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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초가 앗아간 우생순 신화 - 노르웨이전

재능세공사 2008. 8. 21. 22:28

마지막 1분간 세골의 기적

 

종료 1분여를 남겨두고 스코어가 세골차로 벌어졌을 때, 자연스럽게 '끝났구나'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임오경 해설위원이 목이 메인 목소리로 1분동안 세골도 넣을 수 있다는 멘트를 하며 기적에 가까운 희망을 피력했지만 그저 희망사항에 불과하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그때부터 믿기 힘든 광경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노르웨이가 쐐기골을 넣을 수 있는 기회를 오버스탭으로 날리자마자 안정화가 한골을 추격하면서 그토록 냉혈한 같이 보이던 젊은 노르웨이 선수들이 미친듯이 에러를 범하기 시작했다. 허순영의 그림같은 중앙공격으로 1골차 추격. 남은 시간은 35초. 아 이때부터 심박수가 미친듯이 뛰기 시작했다.

 

다시 냉정을 찾은 노르웨이가 최대한 시간을 벌다가 슛을 날렸고 기적처럼 골키퍼와 골대를 맞고 튀어나온다. 남은 시간 14초. 문필희에게 연결된 볼 그리고 침착한 드리블에 의한 러닝 점프슛이 터진 시간은 정말 기적처럼 종료 4초전.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함께 보던 아내와 얼싸안으며 강강수월래 만세를 부르고 있는데 믿어지지 않는 장면이 들어왔다. 그 찰나지간에 노르웨이 장신공격수가 이상한 폼으로 날린 슛이 골망을 흔들고 있는 것이다.

 

 

0.1초가 앗아간 우생순 신화

 

시간을 감안하면 도저히 가능한 일이 아니었기에 노카운트라고 믿었다. 중계진도 노 카운트를 동시에 외치고 있었고 임영철 감독의 '무효'라는 외침에 본부석에 판정관인 듯한 사람이 고개를 계속 끄덕이길래 연장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분명 슈팅이 벌어진 위치에 있던 심판의 제스처는 골로 인정하는 모습이었고 가슴이 벌렁거렸다.

 

숨막히는 순간 어수선한 정적이 잠시 있은 후 노르웨이 선수들이 갑자기 환호하기 시작했다. 우리 팀 선수들은 모두가 눈물을 글썽거리고 있었고 임영철 감독은 본부석 위원들에게 적극적으로 항의를 계속했다. 그러나 그 순간 우리 모두는 알고 있었다. 이미 판정이 뒤집히는건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리고 우생순 신화의 기적같은 재현이 단 몇 초도 아니고 0.1초 앞에서 사라졌음을 말이다.

 

 

슬로비디오로 확인된 4초간에 벌어진 일

 

처음에는 시간이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상황만 계속 반복되다 보니 도대체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항의과정이 계속되고 그제서야 시간까지 확인된 슬로비디오가 나타났다. 종료 4초전 골을 먹은 노르웨이 골키퍼가 지체없이 중앙공격수에게 패스를 했고 그 공은 거의 논스톱으로 왼쪽 장신공격수에게 건네진다. 한걸음 반 정도의 스텝을 밟은 공격수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수비수 사이로 언더슛을 날린 순간은 분명 버저가 울리기 전인 59초. 이 순간부터 슬로비디오에서는 초단위가 아니라 0.1초단위로 화면이 흘러가기 시작했고 정말 딱 골라인 정중앙을 공이 통과하고 있을 때 경기종료를 알리는 '00'으로 변하면서 화면이 멈춘다.

 

 

다른 중계화면으로 잡힌 임영철 감독은 기적같은 동점골에 환호하다가 '파울! 파울!'을 목놓아 외치고 있었다. 그렇다. 우리 선수들이 너무나 극적인 상황에 단 한순간 방심한 사이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무조건 파울로 저지했어야 했지만 1분여동안 미친듯이 실책을 저지르던 똑같은 노르웨이 선수들이 단 4초동안 또 하나의 기적을 만들어 낸 셈이다.

 

비디오판독 제도가 있었다면 이 0.1초의 차이도 발견될 수 있었을 것이고 우리는 이렇게 허망하게 코트를 떠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심판이었어도 이 정도 시간차이로 벌어진 일에 대해서 정확한 판정을 내리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다만 이 정도 논쟁적인 상황을 감안했다면 연장전을 선언하는 것이 조금 더 합리적인 판정이 아니었을까. 예선 브라질 전의 악몽이 결정적인 순간에 우리 팀의 발목을 잡아 버렸으니 하늘을 원망할 수 밖에..ㅜㅜ

 

 

그러나 정말 우리가 진 경기일까?

 

경기내용면으로 보면 전반에 4골차 리드를 지키지 못한 것이 뼈아팠다. 또한 리드를 당한 후에 2골차 이하로 줄일 수 있는 너무나 많은 기회를 잃은 것도 아쉬웠다. 그러나 그 기회를 잃은 이면에 노르웨이 선수들이 아주 작정하고 들고 나온 더티플레이에 의한 우리팀 속공저지와 이를 철저히 외면한 심판들의 진짜 편파판정이 도사리고 있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임오경 해설위원의 절규가 결코 자의적인 해석이 아니었던 것이다.

 

핸드볼 경기에서 공격팀이 패시브 상황이던 턴오버에 의해서건 공격권을 넘겨주게 되면 그 즉시 코트에 공을 놓고 물러나야 한다. 기본중에 기본인 룰이다. 조금이라도 고의적으로 시간을 지연하면 2분간 퇴장을 주어야 한다. 그런데 오늘 노르웨이 선수들은 거의 예외없이 위와 같은 상황에서 지연플레이를 반복했지만 단 한번도 이를 지적하는 판정이 나오지 않은 것이다. 당연히 우리팀의 속공기회는 그때마다 차단되었고 어려운 공격을 진행할 수 밖에 없었음은 물론이다.

 

특히 승부의 분수령이 된 후반 중반이후부터 이러한 더티플레이는 더 노골적으로 행해졌지만 심판들은 장님처럼 아무일 없다는 듯이 경기를 진행시켰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버저비터의 유효성 여부를 무조건 심판탓으로 돌리고 싶지는 않다. 오늘 심판들의 진짜 편파적인 판정은 너무도 명백한 상황에서 노르웨이의 더티플레이를 전혀 제지하지 않은데 있었던 것이다. 이미 경기는 끝났고 결과를 뒤집는 것도 불가능하겠지만 버저비터에 대한 문제를 정식으로 항의할 때, 이번 경기를 진행한 심판들의 진짜 편파성을 끝까지 따져물어야 한다.

 

 

진정으로 당신들이 자랑스럽고 사랑합니다.

 

위에서 주절주절 악에 바친 한풀이를 늘어놓았지만 정말 포기하지 않는 정신이 무엇이라는 걸 온몸으로 보여준 우리 여자 핸드볼 선수들 모두에게 정말 감사 드립니다. 그리고 더는 울지 마세요. 차라리 저를 포함한 국민들이 울겠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가 딴 금메달을 할 수만 있다면 훔쳐서라도 당신들의 목에 걸어주고 싶습니다. 그것으로도 당신들의 땀과 눈물에 담긴 한을 다 풀어줄 수는 없겠지요?

 

 

그리고 또 이 순간부터 국민들에게 외면받고 선수생활이 언제 끝날지도 모를 척박한 국내 핸드볼계로 당신의 무거운 몸을 이끌고 돌아와야겠지요. 이번만큼은 당신들에게 무언가 정말 해주고 싶군요. 당신들이 눈물로 지켜낸 핸드볼이 올림픽이 아닌 때에도 언제나 관중들의 응원소리로 북적거리는 광경을 보여주고 싶지만 먼저 저부터 핸드볼 경기장을 꼭 찾아가겠습니다. 그리고 당신들에게 직접 이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진정으로 당신들이 자랑스럽고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