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토피아

택시와 버스기사를 괴롭히는 오적

재능세공사 2008. 10. 20. 13:03

'택시요금 인상 반대하는 택시기사'들을 읽고

 

거다란님의 포스트를 봤습니다. 문득 30년째 택시를 몰고 있는 외삼촌과 10여년간 버스기사로 일하셨던 아버지가 떠올랐습니다. 두분이 관련된 일이라서 그런지 매번 택시와 버스를 이용할 때마다 기사님들이 남같지 않게 느껴지곤 했습니다. 특히나 기사님들의 불친절함에 대한 기사가 잊혀질만 하면 반복적으로 이슈화될 때마다 속이 많이 상했습니다.

 

왜 택시나 버스기사님들은 신경이 날카롭고 극도로 피곤한 얼굴일 경우가 많을까요? 다른 일을 하시는 분들도 여러가지로 스트레스 받을 일이 많은게 사실이지만 기사분들을 구조적으로 괴롭히는 오적들을 생각해 보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실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씩 살펴볼까요?

 

 

오적 1 : 기사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 현실

 

택시와 버스기사만큼 이직률이 심하고 몸이 많이 상하는 직업이 또 있을까요? 그래서 대중교통 회사들은 상시채용이 생활화 되어 있습니다. 그만두는 분들이 많은만큼 여러가지 사정으로 특별한 기술없이도 운전만 할 줄 알면 채용이 가능하다는 점 때문인지 지원하는 분들도 많은게 사실입니다. 회사 입장에서는 큰 타격없이 대체가 가능한 이와 같은 노동환경이 고마울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상황이 대부분의 회사들이 중요한 자산인 기사들에 대한 처우에 대해 크게 고민하지 않는 이유가 되고 있다는 현실입니다.

 

거다란님도 지적했지만 택시요금 인상만큼 기사들에게 계륵같은 존재도 없습니다.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매우 낮게 책정되어 있는 우리나라의 택시요금 수준은 분명 개선될 필요가 있지만 요금인상에 따른 혜택이 기사들에게 돌아가기는 커녕 마이너스가 될 수 밖에 없는 구조적인 모순 때문에 꽤 오랫동안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왜 그럴까요? 택시요금 인상은 경기상황과 상관없이 대부분 회사에 납부해야 할 사납금 인상으로 이어집니다. 기존의 사납금이 적정하게 설정되어 있는지도 의심스럽지만 요금인상에 따른 플러스 요인이 확인되기도 전에 추가적인 부담이 선행된다는 것이 기사들로서는 여간 고욕이 아닙니다. 아무리 적은 수준의 인상이라도 이미 기존요금에 익숙한 고객들에게는 특히나 요즘같이 경기하락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택시이용을 자제하게 만드는 민감한 반응을 불러 일으킵니다.

 

 

 

대중교통과 관련된 정책의 의사결정권은 최근 지자체로 거의 넘어가 있는 상태입니다. 따라서 택시요금 현실화에 따른 혜택이 기사들에게 보장되기 위해서는 적정한 수준에서 택시회사의 사납금 설정에 대한 지자체의 개입이 필요합니다. 현실을 무시한 무조건적인 사납금 인상을 우선적으로 제어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합니다.

 

버스의 경우에는 전용차선제가 적용되면서 이명박 시장시절 과도하다고 생각할 정도의 수준으로 버스회사의 이익을 보장해 준 전례가 있습니다. 택시회사의 경우에도 이런 조치가 필요할지 모르지만 먼저 기사분들의 처우개선과 혜택 보장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대중교통 서비스의 질적인 개선은 요원하고 사주의 이익만 늘려주는 결과를 낳게될 것입니다.

 

 

오적 2 : 사납금과 배차시간의 압박

 

택시회사는 사납금이라는 절대적인 안정장치가 있습니다. 택시기사들이 얼마되지 않은 기본급을 넘겨 생활이 가능할 정도의 월급을 타가기 위해서는 아무리 손님이 없어도 식사시간도 거른채 열심히 달릴 수 밖에 없습니다. 일단 사납금 수준을 넘겨야 추가수입이 월급이 되니까요. 매번 논란이 되는 합승문제도 이런 현실때문에 벌어지는 고육지책인 경우가 많습니다.

 

버스회사 역시 얼마나 운행횟수를 늘리느냐에 따라 수익이 결정나기 때문에 숨막힐 정도의 배차간격으로 기사들을 내몹니다. 교통체증이 일반화되어 있는 도로상황에서 배차시간을 지키기 위해서 버스기사들이 감수해야 할 위험과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나마 버스전용차선제가 도입되면서 많이 좋아졌지만 출퇴근시간에는 여전히 사투를 벌여야 하는게 사실입니다.

 

 

이와같은 상황때문에 아무리 신경을 쓴다 해도 여러가지 교통위반에 대한 범칙금이나 예기지 않은 접촉사고에서 기사들은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수시로 날라드는 범칙금 딱지와 사고처리에 대한 부담도 대부분 기사들의 몫으로 돌아갑니다. 회사가 인정한 불가피한 상황 이외에는 지원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예전에 택배일을 경험했던 윗동서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법이라는게 현실을 무시하고 적용되는 경우가 많다. 똑같은 위반을 해도 자가용보다는 영업용에게 더 큰 범칙금이 부과된다. 영업용 기사들의 근무환경을 감안하면 당연히 상대적으로 부담을 덜어주는게 합리적이지 않느냐는 지적에 공감이 갑니다. 물론 교통경찰들도 가끔 선처해주는 경우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운 좋은 날이나 가능한 얘기겠죠.

 

 

 

오적 3 : 현실적이지 못한 속도위반 기준과 운영

 

이 부분은 자가용을 이용하는 분들에게도 해당되는 것이지만 택시기사들에게는 특히나 위협적인 존재입니다. 아무리 내비게이션이 경고를 해주고 요령있게 피해간다 해도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속도위반측정 카메라를 완벽하게 피해갈 도리는 없습니다. 도로사정과 차량의 성능이 점점 좋아지고 있지만 속도위반 기준은 현실화되지 않고 있습니다.

 

과연 속도위반 측정 카메라가 과속에 의한 사고예방이라는 원래의 취지를 잘 살려서 운영되고 있는걸까요? 아직도 서울시내에는 50~60km를 과속의 기준으로 삼는 카메라가 버젓이 있습니다. 충분히 속도를 낼만한 도로에서도 심심치 않게 70km 카메라가 발견됩니다. 잠시만 한눈팔면 여지없이 위반딱지를 받아야 합니다. 물론 과속기준을 적용할 때 적어도 10km 이상을 초과할때부터 범칙금을 발부하지만 아무리 안전운전을 한다고 해도 현재 상황에서는 누구도 안심할 수 없습니다.

 

단속실적 상위 7개 카메라가 서울시내에 설치된 60km 구간이랍니다..ㅜㅜ

 

우선 너무나 현실과 동떨어진 과속기준을 재조정해야 합니다. 기술적인 뒷받침이 필요하긴 하지만 시간대별로 탄력적인 과속기준을 적용하는 것도 고려해야 합니다. 위반시에도 무조건 범칙금을 발부할게 아니라 주의, 경고, 발부 수준으로 단계적인 계도가 필요합니다. 진짜로 과속에 의한 사고예방을 위해 경각심을 주기 위한 것이라면 말입니다. 이런 부담만 줄여주기만 해도 기사님들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지지 않을까요?

 

 

오적 4 : 대중교통 기사들에 대한 차가운 시선

 

기사일은 하다 하다 안되면 마지막에 하는 일이라는 냉소적인 시선이 있습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기사들이 불친절하다고 입을 모읍니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은 기사들의 사정을 감안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불편함을 느끼면 기사를 원망합니다. 어려운 근무환경에서도 항상 웃는 얼굴로 고객에게 최선을 다하는 기사들은 이런 반응을 접할때마다 상처를 받습니다. 물론 고객의 입장에서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속으로 삭힐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가끔 기사들의 어려운 근무환경을 이해해 주는 분들을 만나면 마음 한켠에서 울컥하는 설움과 흔치 않은 격려에 고마움을 느낄 뿐입니다. 하루종일 운전대에 앉아 있다 보면 하반신에 묵직하게 피로감이 몰려 옵니다. 잠시 차를 세우고 기지개라도 켰으면 좋겠는데 그럴 여유가 없습니다. 늦은 식사를 하기로 어렵게 마음 먹었다가도 손님이 차를 세우면 '그래 조금 있다 먹지 뭐' 하다가 때를 놓치기가 다반사입니다.

 

총선당선자의 1일 기사체험 장면 - 단 하루에 많은걸 느꼈답니다..ㅜㅜ

 

열악한 근무환경속에서 일하다 다치기라도 하면 막막해 집니다. 당연히 산재로 인정되서 회사를 지원을 받을꺼라 믿지만 회사는 이런저런 규정을 들이대며 쉽게 도와주지 않습니다. 제 아버지께서도 버스운전을 하시다가 허리를 다치셨는데 회사의 비협조적이고 무책임한 처사에 몇년동안을 원치 않는 소송에 매달리셔야 했습니다. 결국 승소했지만 그렇게 정정하시던 분이 몇년사이의 마음고생으로 얼마나 늙으셨는지 모릅니다.

 

변호사를 살 형편이 안되었기때문에 아버지는 노동법 책을 하나 사서 혼자 독학을 해가며 회사에 싸워야 했습니다. 지금도 아버지는 그때의 기억때문인지 법을 몰라서 회사에 휘둘리는 기사분들이 찾아올때마다 당신의 일처럼 열변을 토하며 조언을 해주십니다. 어머니는 또 화병이 도질까봐 그런 아버지를 걱정하지만 아버지는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런 아버지가 돕지 못했던 제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고 불의에 맞서 포기하지 않고 권리를 지켜낸 아버지가 자랑스럽습니다.

 

 

오적 5 : 자기이익 사수에만 여념이 없는 로비집단과 정치인들

 

정치인들은 항상 거창한 대의명분만 읖조리며 국민들을 위해 봉사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거짓을 늘어 놓습니다. 사실 최근에 지자체로 위임된 권한들을 생각해 보면, 국회의원이나 행정부보다 각급 지자체 의원들의 노력여하에 따라 실질적인 국민생활의 개선이 좌우됩니다. 대표적인 서민계층으로 볼 수 있는 기사들의 처우문제도 이들이 얼마나 현장을 많이 찾아 다니고 회사와 기사 사이에서 합리적인 개선안을 절충하느냐에 따라 해결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는 거리가 멉니다. 서민들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고 당선된 사람들이 행여나 자신들의 사익을 위협받을지도 모를 정책을 막기 위해 사활을 건 택시와 버스회사들의 로비에 굳게 입을 다물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권익을 찾을 수 있는 방법도 모르고 여유도 없는 기사분들은 그래서 자포자기하는 마음으로 희망을 잃어갑니다.

 

지방위원 연봉 유급화와 건설업자 이익을 배려한 조례에만 열중인 시의원들

 

몇 안되는 의식있는 기사분들이 힘을 모을라치면 여지없이 회사의 이간질이 시작됩니다. 자신들의 입에 맞는 조합장을 당선시키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위협이 될만한 기사들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왕따를 시키거나 힘들게 만듭니다. 가장 낡은 차를 배차하고 배차간격을 빡빡하게 부여하며 노골적으로 나가줄 것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절대약자의 위치에 있는 기사들은 회사의 분탕질에 쉽게 항거하지 못합니다.

 

기사분들은 우선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회사들의 로비에 맞서 처우개선을 이슈화시킬 수 있는 대변자를 찾아야 합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정치 자영업자들의 무리속에도 아직 순수함을 잃지 않고 정치적 소신을 가지고 활동하는 정치인들이 분명 있습니다. 필요하다면 그런 분들을 장기적으로 당선시키는데 힘을 모아야 합니다. 현실만을 탓하기만 해서는 해결책이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분들에게 제안하고 싶습니다. 여러분 주변지인들을 둘러 보면 이 분야에서 종사하는 분들이 한 두명쯤은 있을겁니다. 바로 여러분의 가족이자 이웃이니까요. 오늘 대중교통을 이용하게 되면 기사분들에게 따뜻한 인사라도 먼저 건네고 그분들의 어려움도 들어주면서 함께 사는 세상의 희망을 나누면 어떨까요? 지금 당장은 바뀌지 않겠지만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언젠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