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토피아

공인으로 산다는 것 - 우즈&이병헌

재능세공사 2009. 12. 14. 16:26

자발적 공인 vs 타의적 공인

 

공인이란 무엇인가. 아마도 어떤 이유로든지 개인의 삶을 넘어서 많은 이의 관심을 받고 많은 이들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치에 서있는 사람을 일컫는 것일게다. 이 대목에서 우리가 하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공인이라 여기는 수많은 대상들이 공인이라는 삶을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인지, 타의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공인으로 살아가는 것인지를 살펴보는 일이다. 왜냐하면 이런 구분에 따라 같은 공인이라 해도 우리가 그들에게 기대하고 요구하는 책임의식이 달라질 수 있으며 그들의 행위에 대한 우리들의 평가기준도 달라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자발적 공인이 아니고서는 우리는 그들을 공적인 삶으로 묶어두거나 구속할 자격이 없다. 어느 정도 그들의 책임의식을 인정한다고 해도 지극히 상식적인 수준에서만 그들의 삶과 행위에 대해 심판관으로서가 아닌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을 말하는 정도에서 그쳐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이러한 생각의 연장선상에서 나는 공인으로 산다는 것에 대해, 그리고 공인들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선이 조금 더 객관성과 상식의 이름으로 다시 생각해 보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이 글을 쓰고자 한다.

 

자발적 공인이라 함은 정치인과 공무원, 그리고 규모와 상관없이 모든 종류의 기업과 각종 단체의 장들을 말한다. 이들은 태생적으로 자신이 속한 국가, 기업, 단체에 속한 이들을 위해 개인자격이 아니라 공인으로서 자발적으로 일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그 위치에 오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더 확실한 증거는 그들이 공인으로서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되는 모든 비용이 그들에게 공인의 역할을 위임한 사람들의 주머니에서 나온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들에게도 공인인 동시에 개인으로서의 삶이 역시 존재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사실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 그들 스스로 양쪽 영역의 경계선을 양심적이고 상식적으로 잘 지킨다는 전제하에 말이다.

 

 

어쨌든 위에서 지적한 사실에 비추어 보면 이들은 태생적 공인이라 불리울만 하고 그 자발적 선택에 의해 공인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고 그들의 삶과 행위에 영향받는 이들에게 보통의 개인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엄격하고 냉정한 평가와 요구를 겸허하게 받아들여야만 한다. 적어도 공인의 책무가 끝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자발적 공인들에게 필요한 만큼의 적절한 평가와 요구를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이들 역시 국민들이나 소속 구성원들이 잠시동안 위임한 권력을 절대권력으로 착각하고 사익을 위해 휘두름으로써 우리들을 기만하고 핍박하는 일들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게 현실 아닐까.

 

타의적 공인들은 어떨까. 스스로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분야와 상관없이 남다른 재능과 노력의 결과로서 많은 개인들에게 인정받고 추앙 받을만한 업적을 이룬 이들은 그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공인의 영역으로 편재되고 만다. 굳이 표현한다면 그들은 서로 다른 종류의 영웅(또는 실체와 상관없이 대중들에게 영웅시된)들이고 영웅적 삶을 살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제한의 책임의식과 도덕적 삶을 강요받게 된 불행한 공인이 된 것이다. 대중들에게 지나칠 정도의 관심과 주목을 받는 스포츠와 연예계 스타들이야말로 타의적 공인그룹의 대표들이다.

 

 

위에서 설명한 자발적 공인들에 비해 이들은 심각할 정도로 사생활의 영역을 수시로 침범당하고 그 대응에서조차 공인이라는 굴레에 묶여 변변한 항변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괴로움을 감수해야 한다. 심할 경우 이러한 무자비한 대중의 공격은 마녀사냥식으로 전개되고 한 개인의 삶을 철저하게 파괴하는 불행한 결과를 초래한다. 문제는 이와 같은 사례가 결코 적지 않다는데 있고 타의적 공인에 속하게 된 그 누구도 이런 불행으로부터 앞으로도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런 예정된 불행의 반복을 우리는 그대로 방치해야만 하는 것일까. 타의적 공인보다는 우리 대중들의 생각과 판단에 더이상의 불행을 막을 수 있는 열쇠가 있음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타이거 우즈와 이병헌 - 또 하나의 희생양

 

타이거 우즈와 이병헌은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스포츠와 연예계의 슈퍼스타다. 위의 분류대로 보면 본인의 뜻과 상관없이 타의적 공인이 된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그들이 공인의 책무를 받아들여야 하는 유일한 이유는 대중들의 사랑과 관심이 개인적인 부를 가능케 했다는 점이다. 그것이 비록 그들만의 타고난 재능과 뼈를 깍는 노력의 산물이라 해도 대중들의 입장에서는 무언가 그들이 향유하는 삶에 기여했다고 철저히 믿고 있다는 연유에서다. 그들이 자신들을 지지해 주고 있는 팬들에게 항시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훌륭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팬들의 기대와 요구에 무조건 일치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은 그런 태도를 유지하는 것을 정당한 권리로 믿는다.

 

타이거 우즈가 빠진 함정은 이런 것이다. 공인으로서의 이미지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잘 알고 있었던 그로서는 골프실력 외에도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이미지 창출이었을게다. 그에게 막대한 부를 선사한 메이저 스폰서와 대회 관계자 역시 그런 이미지의 타이거 우즈를 원했을 것이고 그를 돕는 매니저와 우즈 스스로 역시 자신의 사생활과 상관없이 그런 이미지를 유지하고 영원히 계속되기를 바랬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대중들은 우즈를 골프황제 정도가 아니라 모든 면에서 모범으로 삼아도 좋은 그들의 진정한 우상이자 영웅으로 기꺼이 받아들였을 것이다.

 

 

만약 우즈가 타의적 공인의 굴레를 벗어 던지려는 지속적인 시도와 노력을 했다면 어땠을까. 물론 현재까지 그를 둘러싼 환경들을 감안하면 쉽게 선택할 수 있는 길을 아니었으리라. 그러나 그가 타의적 공인에게 예정되어 있는 불행한 운명을 벗어나고 싶었다면 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지켰어야만 했다고 나는 믿는다. 그가 취한 유일한 보호막은 자신의 사생활을 철저하게 가리려 했던 것 뿐이다. 그러나 그건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고 더욱 더 대중의 쓸데없는 호기심을 부추기는 빌미를 제공할 뿐이었다.

 

그는 대중들과 그를 지지하는 팬들에게 이렇게 호소해 왔다면 어떘을까. '여러분이 생각하는 타이거 우즈와 개인으로서의 나는 분명 다릅니다. 저 역시 공인의 위치에 오른 이후부터는 여러분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또 한명의 보통의 인간으로서 저지를 수 있는 실수와 잘못된 선택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아님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때로는 여러분을 실망시킬 수도 있고 원치 않게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인생의 실수와 오판에 대한 질책에 대해서 감수해야 하지만 공인의 이름으로 단죄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이다.

 

우즈가 지금 받고 있는 비난은 과도하고 정당하지 않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자신이 그동안의 기간동안 대중에게 어필했던 이미지와 너무나 큰 간격이 있었음이 드러난데서 온 실망감과 충격에서 온 반응임을 알아야 한다. 그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딱 여기까지에서 멈춰야 한다고 믿는다. 그 스스로 사과했고 활동을 잠정중단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에 앞으로의 우즈의 삶에 계속 딱지를 붙이고 마녀사냥을 해서는 안된다. 그를 타의적 공인의 굴레에서 놔주어야 한다. 그가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온다고 해도 그를 또 다시 같은 불행의 길로 몰아세워서는 안된다고 믿는다.

 

최근 불거진 이병헌의 사례를 다른 각도에서 살펴보자. 이병헌은 정말 훌륭한 배우고 그에 걸맞는 경력을 만들어 왔고 최근 들어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나는 그에게 집중된 관심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대중들의 관심은 항상 공개적으로 확인 가능한 것 이상을 요구하는 속성때문에 조금이라도 사생활과 관련된 이슈가 생기면 집요할 정도로 맹목적인 쏠림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병헌 스스로 결코 공개되지 않았으면 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사건이 터져버리고 만 것이다. 그것도 가장 불명예스러운 혐의를 담고 말이다.

 

 

배우로서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현 시점에서 이 문제가 쉽게 잠잠해지기는 이미 어려워져 버렸다. 그는 자신의 홈피를 통해 지극히 솔직한 심경을 피력했다. 내가 그의 입장에 섰더라도 내놓을 수 있는 유일한 입장표명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어떻게 전개되고 결론이 날지 모르겠지만 분명한건 아무리 이 문제가 톱스타 이병헌에 관련된 문제라 하더라고 그 누구도 그의 사생활을 가지고 공적인 잣대로 심판해서는 안될 사안이라는 것이다. 언론이 항상 명분으로 들이대는 알권리라는 말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안임을 우리 모두 알아야 한다. 위에서 지적한대로 알권리를 논할 수 있는 대상은 자발적 공인들에게나 해당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이상 이병헌의 개인사를 확대해석하고 현장중계하고 악의적으로 파헤치는 일을 모두가 중지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개인 이병헌에게 애정이 담긴 조언을 하고 싶다. 진실이 어떻든지 간에 본인이 친필편지에서 표현했던 것처럼 한때 아끼는 사람이었다면 그에 상응하는 예우와 접근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를 바란다. 감정적으로 격앙된 상대에게 논리적이고 법적인 대응은 해결에 도움이 안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타의적 공인으로서 어떤 선택도 쉽지 않겠지만 우선 그녀와 직접 만나서 가슴으로 설득하고 해명하는 시도를 하기 바란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 다음은 원치 않지만 자신의 명예와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법적인 판단에 맡길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선택을 한다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불필요한 감정싸움이나 유리한 판결을 이끌기 위해 상대를 자극하거나 비난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최대한 상대의 입장을 존중하고 결과와 상관없이 상처를 최소화 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비록 그 길이 개인 이병헌의 입장에서 힘들고 어려운 과정이 될지라도 말이다. 나는 그가 필요 이상으로 대중들에게 상처받거나 옹호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저 사실에 기초한 상식적인 수준에서 해결되기를 바란다.

 

 

공인들을 제대로 사랑하는 법

 

우리들은 영웅을 사랑하고 스타를 사랑한다. 실제로 그들을 영웅과 스타로 밀어 올린 사람들은 우리다. 그들을 시궁창으로 처박고 불행한 영웅으로 끌어내리는 것도 우리들이다. 진정 그것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더 오랫동안 우리들에게 삶의 에너지를 불어넣고 우리가 되고 싶은 아름다운 역할모델로 남아 있어야 한다. 구세주도 아니지만 그들에게서 우리들 저마다가 꿈꾸는 미래의 모습을 잉태하고 응원하게 만드는 긍정적 가치가 있는 것은 틀림없다.

 

 

그들에게 일방적이고 획일적인 공인으로서의 삶을 더이상 강요하지 말자. 그들에게도 우리와 같은 평범하고 인간적인 사생활이 있음을 존중해 주자. 그들의 불행한 삶의 단면을 가지고 그들 삶 전체를 재단하거나 폄훼하지 말자. 화려함만 강조되는 그들의 삶속에서도 개인적으로 어려움과 불행이 공존할 수 있음을 인지상정의 마음으로 이해하고 연민으로 감싸주자. 그래야만 그들의 좀 더 오래 우리에게 희망과 기쁨을 줄 수 있을테니까 말이다.

 

더이상 불행한 영웅과 스타를 만들어내지 말자. 그들도 한편의 공인으로서의 드라마가 끝나고 나면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주자. 누군가를 불행하게 만드는 일은 결코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 수 없는거 아닌가. 힘든 현실속에서도 우리에게 다양한 즐거움과 감동을 선사하는 이들에게 그에 걸맞는 예우를 해주자 이 말이다. 우리들의 날선 평가와 요구에 부응해야 할 유일한 공인들에게조차 지나치게 가혹한 잣대를 들이밀어 더이상 그런 역할을 자임할 이들이 점점 없어지는 불행을 막았으면 좋겠다. 사랑하고 또 사랑하자. 지금 이 순간이 유일한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