닝메이트를 볼 수 있을까?(이미 민주당은 유력해 보였던 힐러리 부통령 지명이 사라졌지만 공화당의 파월지명 변수가 남아 있다), 부시정권에 대한 미국민의 심판은 이루어질까? 선거결과에 따라 (특히 민주당의 정권탈환시) 미국의 대외정책(핵문제나 이라크문제 대응) 기조는 변할까?

 

위에서 언급한 관점포인트는 미국뿐만 아니라 모든 국가들에게도 해당되는 것들이겠지만 한가지 더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징크스가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부터 이어진 한국과 미국 대통령의 보수-진보 엇박자 집권이다(김영삼-클린턴, 김대중-조지부시, 노무현-조지부시, 이명박-???)

 

 

적어도 현재까지는 이번 미국 대선의 흐름에서도 이런 엇박자 집권이 계속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지난 두번의 부시 연임 기간동안 쓴 맛을 제대로 본 미국민들의 반발심리가 매우 크고, 선진국 대선에서 10년 주기로 정권교체가 빈번한 공통적인 흐름과 유력한 경쟁자 힐러리를 격전끝에 물리치고 급부상한 젊은 흑인후보 오바마의 인기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최근 보도에 의하면 매케인과의 지지율 격차가 현저히 줄어들었다는 소식도 있지만)

 

가끔 이런 의문을 가진다. 한미 양국의 대통령 코드가 어느 쪽으로든 일치했다면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하는. 특히 한미양국에서 보수정권의 동반집권이 지난 12년동안 한번이라도 있었다면 한반도 정세는 어떻게 변했을지 생각해 보면 모골이 송연해진다. 그래서 이명박의 집권이 현실화되고 6개월만에 그 선택의 댓가를 뼈저리게 겪고 있는 우리들에게 미국 대선의 향배는 단지 남의 나라 얘기로 치부하기에는 그 무게감이 적지 않다.  

 

 

오바마-힐러리 갈등에서 이명박-박근혜를 떠올리다

 

한때 매케인을 15% 차이까지 따돌렸던 오바마의 지지율은 위기를 맞고 있다. 공화당으로 대표되는 보수지지층의 결집에 의한 것이기도 하지만 경선라이벌 힐러리와의 여전한 갈등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오바마-힐러리 진영의 갈등은 자연스럽게 작년 한나라당 경선과정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여러차례 공개적인 갈등을 일으켰던 이명박과 박근혜를 떠올리게 한다.

 

 

 

먼저 두 진영간의 공통점을 살펴 보자. 우선 눈에 띄는 것은 한미 양국을 대표하는 거물급 여성 정치인들이다. 힐러리와 박근혜는 클린턴과 박정희라는 역대 대통령의 후광을 통해 막강한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정치인으로 성장했다는 점에서도 닮아 있고 둘 다 선전했지만 남성 후보들에게 아쉽게 패배했고 경선 이후에도 여전히 대선의 주요변수가 되고 있다는 점도 같다.

 

오바마와 이명박은 두번의 정권교체 실패를 딛고 세번째 도전하는 야당 후보라는 점과 적어도 대선 본선 통과를 위해서는 치열한 경쟁으로 감정적 앙금이 남아 있는 두 여성 후보를 감싸 안고 가야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한마디로 집권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적과의 동침을 선택해야 하는 동변상련의 처지에 빠져 있는 셈이다.

 

 

 

두 진영이 위의 표면적인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다른 점도 많다. 우선 진보와 보수라는 점에서 다르다. 이는 곧 오바마의 집권시 이명박 정부의 미국에 대한 변함없는 충성에도 불구하고 전임 부시가 시늉이라도 냈던 보은성 달래기 행보는 더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물론 민주당의 미국도 부시만큼이나 철저하게 자국이익 우선의 대한정책을 취할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말이다. 

 

또한 오바마는 대선후보로 당선된 이후 예상을 깨고 공개적으로 힐러리를 러닝메이트로 지명하지 않을 것임을 일관되게 표명하며 자기만의 소신을 관철한 반면에 이명박은 대선 당일까지 박근혜를 포용하는 시늉을 하다가 총선공천에서 노골적인 박근혜 퇴출을 시도했고 결과적으로 실패하자 아무일도 없엇던 것처럼 조용히 친박연대 인사들을 당으로 다시 불러들이는 촌극을 벌였다는 점에서 극명하게 대비된다. 

 

 

오바마는 왜 힐러리를 부통령으로 지명하지 않았을까?

 

야당후보와의 압도적인 지지율 차이에도 불구하고 도덕적인 흠집으로 대선 당일까지 이유있는(?) 고초를 겪으며 박근혜의 행보에 끝까지 목을 맸던 이명박과 달리 오바마는 그의 여러가지 약점을 상쇄시켜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던 힐러리를 러닝메이트 지명후보에서도 제외하는 관전자 입장에서 보면 파격적인 결정을 내렸다.

 

도대체 오바마는 왜 그런 결정을 했을까? 경선과정에서 쌓인 힐러리 진영과의 감정적 앙금때문이라고 단순하게 해석하기에는 섞연치 않은 점이 많다.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변화'와 '개혁을 내세운 오바마의 집권철학으로 비추어 볼 때 힐러리 후보는 민주당내에서 가장 보수적인 시각을 가진 기득권 세력의 대변자라는 판단을 했던 것은 아닐까?

 

 

실제로 힐러리는 상원의원 시절 의료보험 개혁을 여러번 역설하고 추진했지만 강력한 로비집단인 민간 의료보험사의 압력으로 여러번 후퇴한 전력이 있다. 또한 부시의 테러대응책에 대한 힐러리의 상대적으로 유화적인 평가와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경선과정에서 오바마의 이라크전 반대에 대해 '동화와 같은 정책'이라는 혹평한 사실도 오바마를 껄끄럽게 하지 않았을까 싶다.

 

한 언론은 부통령 지명을 꺼린 이유로 집권시 힐러리 부통령이 이전 부통령들과는 현저히 다른 정치적 위상과 영향력을 유지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는 관측을 하기도 한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영향력까지 감안된 그럴싸한 음모론 중의 하나인 셈이다. 

 

 

 

이유야 어찌되었던 오바마는 그루지야 사태로 급부상한 외교안보 이슈를 감안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바이든 위원장을 러닝메이트로 지명했다. 그의 이번 선택이 과연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확신할 순 없지만 힐러리의 적지 않은 영향력을 감안할 때 플러스 요인이 아닌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이런 점에서 오바마의 선택은 현실과의 타협이 아니라 소신에 따른 셈인데 앞으로 남은 본선에서 그가 어떤 행보로 이번 선택의 현실적 불리를 극복해 낼지 궁금할 따름이다.

 

 

 

 

오바마의 승리를 기대하는 이유

 

오바마의 승리는 쉽지 않을 것이다. 두번이나 부시를 선택했던 보수적인 미국인들이 9.11 테러의 악몽에 기인한 막연한 두려움과 인종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고 흑인 대통령 후보 오바마(그것도 러닝메이트가 힐러리가 아닌)에게 미국의 운명을 맡길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단지 부시정권에 대한 실망과 비판에 대한 반사이익만으로는 대선승리가 보장되지 않음을 오바마 진영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민주당 대선후보로 지명된 이후부터 오바마에 대한 네거티브 캠페인은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고 있고 매케인과의 지지율은 현격히 줄어들고 있다. 심지어 오바마를 저격하려던 일당 4명이 콜로라도주 경찰에 긴급 체포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보도에 따르면 체포 당시 백인우월주의 그룹의 일원으로 추정되는 이들은 망원경이 달린 고성능 라이플 2정과 방탄조끼, 마약 등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오바마가 넘어야 할 장애물은 많다. 미국민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민주당의 정치인들이 모두 발벗고 나서는 이유는 단지 오바마 개인을 위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그들은 미국을 망쳐온 모든 것들로부터 과감히 벗어나자는 민주당의 캐치 프레이즈 '새로운 미래를 위한 희망, 변화, 통합'의 길을 '흑인대통령 후보 오바마의 당선'이라는 상징적인 결과로 추인받고 싶은 것이다.

 

2002년 노무현 대통령 당선의 가장 큰 의미로 여러가지 면에서 비주류 출신일 수 밖에 없는 정치인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전례를 남겼다는 점을 꼽은 기억이 난다. 여전히 인종차별이라는 우울한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미국에서 최초의 흑인대통령 당선이 현실화되어 초법적인 대외정책의 합리적인 변화는 물론 미국사회가 정치적, 역사적, 사회적으로 진정한 통합을 향한 의미있는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