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직토피아

생각하는 기계(?)가 들려주는 음악 - '기타버스'

재능세공사 2011. 3. 18. 20:06

처음 들어보는 인디밴드의 음악

 

고백부터 하자. 나는 음악을 잘 모른다. 대신 꽤 오랫동안 가요를 듣고 불러 왔다. 또 신해철 광팬이자 한때 노래방 죽돌이였으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칭 아마추어 가요평론가로 암약(?)해 왔다. 영화, 미드, 만화, 스포츠 등 엔터테인먼트 분야의 컨텐츠라면 종류를 가리지 않고 탐닉해 왔던 나지만 음악만큼은 대중가요 중심의 편식을 해온지 오래다. 최근에 들어서야 가장 자기다운 악기 색소폰다움에 빠져들어 보기도 하고 베토벤 바이러스를 기점으로 클래식 영역에도 살짝 발을 들여놓은 정도다.

 

혜화역 근처에서 뜻하지 않은 인연으로 만난 1인출판사 대표와 담소를 나누던 중 낯선 전화번호 하나가 내 눈에 들어왔다. 이런 경우는 둘 중 하나다. 블로그를 보거나 추천을 받아 상담을 요청하는 예비고객이거나 여러가지 의미에서 나를 낚기 위해 걸려오는 전화이거나. 기분좋게 예상이 깨졌다. 만난지 꽤 오래된 반가운 지인의 목소리. 그리고 전해지는 너무도 반가운 소식과 겸손하고 소박한 부탁. 남루한 현실때문에 너도 나도 꿈을 팽개쳐 버리는게 당연하게 여겨지는 지금 담담하고 진득하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찬찬히 숨결을 불어넣고 희망을 차곡차곡 쌓아온 그가 생애 첫번째 디지털 싱글앨범을 발매했으며 영광스럽게도 나에게 리뷰를 부탁해온 것이다. 

 

기꺼이 돕고싶다는 마음과 동시에 그 수많은 리뷰중에 앨범에 대한 리뷰를 해본 적이 없으며, 인디밴드 음악을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는 나의 전력이 마음에 걸렸다. 그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이런 말로 자신감을 불어넣어 준다. '전문가는 좋은 평가를 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요. 형님이 적임자예요' 그래서 평소의 단무과스러운 나답게 호탕하게 수락하며 전의를 불태워 본다. 이런 세상에 그가 음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전해주고 싶은 메시지를 한번 끌어내 보자구. 음악 그 자체보다는 음악에 대한 그의 열정과 사랑을 세상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더 알려보자구 말이다.

 

 

담백하고 사람냄새 질펀한 뮤지션 양형승과의 인연

 

본격적인 리뷰에 앞서 조금 긴 서설이 될지라도 인디밴드 '생각하는 기계' 기타리스트 양형승과의 인연과 추억을 들려주고 싶다. 그것이 이 리뷰가 기계적 음악평론이 되거나 객관성을 가장한 주관적인 홍보글이 아니라, 내 가슴이 감지한 느낌의 기록이며 주관적 애정에서 출발하지만 세상에 첫선을 보인 그의 음악에 대한 객관적 피드백을 선물하고 싶다는 나의 바람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그와의 인연이 아니라 양형승 부부와 난 인연이 깊다. 그의 아내 다현은 내게 친동생같은 소중한 존재였고 결혼할 남자라며 닭살 넘치는 애정을 과시하며 내게 양형승을 소개해 주었다. 처음 그를 대면한 순간, 다현이 세상에 얼마 남지 않은 휴머니스트이자 로맨티스트를 인생의 반려자로 맞게 되는 행운을 거머쥐었음을 직감했다. 죽을 고비를 넘겼고 타고난 천재성을 꽃피우지 못한채 어울리지 않는 평범함으로 살아가던 그녀에게 양형승은 새로운 삶의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는 햇살이었다.

 

 

적지 않은 나이에 뮤지션의 삶을 포기할 생각이 없는 남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꿈때문에 현실의 무게를 아내에게만 감당하게 하지 않으려는 남자. 양형승은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 흔치 않은 지혜를 찾아낸 사람이다. 그런 그를 다현은 사랑하고 기꺼이 후원한다. 언젠가 두 사람 모두가 꿈꾸는 일을 서로 도와가며 행복하게 살아갈 때가 올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이 두사람처럼 아름다운 부부를 거의 알지 못한다. 말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삶으로 사랑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특별하고 자기다운 결혼식에서 나는 신부의 지인으로서 그들에게 축사를 들려주었던 사실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당시에는 아직 두 사람의 사랑의 정수를 실감하지 못했기에 나의 바람이 담긴 내용에 불과했지만 지금까지 지켜 본 두 사람은 나의 어설픈 소망을 무색하게 할 만큼 귀감이 될 만한 아름다운 결혼생활로 나를 감동시켰다. 처음으로 찾은 그의 기타스쿨에서 나는 이런 순간이 올 것임을 예감했었다. 양형승의 삶이 오롯이 녹아 들어가 있는 음악을 체험하는 나를 말이다.

 

 

아련함과 아득함의 앙상블 - 디지털 싱글앨범 '기타버스'

 

밴드가 추구하는 음악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다. 그것도 인디밴드라면 기본적으로 대중적 공감보다는 컬트적 매니아성을 예상하기 마련이다. 그가 음악하는 사람임을 알았으면서도 그의 음악을 직간접적으로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살짝 겁먹은 마음으로 위와 같은 고정관념에 기반한 음악을 듣게될 것으로 예상했다. 역시 기분좋게 속았다. 솔직히 처음 듣는 음악이라고 믿기 어려울만큼 흡수력이 좋았다. 걸리적거리거나 낯선 느낌 없이 자연스럽게 내 마음속으로 스며 들었으니까. 직관적으로 떠오른 품평의 키워드는 '아련함'과 '아득함'이 아닐지.

 

 

 

진지함과는 거리가 먼 음악만으로 가득한 요즈음,

정직하고 담백한 목소리로 들려주는 낮고 힘있는 이야기와

80년대 깔끔한 8비트의 시원한 사운드가 그립다면,

밴드 ‘생각하는 기계’의 첫 번째 싱글앨범 <기타버스>에 귀를 기울여보자 

 

앨범소개 문구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대중적이지만 상투적이지 않다. 요즘의 음악정서의 흐름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낯선 느낌과 정서를 듬뿍 담고 있다. 아마도 내 또래(30~40대)의 청중이라면 자연스럽게 함께 흥얼거리며 즐길 수 있을 것이고 좀 더 자극적이고 현란한 음악을 즐기는 젊은 층에게는 잠시 복잡한 일상을 털어 버리고 인생을 되돌아 보는 특별한 체험을 선사할 듯 싶다. 좀 더 구체적으로 앨범에 수록된 곡들 중 개인적 취향을 감안하여 디벼보자.

 

 

거꾸로 쓰는 영화 (작사.작곡 / 양형승.임영호)

 

이번 앨범중에서 가장 꽂힌 노래다. 이건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노래의 제목도 호기심을 자극하고 노래속 주인공과의 감정이입 싱크로율 만빵이다. 마치 내가 겪은 일인 것처럼 마음속으로 함께 입을 맞춰 노래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경쾌한 리듬을 빌리고 무언가 사연가득한 목소리에 시적 회상을 입혀 과거의 연인을 소환하는 마법의 주문을 거는듯 하다. 이번 앨범의 에이스 역할을 하는 곡이 아닐까 싶다..^^ (곡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양형승 블로그에 소개된 글을 덧붙인다. 참조하시라)

 

우연히 공연장에서 마주친 옛애인과의 지나간 이야기들을,

제목처럼 거꾸로 영화를 쓰듯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가는 형식을 빌어 노래하고 있다.

무척이나 익숙한 연주와 이야기들을

타임머신을 타듯 새롭고도 낯선 시공간감으로 그려낸

보컬 임영호의 호소력 있는 목소리와 가사 메이킹이 인상적인 곡이다

 

 

1977 (작사.작곡 / 양형승)

 

'거꾸로 쓰는 영화'가 연인과의 추억으로 떠나는 여행이라면 이 곡은 유년의 추억속으로 우리를 이끈다. 도입부에서 부드럽게 속삭이는 보컬에 귀기울이다 보면 우리 눈앞에는 누구에게나 낯익을 듯한 유년의 광경들이 소리없이 펼쳐진다. 특별하기 보다는 우리 기억속에 자연스럽게 각인되어 있다가 슬며시 드러나는 그런 잔상들이 아련함과 아득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노래를 듣는 내내 슬며시 미소가 지어지고 나의 영혼이 유년속으로 편안하게 잦아들어 간다. 날선 현실때문에 지쳐있는 이들에게 휴식이 되어줄만한 곡이 아닐지..^^

 

밴드 ‘생각하는 기계’의 기타리스트 양형승이

친숙한 80년대 복고적인 사운드를 팝적이면서도 세련되게 재현한 곡이다.

누구에게나 있을 유년의 기억은 소중할만하다.

1977을 들어보자면 이는 아름다운 세상과 행복..등등의 단어를 떠올리게 하는

따스한 감성임이 분명하다.  

 

 

 

something (작사.작곡 / 양형승)

 

위의 두곡과 사뭇 다른 사운드와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러나 전체적인 뉘앙스는 앨범전체의 정서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전자에 대해서는 아래 첨부한 글로 대신하고 메시지에 집중해 보자. 우리는 누구나 자신이 꿈꾸었던 무언가가 되고 싶어 한다. 세속적인 기준으로 돌아본 우리들의 과거는 남루하고 초라하다. 그런 과거가 우리를 두렵게 하고 희망을 앗아가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가슴속에 옹골차게 그 꿈이 버티고 있는 한 우리가 꿈꾸는 미래는 사라지지 않는다.

 

이 곡이야말로 양형승이 지금까지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게 될 것인지의 다짐이 오롯이 담겨있는 곡이다. 양형승이 꿈꾸는 something이 담백하게 기름끼를 뺀 뮤지션의 삶이라면 저마다의 something은 이 노래를 듣는 이들의 마음속에서 자연스럽게 모습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자신만의 소중한 something을 삶에서 놓치고 싶지 않은 이들이라면 흔들릴때마다 이 노래로 자신을 위무하고 힘을 냈으면 좋겠다.  

 

팝모던 밴드로서의 ‘생각하는 기계’가 추구했던 U2 사운드에 가장 근접한 곡이다.

간주의 솔로가 터지기 직전 밀려오는 guitar backing은

마치 80~90년대의 록밴드 세대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게 하며

사운드와 균형을 이루는데 부족함 없는

I've always wanted to be something...의 반복에

한번 귀 기울여 본다면 생각하는 기계 밴드가 전하고자하는

그들만의 음악적 무게감을 음미해볼 수 있겠다.

 

 

 

기타버스 (작사.작곡 / 양형승)

 

일상에서 맛보는 찰나지간의 환타지란 이런 것일까. 우리에겐 거창한 마법과 환타지의 세계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내려놓고 비워내고 자유로운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면 좋다. 양형승에게는 버스가득 기타와 앰프를 싣고 푸른 전원 속으로, 하늘로 자유롭게 떠오르는 기타버스의 풍경이 최고의 환타지인 모양이다. 참 그다운 생각이 아닐 수 없다. 성능좋은 이어폰과 기타버스의 앨범이 장착되어 있다면 우리는 좀 더 수월하게 저마다 꿈꾸는 소박한 환타지 세상으로 떠날 수 있다. 먼저 가슴을 열고 자유로운 영혼의 에너지를 한껏 들이켜 보자. 한껏 우리만의 자유에 취해보자 이말이다.  

 

지쳐버린 현대인에게 권하는 잠시의 휴식,

버스 가득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 채워 떠나는 신나는 여행을

애니메이션 혹은 뮤지컬 느낌의 환타지로 표현한

이번 앨범의 모티브가 된 곡이다.

기타, 베이스, 드럼으로 이어지는 연작 시리즈의 출발점으로

3분53초 내내 쉴 사이 없이 이어지는

곡 전체의 다채롭고 큰 폭의 사운드 변화를 맘껏 즐기며

기타버스를 타고 다음 목적지인 베이스 정거장으로 향해가는

신나는 여정에 함께 해보는건 어떨까? 

 

왜 밴드이름이 '생각하는 기계'일까?

 

혹시나 단서를 찾을 수 있을까 해서 잠시 네티즌 수사대가 되어 양형승의 미니홈피를 둘러보았다. 오랫동안 방문하지 않았던 그의 홈피에서 단서가 될만한 내용을 그의 일기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그가 친한 지인으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다는 얘기 '넌 생각이 너무 많아'. 그렇다. 그는 생각이 많은 사람이고 '생각'이라는 단어만큼 그를 잘 설명할 수 있는 말도 없다. 그에겐 음악도 생각이며,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그는 밴드의 멤버들과 함께 '음악만을 생각하는 기계'가 되어 세상을 향해 나즈막히 생각의 창조물을 들려주는 삶을 꿈꾸고 있는듯 하다. 설령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이 들어줄지라도. 단 한명이라도 가슴으로 영혼으로 교감해 줄 수만 있다면 말이다.

 

얼마나 보탬이 되는 리뷰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글을 쓰는 내내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디밴드의 음악은 그저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고 그 음악안에 녹아들어 있는 그들의 삶을 들어야 하는 것이라고. 마음만 먹으면 어떤 가수의 어떤 노래도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들을 수 있는 오늘이지만 한번쯤은 화려하진 않지만 누구보다 열정적인 음악인생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는 뮤지션들이 건네는 음악에 귀를 기울여 봐도 좋지 않을지. 그다운 음악관을 유추해 볼 수 있는 훔쳐온 일기를 소개하며 그의 음악이 더 많은 이들에게 들려질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진심으로 축하한다. 형승아..^^ 

 

솔직히.. 나같은 뮤지션 한사람 정도는 있어도 된다고 본다. 내가 존경해 하는 에릭 클랩튼 형이나 유투의 보노,엣지 엉아.. 폴길벗뜨,스티비원더,잔메이여,... 좀 더 고상하고 higher한 전설적인 뮤지션들. 몇 사람 대다가 포기할 정도로 많고..또 그 이상으로 위대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위대함이 전쟁이나 기아, 환경의 위협으로 부터 인류를 지켜낼 수 있을 정도로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반면.. 자기자신 하나도 구원 못하고 이렇게 저렇게 십년을 뻐팅기고 있지만 나같은 뮤지션 하나 있다해서 세상이 아주 그냥 폭삭 주저앉는 것도 아니다. 그냥.. 다들 자기 그릇만큼의 세상을 담아내며 그 그릇만큼 절망하고 구원하고 그러면서 사는거다. 예전에 나 스물여덟 아홉 때 알게 되었던 그림 그리는 형 하나가 해주었던 말처럼.. 숨을 깊게 쉴 필요가 있다. 내가 무슨 환경오염이라도 시키는 것도 아니고 기왕이면 가슴을 여는거다. 깊게.. 북한산 흔하디 흔한 소나무 한그루, 그런 나무 한그루 정도는 있어도 되는거 아니겠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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