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토피아

내생애 최고의 프레젠테이션

재능세공사 2008. 9. 10. 14:00

때는 바야흐로 1년 정도 짬밥을 먹은 학부조교로 대학원에 다니던 시절인데..

 

예나 지금이나 대학에 들어오기 위해 많은 신입생 후보들이 입학원서를 접수하고 도대체 뭘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지만 웬지 당락을 좌지우지할 것만 같은 면접이라는 관문을 앞두고 초조하게 강의실에 모여 있었다. 지금 기억으로 50명 정원인 정보관리학과에 꽤 많은 학생들이 대기실에 앉아서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고 원잭에게 주어진 역할은 그들을 순서대로 호명해서 면접실로 보내는 아주 단순하고 지루한 일이었다. (실제로 그렇게 끝날 수도 있었다)

 

 

그때 문득 원잭의 머리속에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저들의 입장이라면 이 시간이 얼마나 초조하거나 지루할까? 그리고 이 망할놈의 면접에 쪼금이라도 도움이 될만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 여러가지 이유로 이 학교에 이 학과를 지원을 했지만 옳은 선택이었을까? 뭐 등등..'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재미있고 유용한, 아니 아주 솔직히 말하면 최소한 지루한 시간이 되지 않도록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원맨쇼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들이 쌩뚱맞다거나 짜증을 내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조금은 덜 위험스러운 주제들을 가지고 이바구를 시작했다.. 대학생활이란 무엇인가? 정보관리학과는 도대체 뭘 배우는 곳인가? 어떤 장점이 있고 전망은 어떤 것인가? 뭐 이런 이야기들을 원잭의 경험을 바탕으로 재미없게 얘기했던거 같다.

 

예상했던 것처럼 대다수는 그래도 혹시나 책잡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예의상 들었주겠다는 표정이었고 개중에 몇 명만이 약간은 호기심을 가지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래도 좋았다. 단 몇명만이라도 나의 원맨쇼때문에 지루함을 덜 수만 있다면 말이다..

 

그런데 한시간도 채 되지 않아 역시 위에서 열거한 주제에 대한 이야기꺼리가 고갈되었다. 그때부터는 겁이 없어지기 시작하면서 원잭의 개인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가수가 누구고 재미있었던 책은 뭐였고 어떤 영화가 원잭을 감동하게 했는지 두서없이 이야기를 하다가 갑작스레 사적인 영역인 청춘사업에 대한 이바구까지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 시점에는 호명해야 할 순서를 까먹거나 타이밍을 놓치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자아도취경에 빠진게지..ㅋㅋ)

 

그래도 처음보다는 더 많은 학생들이 내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고 난 점점 오바의 경지에 도달하며 이승환의 '덩크슛'을 부른다거나 '숏다리'에 대한 일반인들의 오류를 지적하며 스스로의 컴플렉스를 유머의 소재로 삼으며 신나게 야부리를 풀기 시작했다. (이 대목에서는 이야기가 아니라 야부리가 맞다)

 

길게만 느껴졌던 대기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고 다른 강연과는 달리 청중들이 점점 줄어드는 상황이었지만 청중들의 몰입도는 점점 커져만 갔다. 원잭은 그날 적어도 자신이 그 나이가 될때까지 습득한 경험치를 최대한 쏟아부으며 처음으로 가슴속에 있는 열정을 시원하게 토해냈던 것이다.

 

 

면접이 다 끝나갈 무렵 난 이렇게 마무리 발언을 했던거 같다.

 

"여러분과 저의 인연이 어떻게 이어질지 모르지만 어떤 형태로든 우린 다시  조우하거나 서로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 기억을 떠올릴때 슬며시 엷은 미소 한번 지어진다면 그걸로 충분할 것 같다. 건승을 빈다..^^"

 

세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줄기차게 떠들었기 때문에 목소리가 쉴 정도였지만 기분만은 최고였다. 대충 자리를 정리하고 나서야 다리에 힘이 풀리고 피곤이 몰려왔다. 그러나 그것은 쉽게 맛볼 수 없는 '기분좋은 피로감'이었다. 어쩌면 그냥 그렇게 스쳐지나갈 수도 있었던 그들과 나의 인연은 그렇게 조금은 특별한 시간으로 기억됐을테니까..

 

그리고 내가 대학후배들과 결성한 블루칩스의 한 멤버인 블루스카이는 후배가 되어서 날 만났을 때 그 때의 내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고 '참 골때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고 얘기해 주었다. 그런 그 녀석에게 원잭은 이유있는 친근감을 느꼈고 지금까지 그 녀석을 사랑하고 있다..

 

지금 다시 내가 그와 같은 자리에 선다면 난 그때만큼 열정적으로 그들에게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아마도 또 다른 형태의 교감을 이루어내겠지만 바로 그때 그 느낌과는 사뭇 다를 것이다. 어쨌든 그때의 느낌은 영원히 내 가슴 한구석에 고이 간직되어 필요할때마다 꺼내 보는 '작은 마법의 돌'이 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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